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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창수 Feb 17. 2024

교감으로 산다는 것은, 자존심이 상하더라도

오늘 오후 3시, 화해 조정을 위해 학부모님들을 만난다. 한 시간 남았다. 초조하다. 양쪽 간 오가는 대화에 집중해야 한다. 요구하는 사항이 무엇인지, 감정의 높낮음이 어떤지. 잠시 밖에 나와 공기를 쐬며 머리를 식힌다.


   보통 자녀와 관련되어 좋지 않은 일로 학교에서 만나게 되는 학부모님들은 오실 때부터 표정이 밝지 않다. 반갑게 인사할 상황도 아니다. 초반 분위기는 어색하다 못해 경직될 게 분명해 보인다. 화해와 조정을 위해 어떻게 대화의 물꼬를 터야 할지는 오로지 중재자의 역할을 맡은 교감의 몫이다. 외로운 역할이다. 


   참석한 양쪽으로부터 공격받기도 한다. ‘노력하겠습니다’, ‘신경 쓰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몸을 낮출 수밖에 없다. 자존심이 상하더라도 괜찮다. 이것이 양쪽을 위한 최선의 태도라고 생각한다. 오랜 경험으로. 양쪽 모두의 학생들이 우리 학교 애들인데.


   오늘 모임을 위해 교장실을 잠시 쓰기로 교장님과 사전 약속을 했다. 중재자의 역할을 해야 하므로 최대한 복장에도 신경을 썼다. 정장 차림으로 만나는 것이 중재자의 말 한마디에 있어 무의식적으로 힘이 실리지 않을까 싶다.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아빠와 엄마 모두 오는 집도 있고 아빠만, 엄마만 오는 집도 있다. 아무튼 양쪽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최종적으로 요구 사항에 맞는 해결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사안 처리로 바로 가지 않고 중간에 교감이 주도하는 ‘화해 조정’의 시간을 갖는 것은 회복을 위해서다!


   징벌적 개념의 사안 처리는 행정적으로는 깔끔하게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내면에는 상처와 앙금으로 오랫동안 남게 된다. 서류와 매뉴얼로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사과와 용서, 대안 마련으로 함께 얼굴을 보며 이루어지면 치유와 회복의 시작이 될 수 있다. 


   중재자의 역할을 맡은 나 또한 그리 편한 마음이 아니다.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예측할 수 없다. 아무쪼록 대화의 골이 깊어지는 것이 아니라 메워지는 시간이 되기를 기도한다. 학부모와의 소통은 학교의 교육적이고 인간적인 분위기를 학교 주변에, 가정에 알리는 도구가 된다. 종합적이고 깊이 있게 문제 해결을 위해 열심히 실천하는 곳이라는 느낌을 가지게 해 준다. 문제 예방과 해결 능력을 발휘하는 믿음이 가는 학교로 인식하게 만들어준다. 


   한 시간 정도 화해와 조정의 시간을 가졌다. 감사하게도 서로 간의 진솔한 대화를 나누게 되었고 보호자의 입장에서 책임감과 함께 미안한 마음, 죄송한 마음들을 나누게 되었다. 가령 각자의 입장만 고수한다면 충분한 화해의 시간을 갖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기에 오늘 함께 한 모든 학부모님들께 감사드린다. 


   학생을 교육하는 기관에서 학생들의 돌발적인 행동을 수정하고 변화시켜야 하는 학교의 몫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현재 부모들의 공교육에 기대하는 패러다임이 예전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대다수 학부모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적인 견해는 학교가 전적인 책임을 지라는 패러다임이다. 압도적이다. 선생님들이 학교 관리자들을 향해 책임지라고 하는 것처럼. 


『교감으로 산다는 것』 

(2024년 출간을 목표로 준비 중, 199쪽)

1장 교감으로 산다는 것은

2장 교감으로 버틴다는 것은

3장 교감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4장 교감으로 만난다는 것은

① 토요일 아침부터

② 상담이 아니라 대화로

③ 통제하고 관리하려는 마음이

④ 자존심이 상하더라도

5장 교감으로 만족한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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