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감으로 살다 보니 교사 때 만났던 아이들이 이제 훌쩍 성인이 되고 사회에 첫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고등학교와는 달리 초등학교 담임 선생님들은 오랜 세월이 지나야 제자의 성장 모습을 알아볼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면 제자들의 기억 속에 과연 얼마나 남아 있을까 싶은데 막상 제자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세세한 것까지 기억하고 있어 순간 놀랄 때가 많다.
주로 초등학교 때 맡았던 아이들의 기억 속 가장 많이 남아 있는 사건들이 있다면 부끄러운 얘기지만 '체벌'이다. 초임 시절 혈기가 왕성했던 나는 지금으로 따지면 아동학대 수준에 버금가는 체벌 교사였다. 정말 부끄러운 기억이다. 시험을 보고 시험 성적에 따라 체벌을 했으니 말이다. 나름 열심히 아이들의 학력을 끌어올려야겠다는 사명감이 충만했었지만 다른 방법으로 접근했으면 어땠을까 후회로 남는다.
방학 때에는 학교 관사에 살면서 아이들을 학교 교무실로 모두 불렀다. 복식학급이면서 아이들은 모두 합해서 10명 정도였다. 교무실 한가운데 불을 피워둔 난로에 각자 준비해 온 도시락을 올려놓고 데워 먹었던 추억도 제자들의 머릿속에 오랫동안 남아 있다. 드라마 속에 한 장면처럼 보이겠지만 실제 사건이다. 시골에는 학원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한 겨울에 아이들이 갈 만한 곳이 없다. 방학 때 학교에 오라고 하면 아이들은 친구들이 있어 좋았고 학부모님들도 좋아했다. 집에서 빈둥빈둥 있는 것보다 학교 선생님이 공부시킨다고 불렀으니 대만족 하셨다.
지금처럼 방학 때 공부 시킨다고 수당을 받은 것도 아니다. 순수한 마음으로 아이들 가르쳐 보겠다며 자발적으로 했던 일이었다.
어제 정선 출장 가는 길에 제자와 제자의 남자 친구랑 함께 만났다. 어색한 자리였음에도 불구하고 제자의 남자 친구는 반갑게 나를 맞아 주었다. 제자를 만나러 갔는데 이야기는 제자의 남자 친구랑 주로 했다. 자신이 살아가는 이야기, 앞으로 진로, 학창 시절 추억 등을 이야기하며 한 시간가량 대화를 나눴다.
제자가 건네주는 스승의 기념 카네이션 바구니가 들고 포토존이라는 곳에서 사진 한 방을 찍었다.
곤드레 나물로 음료도 만들고 타르트도 만드는 정선에서는 꽤 유명한 카페였다. 정선 카페 '곤디' 라는 곳이다. 카페 부근에는 정선 역이 있었다. 카페 입구구석에는 정선 역을 그림으로 예쁘게 그려 놓았다. 제자의 남자친구의 어깨에 손을 얹고 마치 제자처럼 다정하게 사진을 찍었다.
제자는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했고 그 남자친구도 건축학도다. 마침 내가 가기 전에 미리 온 제자와 남자 친구는 카페 사장님과 뭔가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알고 보니 카페를 새 단장하려고 하는데 관련된 설계도와 디자인을 제자와 그 남자친구에게 부탁하는 얘기였다. 그들의 전공을 살릴 수 있는 좋은 기회였는지 내가 떠난 뒤에도 남아서 많은 이야기를 할 예정이라고 했다.
나는 한 가지 원칙이 있다.
제자랑 만났을 때 밥 값이든 차 값이든 내가 낸다. 제자가 만류해도 무조건 지갑을 열어 카드로 선 결제한다. 아직까지 제자에게 뭘 얻어먹는다는 것이 마음이 편하지 않다. 정선까지 찾아가는 길도 시간을 내는 일이고 정성을 기울이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넙쭉 얻어먹기에는 좀 거시기하다.
앞으로도 그럴 거다. 제자들이 연락 오면 주머니 사정 범위 안에서 내가 먼저 낼 거다. 돈이 가는 곳에 마음이 있다. 제자들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돈에 대해 인색하면 앞뒤가 맞지 않는 삶의 모습일 것 같다.
고등학교 영어선생님의 교단일기인 <오늘 처음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라는 책은 제자를 향한 사랑 중독증에 빠진 선생님의 일상을 기록한 책이다. 가장 공감이 되는 문장을 옮겨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