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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창한 날들 Jan 13. 2023

함께 놀다

방황 끝에 찾은 길




2018년, 대학원을 수료하고 나면 안산에 돌아와 무얼 할까, 무엇이 될까 고민이 많았다.

소설가도 돼야 하고, 학원에도 돌아가야 하지만, 소설가는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걸 느꼈고, 학원에 돌아가는 것은 X가 막는 것 같은 인상을 주었다. 아마 그때부터 나와 함께 일하는 걸 어떻게든 피하려고 했던가 본데, 눈치 없고 자신감이 떨어진 나는 있던 자리로 돌아갈 생각만 했다. 

그는 '학원 밖에서 놀아라'라는 메시지를 이렇게 건넸다.

"당신은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고 글 쓰고 책 읽는 데 관심이 많으니까 법인을 만들어 활동가로 살아가는 건 어때? 전부터 사회 활동 하고 싶어 했잖아."

여러 가능성을 두드려 보아야겠기에 물어볼 만한 주변의 몇 사람을 떠올렸다. 사단 법인 <함께 크는 여성 울림>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마침 독서 심리 치료 모임에서 만나 친구가 된 이가 그곳의 회원으로 있어서 사무국장을 소개해 주었다. 


그분은 뜬구름 잡는 듯한 내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주었고, 좋은 뜻이라면서 응원해 주었다. 법인을 만드는 장단점과 절차, 난점을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다.

'울림'이 2014년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을 때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시위에 동참했던 사람들이 2015년에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세월호 유가족과 협업하고 진상규명 활동에 참여하며, 여성과 남성 모두 주체가 되어 함께 성장하자는 취지로 만들어 삼 년째 활동하고 있다고 했다.

법인 만드는 절차가 복잡하고 100명의 발기인이 필요하다는 말에 주눅이 들었다. 게다가 그 준비를 다하려면 남은 공부는 또 어떡하나. 머릿속에서는 폭풍 같은 생각이 일어나는 와중에 열린 자세로 내 모든 질문에 성실히 답해 주는 사무국장의 매력에 빠졌다.

설명을 다 들었으니 일어나야겠는데 내어준 차도 향긋하고 소박한 공간도 편안하고 좋은 사람을 알게 돼 기분이 좋았다.

세월호 유가족에 빚진 마음이 커서 어떻게든 활동을 해야겠으나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었던 터였고, 울림에 내가 호의적으로 생각한 지인들이 회원으로 있다 하니 인연이 나를 그곳에 데려다 놓은 것 같았다. 무엇보다 사무국장의 매력 컸다.

"울림에 제가 가입할게요. 법인 만드는 건 차차 배우죠 뭐."

나와 함께 법인을 만드는 일에 동참하겠다는 언니가 눈을 크게 뜨고 놀라더니 덩덜아 동참 의사를 밝혔다.

"그럼 저도 함께 가입할게요."

우리는 소리 내 웃었다.

여기까지가 함께 크는 여성울림 가입기였다.



울림 회원은 안산뿐 아니라 서울, 평택, 안동, 전주, 제주 등 전국에 있으며 현재 160여 명 정도다.

코로나 시국에는 줌으로 소모임 활동을 하고, 페미니즘 강연을 하였다. 성평등 교육, 세월호 연대, 그림 배우기, 글쓰기 합평 모임, 인문학 독서 토론, IT 배우기, 볼링, 그림책 토론, 페미니즘 영화 토론, 일요일 등산 모임 등을 함께하고 있다.

활동가들이 지자체에 사업계획서를 제출해서 청소년과 여성을 위한 공모사업을 꾸준히 한다. 그야말로 '함께 크는' 울림이다.

울림은 참으로 신기한 집단이다. 집회 참여와 일상 소모임 활동 두 축을 조율하며 사회운동에 관심이 없는 회원들까지 품는다. 창립한 멤버들이 틀에 매이지 않고, 늘 여유롭게 사람을 대하는 이들이라서 가능한 것 같다. 울림에 가면, 웃음꽃이 만발하고 즐겁다. 평소 뾰족하기 일쑤인 나 역시 유순해지고 넉넉해진다. 창의적인 생각이 솟는다. 숨어있던 끼와 유머가 발휘된다. 하나같이 개성 강한 구성원들인데, 어느새 서로의 빛깔 속에 스며들어 새로운 빛깔로 물들인다.


그곳에 이름을 얹은 지 6년. 내 삶의 큰 분기점이 된 시점이기도 한 때에 울림이 함께 있어주어서 얼마나 든든했는지 모른다.

X와 헤어지고 나서 울림 회원들이 우리 집에 자주 놀러 왔다. 자칫 센티멘털의 저 바닥으로 다운되려던 나를 붙잡아 주었다. 가족보다 더 자주, 더 가깝게.




X의 권유 덕분에 울림을 찾게 됐고, 울림 안에서 새로운 길이 이어지고 있으니 마지막까지 그는 나의 귀인이 틀림없다. 그는 울림 회원이었고, 재능기부로 IT 강연을 여러 차례 해 주었다가 작년에 탈퇴하였다.

작년 봄에 아들이 이십 대 남자로는 최초로 울림 회원이 되었고, 친동생, 친한 동생들, 글벗들까지 연이어 회원으로 가입했다.

우연은 인연을 낳고, 행동과 의지로 새로운 길을 만든다. 우리는 함께 성장하는 공동체 안에서 행복한 성평등한 세상을 꿈꾸며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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