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면 좋아하세요?

우리 이모의 시그널 요리

by 창창한 날들




큰이모네 냉면을 먹고 자란 나는 함흥냉면과 평양냉면이 맛있는 줄을 모른다.

소복한 면발 위에 쇠고기 양지로 우려낸 육수를 붓고 가늘게 채 썬 오이와 당근을 뿌린 뒤 납작한 무생채를 더하고, 쪽쪽 찢어낸 닭가슴살 조각을 푸짐하게 얹은 데다 완숙 달걀 반 쪽까지 살포시 놓으면 완성.

특별할 게 없는 냉면이 왜?

동네 어귀의 이모네 냉면집에 다른 동네 사람이 우연히 찾아들었다가 단골이 되어 일부러 냉면을 먹으러 오기도 했다.

서울 변두리의 가난한 동네에 이모네 냉면은 넉넉한 양의 쫄깃한 면발에 구수한 고기국물, 칼칼한 양념맛이 더해진 데다 고명까지 푸짐하게 얹어진 든든한 한 끼 식사였다.


그 중 비밀 병기는 양념장이었다. 양념장 그러니까 '다대기'가 다했다. 어떻게 맛을 낸 건지 물을 사람이 없어 자세하게 쓸 수는 없다.

다대기를 만드는 날엔, 늦은 밤까지 줄 이은 손님들의 머리를 해 주느라 피로에 지친 엄마까지 양파와 파를 다지고 고춧가루를 풀어 젓는 일에 달려들었다.

이모네 사 남매와 우리 삼 남매는 학교가 끝나면 냉면을 간식으로 먹었다. 정식 냉면이 아니라 국수 가락이나 찬밥을 만 냉면 아류였다. 손님이 남긴 국물이 아까워 오이채를 더 얹고 참기름을 몇 방울 뿌려 밥을 말아 먹는 날도 많았다. 가족 모두가 그게 지저분하다고 생각하기보다 한 방울이 아까웠다.

십여 년의 세월에 이모의 암이 세 차례 재발하는 동안 이모의 냉면은 명맥이 끊어지고 말았다.

큰이모가 돌아가신 몇 년 뒤 큰이모부의 장례식에서 이모네 자녀들과 우리 식구들은 그 냉면보다 맛있는 냉면을 찾아 삼만 리를 했다며 입을 모았다. 아무도 그보다 맛있는 냉면을 찾지 못했다.

큰이모는 칠 남매를 평등하게 먹였다. 이모네와 겸상한 적이 잦아서 우리 식구끼리만 밥을 먹는 게 허전할 정도였다.




환갑이 넘은 나이까지 미용실을 운영하던 엄마가 다리를 다치는 바람에 폐업하게 되었을 때 엄마는 한동안 공황상태였다. 미용 때문에 못했던 집안일에 몰두하였다.

특히 두 분만 지내면서 각종 밑반찬은 물론 김치, 짠지, 피클, 매실과 오미자 진액들을 넘치게 담갔다. 두고두고 먹는 그것들은 당신이 세상을 뜬 후 삼 년 이상 우리 형제들의 냉장고에 남아 엄마를 추억하게 했다.


어느 날 친정을 방문한 내게 칠순이 넘은 엄마가 냉면을 만들어 주겠다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었다. 나는 이모 냉면 맛이 아니면 다 그렇고 그런 냉면이라 기대심도 없이 그러시라 했다.

아버지가 의기양양한 낯빛으로 거들었다.

"느이 엄마가 이모 냉면 맛을 냈다. 맛이 기가 막혀. 여보 그 다대기 보여 줘."

평소 엄마가 하는 거라면 다 맛있다고 하는 아버지라서 정말로 기대하지 않았다.

드디어 이모가 해 주던 냉면 비주얼 그대로 세 그릇의 스테인리스 냉면기가 상 위에 놓였다. 다대기를 국물에 푼 뒤 한 모금 마셨다. 이모의 맛이었다.

음식을 먹으며 눈물을 흘린 최초의 기억이다. 엄마와 아버지까지 눈시울을 붉히며 코를 훌쩍였다.




이모의 식은 몸이 불에 태워질 때 우리 삼 남매는 자기 엄마를 잃은 것처럼 슬피 울었다. 우리 옆에서 울부짖는 엄마야 당신 엄마 같은 분이자 유일하게 생존한 손윗사람이 떠났으니 그럴 법하다고 하더라도, 동생과 오빠, 나는 왜 이렇게나 슬픈가. 우리 셋은 서로 어리둥절해했다.

이 글을 쓰다 보니 '음식 이야기'라는 소재로 글을 쓰려고 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게 왜 이모의 냉면인지 알 것 같다. 이모의 음식을 먹고 자란 우리는 그녀의 새끼들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서울 변두리 가난한 동네에 살며 먹을 게 늘 부족했던 어린 시절, 이모의 냉면은 인정 가득한 영양소이자 모두의 입과 눈과 코를 흐뭇하게 한 마음의 양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