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 년 동안 사촌 언니 오빠들에게 물려받은 옷으로 학교에 다니느라 의기소침했던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럼에도 복장으로 자존심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허락지 않아서, 티셔츠에 청바지로 단정하게 입고 다녔다.
대입이 끝나고 당락이 결정된 고3 교실의 풍경은 희비가 엇갈렸다.
그래도 졸업식 날 어떤 옷차림으로 기념할 것인지 떠드는 것은 소녀들을 흥분케 하는 이야깃거리였다.
백화점에서 옷을 새로 샀네, 쌍꺼풀 수술을 예약했네, 도심의 유명 미용실에 갈 거네, 술렁거리는 친구들을 보니 나까지 마음이 들떴다.
빚내서 입학금을 내 주기로 한 가정 형편을 아는지라 졸업식에 입고 갈 이쁜 옷 한 벌 사 달라는 말은 꺼낼 엄두도 내지 않았다. 그래도 추억거리는 만들고 싶고, 그렇다고 늘 입던 옷을 입고 가는 것도 재미없었다.
요즘 같으면 아이들 졸업 사진과 졸업식 코스프레가 일상이 되었지만 그때만 해도 정장 아니면 단정한 차림으로 참여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엄마, 남자 한복 있어?" 미용을 하던 엄마는 늘 바빠서, 내게 별 걸 다 내놓으란다고 나무랐다. 여자 한복을 찾아주겠다는 엄마에게 빽 소리를 질렀다. "나 추억 만들고 싶단 말이야. 여자 한복은 너무 뻔하잖아. 게다가 치렁거리는 치마를 입고 다니면 얼마나 불편해." 엄마는 옆집 사는 큰 이모부의 낡은 한복을 빌려다 주었다. 남장은 흔한 숙녀복 원피스와 투피스를 이길 만큼 눈에 띄는 소재였다.
친한 친구부터 친하지 않던 학생들까지 함께 사진을 찍자며 달려왔다. 지나가던 선생님들까지 기꺼이 내 옆에 서서 "찍어라" 했다.
용감하다는 소리를 제법 들으며 자랐다. 그런데 실은 존재감 없는 사람이 되기 싫어서 튀는 쪽을 선택했던 것 같다.
가정 형편이 넉넉했다면 백화점 옷(또는 새 옷)을 입고 졸업식에 가는 걸 당연하게 여겼을 테고, 별다른 추억도 쌓지 못했을지 모른다.
하나 마음 한편에선 나도 예쁜 새 옷을 입고 어른 되는 날을 기념하며 뽐내고 싶었다. 부모님이 워낙 뭐가 없었던 덕분에, 내 존재감을 뿜어낼 뜻밖의 아이디어가 튀어나왔을 뿐이다.
대학에 입학하자 의복은 새로운 문젯거리였다.
여자대학교라서 예쁜 숙녀복을 입고 다니는 학생들을 따라가기엔 가랑이가 찢어질 판이었다.
나는 졸업 선물로 아버지가 옷을 사 준다기에 편안한 트레이닝복을 골랐다.
노란 색깔로.
빨간 운동화까지 세팅한 복장으로, 그 해 내내 캠퍼스와 지하철역, 도심을 쏘다녔다. 서울 변두리, 촌스러운 소녀는 새내기였기에 오히려 건강해 보였던 것 같다.
선배들에게도 충분히 이쁨을 받았다.
X도 그런 나를 귀여워해 주었다.
용기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었을까.
스물하나에 한 사람을 사랑해 야반도주하듯 함께 도망하여 살게 만드는 데까지 나아갔다면, 남장을 한 졸업식은 태동부터 위험한 것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