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창창한 날들 Jan 03. 2023

복면글왕

거룩한 100일 글쓰기 시즌 6 출발!



함께 쓴 우산이 좁았다
쏟아지는 빗속으로 그가 내달렸다
우산 속 광활해진 우주
- 창창한 날들


재미로


X와 헤어지고 나서 매일밤 울면서도 다음 날 아침이면 재미있게 살겠노라고 다짐했다.

가장 재미있는 일은 글쓰기였다.

글이든 그림이든 자기를 드러내고 싶은 욕구는 생존 욕구에서 나온다고 한다.

"나 여기 살아 있어."

라고 외치고 싶은 마음 말이다.

그런데 '글쓰기'만이었다면 외로웠을 것이다. '그러므로 커뮤니티'였다.


재작년 5월 17일부터 달려온 100일 글쓰기 시즌 1부터 5까지 수십 명의 글벗을 만났다. 

전화나 카톡으로 안부를 주고받던 친구들은 때로는 까닭 모를 질투나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해서 애증이 교차했지만, 글로 만나니 그들을 사랑하고 존경하게 되었다.

좋은 글벗을 초대한 벗에게는 더 좋은 사람이라는 신뢰가 굳건해졌다.

글벗들의 다양한 지적 세계와 감성을 맛볼 수 있고 영향받을 수 있었다.

'글로 만난 사이'는 서로에 대한 편견 없이 마냥 아름다워 보였서로를 사랑했다. 누군가는 몇 십 년만에 느껴보는 연애 감정을 갖고 오프라인 모임에 나왔다고 고백했다.

"떨려 죽는 줄 알았어요. 며칠 전부터요."

협심증을 앓고 있는 그녀에게 우리는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었다. 웃지도 못하고 울지도 못하는 고백을 듣고 그녀를 토닥일밖에...


지난 12월 17일에는 그리워하던 시즌 5의 글벗들 열한 명이 우리 집에서 송년회를 했다.

아이 같은 마음이 되어 처음 보는 상대를 향해 박수를 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얼싸안고 빙글빙글 돌며 기쁨을 표현했다.

그중엔 시즌 4개를 들쭉날쭉 인증해 오면서도 사람들이 좋아서 붙어 있게만 해 달라고 애원한 벗도 있었다. 그와 나는 말을 놓는 막역한 사이가 됐다.

우리는 글에서 인상적이었던 내용들을 언급하며 화제를 이어갔다.

"즐겨 부른다던 노래 불러 줘요."

"황제 캐릭터로 여기 포스터 완성해 줘요."

"그때 쓴 그 김치 가져온 거예요? 정말 시원하고 맛있네요."

"수학여행 때 불렀다던 노란 샤쓰 좀 불러 줘요."

100일 동안 읽었던 글에 대한 관심과 애정으로 어떤 송년회보다 친밀했고, 가벼웠으며 웃음이 그치지 않았다. 각자 가져온 맛난 요리들로 풍성함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날 참석하지 못한 세 벗과는 온라인으로 연결했다. 한 시간 동안 한 명씩 번갈아 앉아 컴퓨터 앞에 앉아 그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춤과 노래를 좋아하는 몇 명이 공연을 보여주기도 했다. 참석률 100퍼센트였다.



다시 재미로


500여 일 동안 모은 글 씨앗들로 블로그에도 브런치에도 뿌렸으니, 100일 글쓰기 시즌 1~5의 글벗들에게 단단히 빚을 졌다.

하지만 글 쓰기 해 오는 동안 힐링만 얻었는가? 그렇진 않다.

마음의 폭풍우를 심하게 겪어야 했다.

자랑질을 한 것 같아 후회.

아무 사유도 철학적 고민도 없는 소모적인 글이라 반성.

사람에 대한 애정이 없는 글이라 미안함.

내 글이 관심 좀 많이 받았으면 해서 가진 바람과 욕심.

네 글 좋더라는 말이 절로 나와줬으면 하기를 기다리는 마음.

모든 감정이 액면가대로 드러난 것 같아 부끄러움.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충족되지 않으니 다음엔 글쓰기 밴드를 열지 않겠노라 다짐하곤 했다.

그러고는 또 누군가 꼭 써야 할 사람을 만나면 함께 해 보자고, 조증 상태로 권유하고는 다음 시즌을 또 열었다.

스승님의 갑작스러운 타계로 10년 만에 만나게 친구에게도 권하고 말았다.

중독이나 다름없지만 행복한 동행인 것은 분명하니까.


500일이 넘어가면서 멤버가 겹치고 서로의 글풍과 사정을 어느 정도 아니까 식상하게 느껴진 부분도 없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내 글에 대한 피드백을 받고 싶은 욕망이 가라앉지 않았다.

나는 언제나 그들에게 커뮤니티의 성실한 운영자 이상도 이하도 아닌 존재였다.

로맹 가리가 '에밀 아자르'라는 가명으로 <자기 앞의 생>을 출간한 일이 떠올랐다. 내 이름을 감추고 글을 쓴다면 어떤 댓글과 어떤 평을 들을지 궁금해졌다. 

오랫동안 마음이 아파왔다는 친구힐링을 얻기를 바라는 마음도 새 시즌을 열지 않을 수 없는 이유였다.

 

그래서 시즌 6의 배를 또 띄웠다.

2023년 1월 2일, 바로 오늘!

'복면글왕'이라는 이름으로.

나는 운영자라서 내 이름으로 리더가 되고, 가명 하나를 지어서 이중 가입을 했다.

다들 가명으로 들어오니 기존 시즌에서 함께한 이들은 '다른 글을 써야 한다는 압박감이 컸다'라고 표현했다. 나 역시 댓글 하나에도 '운영자인 나'와 '복면 쓴 나'가 달라야 하므로 온점 하나까지 신경 쓰였다.

낯선 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가 내가 알던 그일까?

그는 누구일까?

우리는 복면 뒤의 얼굴을 최대한 늦게 들키기를 미션으로 걸었다.

그가 누구인지 추리하고, 아무 정보와 선입견 없이 그의 글을 읽을 수 있어 오늘 하루는 특별했다.

복면 쓴 나의 글을 어떤 콘셉트로 나아갈지 고민하는 즐거움과 고통까지 더해, 재미있는 일이 시작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매일 쓰기 1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