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장일기
삼월 마지막 날 우리 아이들 네 명 모두 현장체험학습을 가는 날이다. 모두들 마음에 들떠 발걸음이 가볍다. 점심은 모처럼 밖에 나가 고기를 먹는다고 자랑삼아 재잘거린다. 네 명의 아이들이지만 우리 학교로 봤을 때는 전교생이다. 담임 선생님 한 분과 보조해 주시는 선생님 한 분, 운전 주무관님과 함께 떠나보낸 뒤 쉼을 갖자는 의미에서 남아 있는 교직원들을 근처 치유의 숲으로 모시고 갔다. 물론 사전에 계획한 거다.
한 창 계곡마다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올해는 유난히 진달래가 많이 보인다. 비가 온 뒤라 물을 머금은 진달래가 더 싱그러워 보인다. 산자락에 피어 있는 진달래에는 자연의 오묘한 섭리가 깃들어져 있다. 삼월에 숲이 우거진 곳에 가면 분홍빛 진달래가 먼저 피는 이유는 생존 본능이기도 하겠지만 다른 나무들의 배려가 아닐까 싶다. 진달래가 꽃을 피우도록 잎사귀를 내는 일을 잠시 미루는 배려심이 숲의 생태계의 원리인 것 같다. 우리 사는 세상도 그러했으면 참 좋겠다.
노랗게 꽃을 피워낸 생강나무도 우리를 반겨주었다. 강원도에서는 생강나무를 동백나무로 칭하기도 했다. 김유정 소설에서 동백기름을 머리에 바르는 장면이 나온다. 강원도를 배경으로 쓴 소설 속의 그 동백기름은 삼월에 꽃을 피운 노란 생강나무 열매를 짜낸 기름을 말한다. 그래서 생강나무가 아닌 동백나무로 오래전부터 불렸다고 한다. 잠시 사무실을 벗어나 자연에 나오니 머리와 가슴, 마음속까지 모두 시원해지는 느낌이다. 스쳐 지나가던 식물의 이름도 귀에 쏙쏙 새겨진다.
만약 교직원들과 학교 안에 있었으면 컴퓨터 화면을 보며 일에 몰두했을 터인데 억지로라도 구실을 삼아 숲으로 모시고 오길 잘했다. 무엇보다 전교생이 모두 밖으로 현장체험학습을 온종일 다녀오기 때문에 학교 급식이 안 된다. 아이들이 없으면 학교 급식법에 조리를 할 수 없게 되었다. 결국 남아 있는 교직원들의 한 끼 식사를 학교장이 책임(?) 져야 하는 상황이다. 잘 됐다. 이때가 지갑을 열 때다. 근사한 메뉴는 아니더라도 근처 맛집으로 소문난 곳으로 모시고 갔다. 닭발 한 접시, 손칼국수로 대접하고 후식으로 커피와 음료까지 풀코스로 섬겨드렸다.
"교장 선생님, 오늘 너무 많이 쓰신 것 아니에요? 이러다가 사모님한테 혼나겠어요"
혼날 일은 없겠지만 이런 일로 혼나면 참 기분 좋은 일이다. 훌륭한 교장은 세 가지를 잘해야 한다고 들었다. 칭찬하기, 고개 끄덕여 주기, 지갑 열기. 말보다 행동으로 보이고 삶으로 실천할 때 교직원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 것 같다.
쉼을 끝내고 학교에 들어와 급한 공문을 해야 했다. 교육지원청에서 학급 증설 요구에 따른 학교장 의견서를 보내달라고 급하게 연락이 왔다. A4 한 장 분량에 깨알처럼 써서 보냈다. 좋은 징조가 보인다. 기다림의 시간이다. 오후 3시에는 앞으로 있을 야외 영화제를 위한 지역 사회의 협조를 얻기 위해 중요한 분과 미팅이 있었다. 학교장이 되어 보니 대외적으로 협력을 끌어내기 위해 만남과 대화의 시간이 필수였다. 도움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찾아뵙고 성의를 보여야 그분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
"교장 선생님, 학교는 도움만 받기만 하지 소통이 없어요!"
따끔한 일침을 들었다. 맞는 말씀이다. 학교 현장의 교장 선생님들이 해야 할 역할을 우회적으로 하신 말씀이다. 작은 학교 교장이라고 해서 한가(?) 하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오히려 사람이 없기 때문에 두 배 세 배로 뛰어야 한다. 교감 선생님도 안 계시고 부장 선생님들도 없기 때문에 가용한 안력은 오직 나 하나밖에 없다. 지역 사람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