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1번 - 당신이 등장하지 않는 당신의 가족 이야기를 골라라. 어머니, 오빠, 증조이모 등 내레이션 담당을 정하고 그 사람의 목소리로 가족 이야기를 써 보아라.
2021년 9월 1일
추석이 다가온다. 아버지 모시고 어머니 산소에 다녀와야 하는데...
코로나 시국이 다시 엄혹해져서 추모공원의 입장을 네 명으로 제한한다고 하니 모두 함께 갈 수는 없지만, c(큰여동생)와 y(작은여동생)에게 알리기는 해야 하겠기에 남매톡에 남겼다.
역시나 둘은 바쁜 것 같다. 두 동생은 언제나 바쁘다. 사는 데 여유가 없다고 해야 하나, 스스로 볶는 성격들이기도 하고, 편안해 보일 때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막냇동생 y는 특히 완벽주의자이다. 두 딸에게까지 그걸 요구하는지 딸들과 갈등을 많이 겪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면서도 아이들과 아빠의 관계가 안 좋다고 늘 걱정이다. 흔히 하는 말로 현실 남매라서 서로 전화할 일이 없는데, 언젠가 y로부터 전화가 왔다. 제 남편과 큰딸의 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아 가고 있는데 어떡하면 좋겠느냐는 것이었다. 딸이 아버지를 증오도 아니고 저주한다는 말을 하며 울부짖었다고 하니 내가 들어도 가슴이 탁 막혔다. 그 말을 하며 y는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오빠라고 결혼한 동생의 가정사에 해결사로 나설 수도 없고, 만나서 술 한 잔 사주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기에 y와 만났다.
y는 전화로 다 한 얘기를 복기하며 혼자서 술이 취해 버렸다. y를 집으로 데려다 주니 그 애의 남편이 무구한 얼굴로 나를 반겼다. 내 손을 잡아 끄는 그를 보니 그렇게 순한 사람이 아이들과 아내에게 폭언을 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제 안사람을 뉘어 놓고 나온 애들 아빠는 주차장까지 나를 배웅해 주겠다며 나섰다.
편의점에서 맥주를 몇 캔 사다가 벤치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니, 평소에 말수가 적은 그도 어지간히 억울했는지, 자기는 딸들과 잘해 보려 하는데 애들 엄마가 중간에서 자꾸 사이를 벌려 놓는다고 하소연을 했다.
"애들 엄마는 성장기 아이들이 혹여나 상처 받을까 걱정돼서 그런 거겠지, 어디 자네를 못 믿어서 그랬겠나."
그의 어깨를 토닥여 주고 돌아섰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내 처지를 떠올렸다.
아들이 중학생이 되었을 적부터 그 애와 갈등을 겪고 있는 나 역시 별로 내세울 것이 없다.
우리 사이에 아내가 있다. 아내는 부드럽고 원만한 사람이라 아이들에게는 물론 친정이나 시집 식구들에게, 지인들에게 신망이 두텁게 살아왔다.
그런데 유독 내가 아이에게 무슨 말이라도 하면 아이 편을 들며 나를 말렸다. 내가 아들을 해코지라도 할 것처럼 과민하게 반응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녀석이 대학에 들어간 뒤에도 우리 셋의 관계는 나아지지 않았다.
학교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 같지도 않고 방학이 되어도 제 방에서만 틀어박혀 지내기에 답답한 건 사실이었다. 코딩이라도 배우러 다니길 바랐으나 당사자는 아무 의지도 없어 보였다. 그래서 한 마디 했다.
"어디라도 나가라."
그러자 아내가 날 선 목소리로 따지고 들었다.
“당신은 우리 아들을 못 부려 먹어 안달이야. 군대 가기 전에 저런 시절 좀 누리면 안 돼?”
유흥비를 벌기 위해서든, 배낭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서든 수능 끝나자마자 아르바이트를 많이들 한다고 하는데, 아무 경험도 하려 들지 않고 누구도 만나지 않은 채 방안에만 박혀 지내는 녀석이 안타깝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한 것은 사실이었다.
이십 대의 경험을 쌓는 것은 평생의 원동력이 된다고 믿는 나를 아내는 아들 부려먹고 싶어 안달 난 아버지로 치부하는 게 서운했다.
아내는 명절날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느닷없이 속내를 비쳤다. 참을성 많은 사람이 아들에 대해서만큼은 과잉 반응을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 날 들은 이야기는 상상도 못한 내용이었다.
아들이 네 살일 때의 이야기다. 아들은 그 시절에 스케치북에 제 엄마와 자기만 그리곤 했다.
아들에게 아빠는 없던 때였다. 프로그램 개발한다고 날마다 야근하고 자정이 넘어 귀가했다 새벽같이 출근하고 주말도 없이 일하던 시절이었으니.
어느 날 아내가 아들을 데리고 슈퍼에 갔는데 아들이 냉장고 쪽으로 총총 뛰어가더란다. 문 앞에서 칭얼대기에 열어줬더니 두 손으로 소주를 꺼내 제 엄마에게 건네며 얼른 마시라는 시늉을 하더란다.
아내는 그때 둘째를 가졌는데, 아이랑 종일 빛도 안 들어오는 지층집에서 지내며 돈은 쪼들리고 남편은 없고, 시댁에서는 몇 천 만원 돈 문제가 터져 도와야 하게 생겼을 때였다.
그런데 아내는 시어른들보다 자기와 아들을 챙길 새 없는 남편에게 서운함이 더 컸다고 한다. 날마다 아이랑 사라져 버릴까 했던 아내는 싱크대에 소주를 감춰 놓고 한 잔씩 마셨다고 한다. 그걸 아이가 어떻게 보고 제 엄마에게 건넸는지... 그 순간 정신이 바짝 차려지더라고. 그 애가 그렇게 안쓰럽게 컸다고. 남들 다해주는 것도 못해 주고 키운 아들이 독립하기 전 고생을 하는 걸 그렇게 바라느냐고, 아내는 시가 사람들 앞에서 언성을 높였다.
y가 의아하며 미안한 낯빛으로 물었다.
“어머 우리 오빠가 그렇게 가정에 충실하지 못했던 때가 있었어요?”
“아가씨들은 모르죠. 오빠가 얼마나 무심한 사람인지. 아버지한테 하는 것 보면 신기할 정도예요. 어머니한테 못한 거 갑절로 하려는 건가 보다 해요. 하여튼 저는 그때 살던 동네는 근처도 안 가요. 지옥 같았어. 우리 아들 아니었으면 견디지 못했을 거야. 남편이라고 아무짝에도 쓸모 없었지요. 그때는.”
이제 와서 아버지 노릇 하려는 게 어쭙잖다는 뜻이었으리라.
늦은 밤 퇴근하면 아내와 아이들이 거실에 모여 텔레비전을 보며 웃고 있다. 그러다가도 내 모습을 본 가족들은 어색해 하며 죄다 자기 방으로 모습을 감춘다. 나라는 존재는 가정 살림이 유지되게 돈을 벌어다 줘야 하는 존재일 뿐인 것이다.
그래서
나만의 비전을 만들기로 했다. 남매에게만 목을 매는 아내는 작은애 대학 들어가면 나와 함께 살려고 하지 않을 거라 예상한다. 몇 년 전부터 내가 말리는데도 대학 병원에 막일을 하러 나가고 있는 아내는 경제적 자립을 준비하고 있는 모양이다.
나는 은퇴 시기인 2년 뒤쯤 양평이나 남양주에 집을 얻어 독립하려고 자금을 모으고 있다. 가족들에게 해야 할 도리는 할 만큼 했으니 이제 내 마음대로 살아도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