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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창한 날들 Feb 08. 2023

우리의 의지로

아침 낭독회-[책 ZOOM 읽자]



2023년의 첫 달인 해오름달에 뜻하지 않은 성취를 하였다.

'함께크는여성울림'의 활동가인 R의 제안 덕분이었다.


작년 한 해 동안 월, 금요일 밤에 여섯 명이 ZOOM에 모여 각자 자기가 읽고 싶은 책을 읽어 왔다.

'책 ZOOM 읽자'

그날 읽을 책을 간단히 소개한 뒤 화면을 끄고 각자 독서하다 보니 다른 업무를 처리한다든가, 피곤하면 잠깐 잔다든가 하는 일이 생겼다.(다들 성실파로 공인받는 사람들인데도)

내 경우에도 월요일과 금요일에 밤 9시까지 수업이 생기는 바람에 집중하기 어려운 일이 잦아졌다.


올해 이 책 읽기를 이어갈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데 R이 새로운 제안을 했다.

"우리 아침에 읽을까요? 하루를 길게 쓰고 싶네요."

책줌읽자 활동을 계획서로 제출하여 도서관으로부터 도서비도 지원받게 해 준 R의 제안 덕에 1월 2일부터 월, 금 아침 6시에 책을 읽기로 하였고, 첫날 읽어보니 좋아서 주중 매일 읽기로 하였다.


한 권의 책을 정해 돌아가며 자기 목소리가 허락하는 선에서 자유롭게 읽기로 했는데, 첫 책은 R이 그동안 사 두고 미뤄두었다는 벽돌책 <페미니스트로 살아가기>(사라 아메드, 동녘, 2017)였다.

'울림' 단톡방에 공지하고 인스타그램에 소개하여 회원이 아홉 명으로 늘어 함께 읽었고, 2월 2일에 마지막 장을 읽었다. 마지막 문장을 읽는 순간 모두가 박수를 쳤고, 기쁜 마음으로 소감을 나누었다.


늦잠꾸러기인 내게 아침 독서는 혁명이다.

혼자서 못하는 일을 함께 성취할 수 있어 더 감사하다.

별러 오기만 하던 책을 드디어 완독하여 자랑스럽다.

페미니즘 연대감을 느낄 수 있었다.

2023년의 첫 달을 가치 있게 보낼 수 있어 덕분에 감사하다.

포근한 잠과 따스한 이불속을 떨쳐낸 우리의 행동이 대견하다.

- 이상 회원들의 나눔


위와 같은 다양한 후기를 나눈 뒤 2월 3일에는 '밑줄 친 문장 함께 읽기'로 대장정을 마쳤다.




아침 낭독회가 절반을 넘어가던 즈음, 2월에 읽을 두 번째 책에는 사람들을 더 불러 모으기로 하였다.

두 권이 제안되어 우선 단톡방과 인스타그램에 홍보를 하였다.

다만 '코스모스'는 과학 도서라는 두려움 때문에 신규 회원이 몇 명 더 있을 경우 두 책 모임으로 나아가기로 했다.(과학도가 한 명이라도 있어야 재능 기부를 해 줄 텐데 하면서)



 


하나의 성취는 또 다른 아이디어와 확장으로 이어진다.

성취하지 못했더라도 '새로운 시도'에서 얻은 문제의식은 다른 확장을 불러온다.

우리 매일 글쓰기가 그러했듯이.


<코스모스>는 다음으로 미뤄졌고, 2월 6일부터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수전 브라운밀러, 694쪽, 2018, 오월의봄)를 읽기 시작했다. 회원이 열두 명으로 늘었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두 명의 이삼 십대 여성들과 동행까지 하게 되었다.


2월 8일 아침의 낭독회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는 '남성, 여성 그리고 강간의 역사'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아침부터 심히 불편한 책을 읽어도 되겠느냐는 의견도 있었으나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싶다면 반드시 읽어야 할 고전이라는 의견에 설득되었다. (이 책은 1975년에 출간됐다고 한다.)

게다가 아침 낭독회의 기운 나눔, 목소리 나눔 덕에 의지는 배가되고 각자 자신이 더 괜찮은 사람이라고 느끼는 마법에 걸렸으니 무슨 책이든 읽자, 이 루틴을 이어가자 하는 역동이 일어났다.


강간의 뿌리 깊은 역사와 우리 시대의 강간 문화를 대서특필하며 출간 직후 폭발적 반응과 논쟁을 불러일으킨 화제작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
법, 제도, 경찰, 프로파일링, 전쟁, 혁명, 인종, 노예제, 대중문화, 정신분석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강간 관련 자료를 수집, 연구, 비판한 수전 브라운밀러의 고전이 완역 출간되었다. - yes24 소개글 중


이 책의 차례는 아래와 같다.


1. 강간의 대중심리 19

2. 태초에 법이 있었다 27

3. 전쟁과 강간 51

4. 폭동, 포그롬 그리고 혁명 173

5. 미국 역사에 관한 두 가지 연구: 인디언과 노예제 215

6. 통계로 본 강간범: 신화에서 과학으로 267

7. 인종 문제 321

8. 권력과 성폭력 393

9. 강간 영웅 신화 435

10. 여성이 강간을 원한다고? 479

11. 강간 말하기 541

12. 여성이 반격한다 587


오늘 '3장 전쟁과 강간'의 일부를 읽었는데, 너무 참혹한 장면들에 밑줄을 긋기도 힘든 순간이 많았다.


점령군이 벌인 강간은 패배한 쪽 남성의 힘과 소유권에 대한 환상을 모조리 파괴한다. 강간을 통해 여성의 몸은 상징적인 전쟁터가 되며, 승리자가 개선식을 벌이는 광장이 된다. - 62쪽


전쟁이 현대화된 시기를 기점으로 강간 및 다른 테러 무기 사용 빈도가 극적으로 감소한다. (중략)

참호전이라는 새로운 전쟁 시스템에 의해 강간할 기회가 차단되고, 교착 상태로 인해 점령지를 넓히지 못해 강간 빈도가 줄었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가공할 만한 인명 손실이 발생하면서 강간이 야기하는 공포를 압도했다고 결론을 내리는 편이 좀 더 합리적이다.

- 70쪽, 제1차 세계대전 중




이 글을 읽는 분들 가운데 페미니즘에 거부 반응을 일으키는 이도 계실 수 있다.

X와 헤어지기 전 이십 대인 아들과 셋이 대화를 자주 나누었다. 그중 페미니즘은 때로 남과 여로, 때로는 보수와 진보로 우리 식구를 갈라서게 만드는 화제였다. 어느 때는 '~~ 단체'가 낸 팩트를 팩트가 아닌 날조나 왜곡으로 해석하여 대화의 평행선이 길어지기도 했다.

여성의 처지를 대변하는 내가 페미니즘의 과거, 현재를 잘 모르니 내 의견을 말하기가 힘에 부쳤다.

"당신들은 우리가 안 돼 봐서 잘 몰라."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말이었다. 그런데도 여성으로서의 내 몸에 대해 관심이 없었듯 페미니즘에 대해 연구하고 공부할 생각은 늘 다른 지적知的 영역의 확장 의지에 밀려 뒷전이 되곤 했다.

올해 <페미니스트로 살아가기>에 이어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를 읽으며 내 관점이라는 것을 갖추어야겠다는 의지가 생겨났다.

막연한 미래 피해자 코스프레가 아닌, 그리하여 막연한 남성 혐오가 아닌, 남과 여가 평화롭게 상생하고 공존하기의 길을 찾아가고자 하는 나의, 우리의 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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