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에 대해 네가 아는 어떤 것이든, 어디에든 써도 돼. 이 나이에 부끄러울 게 뭐가 있겠나."
덕분에 아버지는 내 글의 주요 인물이다.
아버지는 십오 년 동안 아파트와 빌딩에서 경비일을 하였다.
가족 모임으로 삼 남매가 방문한 날이면 아버지는 종일 우리와 시간을 보내고 밤 아홉 시쯤 먼저 잠을 청했다. 다음 날엔 24시간 노동을 하러 나가야 했기 때문이다.
새벽 다섯 시에 아버지 휴대폰의 알람이 울리면 아버지는 기계처럼 일어났다. 엄마 생전에는 반찬을 챙겨 드리는 엄마의 배웅을 받았지만, 엄마가 세상을 떠난 뒤에는 홀로 새벽 출근 준비를 했다. 거실에서 자던 내가 배웅을 하려고 일어나면 아버지는 미안해하며 이불을 여며 주었다.
늦은 밤까지 놀았던 식구들은 잠 속에 빠져 있었고, 아버지는 식구들이 깰까 봐 전날 현관 앞에 준비해 둔 것들을 한 손에 반짝 들고 나섰다.
아버지의 오토바이 소리가 날 때까지 이불속의 나는 알람 음악의 여운 때문에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삼 년 전 오토바이로 출근하는 길에 다리를 다치는 바람에 실직한 아버지는 휴대폰을 바꾸었고, 요즘은 이 알람을 사용하지 않는다.
이 알람 곡의 제목이 무엇인지 궁금했지만 쉽게 찾지 못했다. 휴대폰 설정에 들어가면 알람 음악의 제목이 명시되어 있었을 텐데, 그때는 그런 방법을 몰랐는지 오랫동안 미지의 곡이었다가 몇 가지 우연이 겹친 어느 날 드디어 곡의 정체를 알았다.
친구가 공유해 준 '기억의 습작'을 듣다가 우연의 끈은 지금도 의아한 방향으로 이어졌다. 그 곡은 '신지혜의 영화 음악' 오프닝곡이며 한 친구가 인생작이 될 거라 의심치 않는다며 권해 준 영화 <일 포스티노>의 OST였다. 우연이 내게 '너만 귀를 열고 눈을 뜨면 돼' 하며 기다렸다가 여러 갈래에서 몰아서 오는지.그즈음 독서토론 모임에서 토론한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를 영화화한 작품이었다.
'일 포스티노'를 본 나는 친구에게 몹시 미안해졌다. 그 친구는 몇 년 전부터 이 영화를 보고 자기와 이야기하자고 거듭 권유했더랬는데 나는 건성으로 대답하고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몇 년을 지나 보냈다. 그녀가 이전에도 애니메이션을 권하여 시청해 보았지만, 내가 공감하기 어려운 작품들이었으므로, 영화 <일 포스티노>를 듣고도 검색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다. 만약 내가 친구의 권유를 귀담아듣고 한 번이라도 찾아봤다면 그 음악을 조금 빨리 만났을 텐데. 선천적으로 팔랑귀 스타일인 내가 가끔 똥고집을 부려 일을 어렵게 만들고 멀게 돌아갈 때가 있다. 이 경험이 대표 사례였다.
일 포스티노 이후 어떤 이가 무언가를 권할 때 그이의 말대로 해 보게 되었다. 권해 준 이에 대한 화답이요, 어려운 길도 쉽게 가게 만든다는 걸 깨달았던 경험 덕분이었다.
이 영화 <일 포스티노> 이야기를 해 보자. 주인공 '마리오'가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로 만나 시(詩)를 배우게 된다. 사랑하는 여인 베아트리체에게 잘 보이고 싶던 그는 시(詩)를 지어 마침내 그녀의 사랑을 얻는다. 존경하는 시인을 향한 청년의 순박한 마음과 시를 배움으로써 사랑과 사회적 의식이 확장되는 과정을 잘 그려낸 일 포스티노는 해학과 슬픔과 메시지 모두 잊을 수 없는 작품이다.
게다가 X와 함께 책 토론과 영화 감상을 했고, 두 장르 모두 우리 둘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X를 아프게 기억하는 한 이 작품은 아린 맛 하나 더 추가된 것으로 남을 것이다. X와 나는 서로를 믿고 좋아하던 감정에서 멀어졌으므로 마리오를 사랑의 마음만으로 추억하는 베아트리체가 부럽기도 하다. 벌레도 잡고, 온갖 병도 퇴치해야 아름다운 꽃밭을 가꿀 수 있는 걸 알면서, 누군가와 사랑을 나누는 일에는 그런 지난한 과정이 쏙 빠지기를 바라는 내가 모순덩어리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