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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창수 Feb 18. 2024

교감으로 산다는 것, 공감이 아니라 감정노동을

하굣길에 일어난 일이다. 한 학생이 충동적으로 다른 학생을 때렸다. 피해받은 학생의 학부모께서 그 사실을 전해 왔다. 이미 담임 선생님들과 통화를 한 상태다. 담임 선생님들이 나를 찾았다. 어제 일어난 상황을 듣게 되었다.      


   “선생님, 관련된 학부모들께는 오늘 제가 전화해서 학교로 오시라고 하겠습니다. 학교 밖 자녀들의 생활 부분에서 어른들의 제어와 관찰이 필요하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학부모들의 생각을 들어보겠습니다.”     


교무실로 돌아와 학부모에게 전화를 걸었다. 학교로 오시라고 말씀드렸다. 학부모의 반응이 무거웠다. 해결 방법을 찾기 위한 방문 요청이었다. 보통 방문하신다고 하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약속 시간이 다 되어갈 때 문뜩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담임 선생님이 함께하면 어떨까?’ 교감의 입회 속에 담임 선생님이 직접 학부모님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판단이었다. 경직된 얼굴로 학부모들이 오셨다. 학부모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재발 방지를 요청해 오셨다. 가정교육 부탁도 했다. 대화의 장을 마련해 드린 것이 적중했다. 


이번 일과 별개로 현재 진행 중인 학부모 민원에 관한 전화로 이미 오전에 두 통을 받은 상태였다. 전화하는 모습을 본 선생님 한 분이 나에게 이렇게 말씀해 주셨다.      


   “교감 선생님, 감정노동에 지치겠어요.”     


좋지 않은 일로 학부모와 전화하는 그 시간은 감정노동이다. 금요일 오후는 선생님들이 거의 자리에 없다. 학교의 빈자리를 지키며 간단히 하루의 기록을 남긴다.      


   “누군가를 공감하기 위해 누가 재가 돼버리는 것은 공감이 아니라 감정노동이다.” _ 『당신이 옳다』, 266쪽.


『교감으로 산다는 것』 

(2024년 출간을 목표로 준비 중, 199쪽)

1장 교감으로 산다는 것은

2장 교감으로 버틴다는 것은

3장 교감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4장 교감으로 만난다는 것은

① 토요일 아침부터

② 상담이 아니라 대화로

③ 통제하고 관리하려는 마음이

④ 자존심이 상하더라도

⑤ 공감이 아니라 감정노동을

5장 교감으로 만족한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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