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애쓰셨어요!

by 이창수

월간지 좋은교사를 몰아 읽기로 했습니다. 2025년 12월 호입니다. 필명으로 글을 쓰고 있는 낭만티처의 「조금이요」의 글을 읽으며 학교 관리자의 시선이 어때야 하는지 다짐해 보았습니다.


나의 '조금'과 당신의 '조금'이 다르듯 학교 안에서 학교 관리자는 규정이나 매뉴얼, 규칙으로 구성원에게 말을 걸기보다 먼저 살아가는 태도를 삶으로 보여주는 것이 더 설득력 있겠다 싶습니다. 선생님들이 느끼는 학교 안의 현실의 벽은 두텁습니다. 학교 관리자가 '이해하는 눈빛'으로 바라봐 주길 바랍니다. 위로의 마음을 담아 이름을 불러주길 바랍니다.


"위로란, 말보다 진심을 담은 이름 한 번 일 때가 있다"


좋아하지도 않는 일을 해야만 하는 무게, 교사라는 직업은 때로 너무 많은 것을 감당하게 만듭니다. 감정노동, 관계, 시스템의 불합리는 자신만의 리듬으로 살아갈 수 없도록 만듭니다. 삶을 옭아내는 족쇄 같지만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하루하루를 버티는 삶을 살아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들은 아이들의 눈을 바라보며 함께 울고, 교실 안 작은 변화에 웃고, 아이들의 마음을 읽어갑니다. 자신만의 삶의 속도로 살아가길 원합니다. 선생님들이 바라는 것은 어찌 보면 큰 것에 있지 않습니다.


조금만이라도 마음을 이해받기를 원합니다.

조금만이라도 자신만의 삶의 속도로 살아보길 원합니다.

조금만이라도 기다려주길 바랍니다.


"선생님, 애쓰셨어요"

"선생님, 하실 만큼 충분히 하셨습니다"

"선생님, 이제 신경 딱 끊고 좀 쉬었다 오세요"

"선생님, 나머지는 제 몫입니다"


학교 관리자의 시선이 이랬으면 좋겠습니다.


고상환 성서한국 이사장의 인터뷰를 읽으며 교육자의 삶의 무게를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습니다. 아래는 인터뷰 내용을 요약한 내용입니다.


힘을 얻는 대신 본질과 멀어지고 권력과 자리싸움에 가까이 갈수록 생명력은 희미해진다는 말에 공감이 갔습니다. 교육도 낮은 자리에서 섬길 때, 아픔 속으로 들어갈 때 방향을 잃지 않습니다. 신뢰를 잃지 않습니다.


"교사는 세상을 바꾸는 정치인이 아니라, 아이들의 내면에서 사고의 균형을 세워주는 교육자입니다"


수업을 준비하고, 아이들을 만나고, 예기치 못한 민원과 오해에 시달리면서도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선생님이 있는 한 교육의 공공성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존경은 힘으로 세우는 게 아니라, 삶으로 세우는 것입니다. 교사가 예수님의 마음으로 살아가고, 공정하게 판단하고, 따뜻하게 품을 때 아이들은 그 모습을 통해 그리스도의 사랑을 배웁니다. "지금 있는 그 자리에서 예수님처럼 살아가십시오"


특집으로 다룬 '교사도 시민이다 : 정치 기본권 보장의 길을 묻다'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할 듯싶습니다.


헌법재판소는 정치적 중립성국가권력이나 특정 정당의 영향으로부터 교육을 보호하기 위한 원칙이지, 교사 개인의 사생활이나 사적 영역에까지 정치적 표현을 금지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라고 보고 있습니다. 정치적 중립성을 정치적 침묵으로 이해하는 문화에서 벗어나 교사도 사회 구성원으로서 다양한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존재라는 인식이 필요함을 생각하게 됩니다.


교사를 시민으로 인정한다면 교사의 정치적 권리는 위험이 아니라 건강한 토론 문화를 이끄는 힘이 될 수 있습니다. 교육이 정치권력의 간섭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 교육의 중립성의 의미라는 공감대가 이루어져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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