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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창한 날들 Dec 10. 2022

막귀로 듣는 음악 세상

Rhythm and Poetry


내 귀는 막귀다


'음질이 나빠도 알아채지 못하는 귀를 막귀라 한다'(나무위키)면 내 귀는 막귀다.

막귀도 음악에 배고파할 줄 안다.


X는 예민한 귀를 가져서 그를 흡족게 하는 연주곡을 찾기 쉽지 않았고, 어느 날부터 우리 집에서는 음악 소리가 사라졌다.

X와 만나게 된 계기가 '말러'였던 만큼 클래식이 우리 둘을 이어놓았고, 클래식 작곡가들에 관한 그의 박학다식함 덕분에 나 역시 클래식과 가까워졌다. 


그런 우리가 음악을 듣지 않는 사람들이 되어버린 것이다. 오래 귓병을 앓던 나는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면 통증을 느꼈다.

헤어지기 1년 전쯤부터 방을 따로 쓴 덕분에 내 방에서 음악을 들었지만, 그마저도 예민한 그의 귀에 거슬리지 않게 큰 소리로 켜진 않았다. 노인처럼 소리를 크게 켜야 영화든 음악이든 선명히 들을 수 있는 늙은 귀를 가진 나한테 작은 음악 소리는 스트레스가 될 뿐이었다.


순천의 원룸에서 지내는 1년 동안은 온전한 내 공간을 음악으로 채울 수 있었다. 도서관에서 공부할 때나 산책할 때에도 헤드셋으로 음악을 늘 가까이에 두었다.


3학기 시험이 끝난 다음 날, 오전 시간 내내 대자로 누운 채 볼륨을 한껏 키워놓고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과 3번, 말러 교향곡 3번과 5번, 쇼스타코비치 혁명을 이어서 들었다. 책을 읽거나 글을 쓰면서 배경음악처럼 듣던 음악들을 그것 자체로 들었던 특별한 경험이었다.

대학원 4학기를 앞둔 복잡 미묘한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다. 3학기를 잘 마무리했지만, 1학기를 남겨둔 시점에서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는 자괴감과, 안산으로 돌아오면 내 자리가 없을 거라는 불안감도 컸다.



랩의 바다에 풍덩

 

방학이 되어 서울에서 에미넴의 언더그라운드 시절을 다룬 영화 '8마일'을 보았다.

에미넴은 디트로이트의 생산직 노동자로 일하면서 시궁창 같은 현실을 살아야 했다.

성공을 꿈꾸는 가난한 청년 지미(에미넴)가 버스에 올라타자마자 낡은 종이 묶음을 꺼내 깨알 같은 글씨로 가사를 적는 장면이 있다. 자신의 남루한 삶의 순간들을 쓰는 그의 마음에 이입되었다.

이후 소설이 안 써지면 8마일 뮤직 비디오를 보다. 그의 랩을 듣다 보면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내가 처한 현실은 그렇게 힘든 것이 아니야, 하며 한없이 바닥으로 치닫는 나를 세울 수 있었다.

영화의 주제가인 'Lose Yourself'를 비롯해 에미넴의 주요 곡들을 찾아 듣고, 다른 래퍼들을 찾아 유튜브를 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외국의 문화를 시라는 함축된 언어로 읽어내는 것은 쉽지 않았다.


https://youtu.be/bRdeiZTeOtM

영화 '8마일'과 'Lose Yourself'


우리나라 래퍼들이 궁금해져서 쇼미더머니, 고등 래퍼 시즌을 정주행 하기 시작했다.

랩에는 현실은 막막하지만 어떻게든 성공을 향해 가 보겠다는 부르짖음이 있었고, 지금 여기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있었다. 가족과 친구에 대한 상처와 위로들이 담겨 있었다. Rhythm and Poetry였다.

그들의 소속사,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궁금해져 찾아보다 보니 힙합씬은 다양한 이야깃거리들과 성공신화가 많았다.

무엇보다 마음에 든 것은 음악을 대하는 그들의 자세가 놀라울 정도로 열정적이고 성실하다는 것이었다.


아이돌 그룹에 래퍼가 한 명 이상 꼭 포진돼 있다는 것도 알았다. 슈가와 RM과 지드래곤, 지코, 송민호 등의 능력이 출중하며 작업물의 양도 상당하다는 것을 알게 됐고, 그들의 뼈를 깎는 창작 과정은 감동스러웠다.

이러한 간접 경험은 단편 소설에서 인물을 만들어 내는 데 영향을 주었다.  

작사가의 가사에 맞춰 자신의 감정을 동기화하는 일반 가수들과 달리 래퍼들은 자신의 삶의 조각들을 한 편의 시로 길어 올린 뒤 비트에 맞춰 읊조린다.

때로는 비속어가 들어가고 누군가를 저격할 때도 있지만, '지금 나는 무엇을 바라보는가,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관한 솔직한 목소리와 래퍼의 사유를 보게 된다. 그들과 나는 다를 바 없었다. 자전적 이야기를 소설로 쓰는 나와 비슷한 면이 있어 더 공감했던 것 같다.  

랩의 바다에 풍덩, 막귀 창창한 날들은 음악의 바다에서 원 없이 뛰어놀았다. 때는 2018년.

삶의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음악만큼은 가장 가까운 친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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