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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일이 무슨 날이에요?

현충일의 의미

by 이창수

"현충일이 무슨 날이에요" 매뉴얼도 없는 계기교육.

세계일보 6월 6일 자 인터넷 신문 기사 제목이다.



기사 내용을 간추려 보면 이렇다.



학생들이 현충일을 쉬는 날로만 알지 어떤 날인지 모른다, 정작 학교 현장에서 계기교육을 진행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현충일의 의미나 태극기를 게양하는 방법을 배운 적 없다, 계기교육과 관련한 교육청의 관리와 지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라는 성토가 주된 내용이다.



계기교육은 학교 교육과정과 별개로 특정 기념일이나 주제에 관해 이뤄지는 교육을 말한다. 대부분 교사 개인의 역량(관심)에 달려 있는 것이 현실이다. 다시 말하면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계기교육이다. 이런 흐름이 생긴 이유는 획일적 교육에 대한 경계심 때문인 것 같다.



현충일의 유래에 대해 6월 5일 자 경향신문 기사 내용이 인상적이다.



"현충일은 1956년에 6·25 전쟁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날을 6월 6일로 정했다. 처음엔 6·25 전쟁 희생자만을 추모 대상으로 했다. 1965년에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역사 속 국란을 비롯해 일제강점기의 애국선열 등 모든 호국영령으로 대상이 확대됐고, 1970년부터는 공휴일로 지정됐다"



국가의 존립을 위해서 국가유공자의 희생과 헌신을 기리는 기념일은 분명히 지켜져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본다. 보훈의 의미도 그분들의 숭고한 희생을 보답한다는 뜻인 것처럼.



따라서 현충일은 좀 더 의미를 담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경향신문 기사에도 나와 있는 것처럼 기쁜 날이 아니라 슬픈 날로, 몸가짐과 언행을 어느 때보다 조심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졌으면 한다. 아무리 술을 좋아해도 이날만은 음주가무를 삼가자는 기사에 크게 공감이 간다.



애국선열 중 이회영 가문의 이야기는 두고두고 기억해야 할 내용이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전 재산을 내어놓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산증인인 이회영 6형제가 없었다면 일제강점 시 시기 독립군을 양성할 수 없었을 것이다. 백사 이항복의 후손이며 조선조 10 정승을 냈다는 이회영 가문은 일본에 의해 조선이 강제합병되자, 가산을 급히 처분하고 수십 명의 일가친척을 데리고 만주로 떠났다.



석주 이상룡 선생의 가문도 기억해야 한다. 안동의 거부인 그도 이회영 형제와 마찬가지로 같은 시기에 가산을 급히 정리한 다음 조상의 위패를 땅에 묻고 식솔을 거느린 채 만주로 떠났다. 거기에서 이회영 형제를 만나 함께 만든 것이 신흥무관학교이다. 선생은 풍찬노숙하면서 일제에 대한 무력투쟁의 선봉에 섰고, 급기야는 상해 임시정부의 세 번째 국무령이 되어 조국 광복을 위해 몸을 바쳤다. 그는 1932년 중국 땅에서 쓸쓸히 병사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한 나라에서 온갖 혜택을 받았던 사람이라면 그 나라가 침몰해갈 때 자신이 설 자리를 알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는 점이다.



"역사를 통해서 자신의 위치를 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역사의 쓸모, 104쪽)



현충일에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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