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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창수 Jan 22. 2024

『교감으로 산다는 것』 : 책으로 버틴다.

사람마다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법이 다양하다. 하루 종일 화장실 갈 시간 없이 책상에 앉아 문서와 싸우듯이 일하는 날이 많다. 스트레스를 해소하지 않으면 교감 생활도 오래 못한다. 틈틈이 책을 읽으며 스트레스를 날려 보낸다. 주말에 몰아서 읽기도 하고 점심시간에 한적한 곳에 가서 읽기도 한다. 운동장을 걸으면서 읽기도 하고 교무실에서도 읽는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면 무작정 도서관에 가서 읽기도 한다. 책으로 버티며 교감 생활하고 있다.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은 2011년이다. 첫해는 걸음마 수준이었다. 다음 해에는 100권을 목표로 책을 읽었다. 드디어 세 번째 해에 100권을 넘겼다. 목표를 200권 읽기로 수정했다. 네 번째 해 200권 읽기를 달성했다. 자투리 시간을 거의 독서에 쏟았다. 걸어가면서 책을 읽을 때도 있었고, 엘리베이터에서도 읽었고, 자동차를 운전하면서 신호에 잠깐 걸렸을 때 그때도 읽었다.



오키나와에서는 버스 운전자들도 신호등이 빨간색일 경우 문고판 책을 펴고 읽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운전 학원에서 집으로 가는 환승 버스 안. 버스가 신호에 걸릴 때마다 운전기사는 책을 읽었다. 커버가 없는 짙은 녹색의 단행본이었다. 책갈피 끝이 살랑살랑 흔들렸다. 빨간불이 들어오면 펼치고, 길이 막히면 또 펼쳐 들고 조금 읽다가 다시 손에서 놓았다.”

_ 『오키나와에서 헌책방을 열었습니다』 중에서


 

책을 읽고 기록하면서 자신감이 생겨났다. 교직과 관련된 전문 서적도 읽었지만 대부분 손에 잡히는 대로 읽었다. 책 읽는 시간은 다양한 분야를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특히 교감이라는 직위에서 교사들에게 뭔가 강인한 인상을 심어준 것이 책이었다. 책 읽는 교감, 서평 쓰는 교감, 책 선물해 주는 교감 등 책을 매개로 선생님들을 만났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쉼을 가졌다.



교감 생활을 버틸 수 있는 것은 독서와 글쓰기다. 책은 좁은 시야를 틔워 준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방법을 알려 준다. 갇힌 생각을 깨뜨려준다. 꼭 필요한 정보를 만나게 해 준다. 깊이 있는 지식으로 성장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교직원들 앞에서 당당하게 서게 하는 자신감을 얻게 해 준다.



우리가 잘 아는 이순신은 독서가였다. 세종대왕, 정조, 이순신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맞다. 모두가 지독한 독서가였다. 이들이 그 자리에서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독서의 힘이었다.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세종대왕은 같은 책을 수없이 반복해서 읽었고 아버지 태종이 아들의 건강을 생각해서 책을 치워버린 적도 있다고 조선왕조실록은 전해온다. 정조다 마찬가지다. 왕권 강화를 위해 본인이 할 수 있었던 점은 오직 ‘독서’밖에 없었다. 규장각을 통해 정책을 이끌 인재를 키워냈고 그들과 끊임없이 토론했다. 왕 스스로가 학문 탐구의 본보기가 되었다. 이순신은 어떤가? 무인의 길을 걸었지만 중국에서 기록된 병법에 통달할 만큼 책을 읽었다. 난중일기에도 이순신의 독서 모습을 볼 수 있다. 전쟁 중에도 그는 책을 읽었다. 나폴레옹도 전쟁 중에 책을 읽었다고 전해온다. 명장 이순신은 청소년부터 학문을 닦고 책을 읽었던 습관에서 비롯되었다. 독서의 힘이 거북선을 생각나게 했다.



거북선은 조선 초기부터 있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전까지 조선 땅에는 큰 전쟁이 없었다. 모두가 안일하게 생각했고 바다를 지키는 수군의 장비들도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었다. 전란의 기운이 감돌자 동네 형이었던 유성룡의 추천으로 전라 좌수사로 파격 승진을 한 이순신은 심상치 않은 일본의 동태를 파악하고 전쟁에 대처하기 위해 전략을 짜기 시작한다. 오래전부터 병법과 전쟁서를 읽어왔던 그는 거북선이 사용되었던 점을 알고 바로 건조에 착수한다. 완공은 바로 임진왜란 발발 하루 전이었다. 기막힌 타이밍이었다.



이순신은 기록의 달인이었다. 기록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던 그는 전쟁 중에도 일기를 남겼고 전투 성과를 왕에게 보고하는 장계에 부하들의 공적을 아주 자세하게 기록해 올려 보냈다. 부하들의 사기 진작과 공과실을 분명히 하겠다는 원칙적인 철학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순신을 따르는 이들도 그의 철저한 기록 습관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전투 중에 적의 머리만 챙기겠다는 알량한 이기심을 버리고 한 명이라도 조선의 포로를 구하기 위해 끝까지 전투 집중력을 잃지 아니하였다. 심지어 노비의 이름까지도 기록에 남겼다. 조선을 통틀어 유일무이한 기록이다.


 

“연암의 입장은 확고했다. 생계를 유지할 정도의 녹봉에 최소한의 노동을 하고, 나머지 시간은 독서와 글쓰기를 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 『조선에서 백수에서 살기』, 49쪽.


 

교감으로 산다는 것은 살얼음판을 걷는 것이다. 책으로 버티는 것이다.



『교감으로 산다는 것』

1장 교감으로 산다는 것은

2장 교감으로 버틴다는 것은

  ① 책으로 버틴다. 

3장 교감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4장 교감으로 만난다는 것은

5장 교감으로 만족한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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