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다 8시~9시에 아버지와 통화를 한다. 이 시간에 못하면 저녁 때 하는데 가능하면 아침에 하려고 한다. 내가 혼자 살게 되면서 열심히 전화하게 된 거니까, 서로가 생사 확인하는 의미가 크다고 해야겠다. 아버지는 독거 6년차, 나는 4년차다.
아버지와 통화하며 묻는 내용도 거의 똑같다.
"잘 주무셨어요?"
"아침은 드셨어? 무슨 반찬?"
"이후 일정은?"
그러면 아버지가 묻는 말도 똑같다.
"아침은?"
공복한다는 딸에게 아버지는 매번 묻는다.
"공복하잖아요. 운동 갈 거예요."
하면 혀를 차는 소리와 헛웃음 소리가 들린다.
"그러다 속 버리면 어떡해. 아침밥이 하루 힘인데..."
딸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고 대놓고 하진 못하고 꼬리를 흐리기도 한다.
아버지의 오전 일정은 물리치료를 받거나 사회복지사와 면담하는 것으로 채워지고 점심은 친구분들과 만나 함께한다. 엄마가 돌아가신 6년 전부터 거의 변함없는 아버지의 루틴이다. 아버지의 정확함(정확함 강박이라 해야겠다)을 내가 내려받았다는 걸 엄마의 장례식을 치르며 알았다.
이번 주 화요일 아침, 아버지는 서울에도 비가 온다면서 입원한 친구분의 면회를 가겠노라 했다. 뇌경색으로 쓰러져서 식도에 마비가 온 친구분인데, 방문을 약속했으니 지키겠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몇 년 전 오토바이 사고로 다리 한쪽을 못 쓰게 되었고 절룩거리며 자주 넘어진다. 비 오고 눈 오는 날은 외출을 삼가는 아버지가 우산 쓰고 지팡이를 짚으며 버스를 타고 움직일 것을 생각하니...하 참.
가까우면 내가 태워드린다고 했을 것이다.(아버지의 불편함을 잘 아는 오빠가 아버지의 다리가 되어 주고 있지만 평일엔 쉽지 않은 일이다.)
"아주 심란해. 언제 닥칠지 모르잖아."
"나중에 혹시 다치기라도 하면 비 오는 날 굳이 움직인 게 얼마나 후회되시겠어요? 그 친구분도 얼마나 미안할 거고."
다음 날 통화하니 기어코 면회를 다녀왔단다. 아저씨가 그렇게 기뻐하더라면서 다녀오길 잘했다고 하는데 나도 그냥 웃었다.
아침마다 '오늘도 오케이'를 씩씩하게 외치는 아버지의 음성을 들을 수 있을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전화를 건다. 효녀라서가 아니라 아버지가 아프면 일이 커지는데 하는 염려 때문이다.
조금 전에도 아버지의 목소리를 듣고 안도한다.
자, 이제 마음 놓고 일상 시작!
갑작스럽게 단편소설 창작반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러저러한 연유로 결정하게 된 이후 며칠 잠을 못 잤다. 꽃놀이 대신 글놀이로 머리를 쓰게 될 사월과 오월을 생각하면 막막하지만 어떤 메시지가 왔고 그 메시지에 응답하는 거라고 핑계를 대 본다.
그동안 매일 글쓰기 밴드에서 쓴 글을 다듬어 브런치에 올리곤 했는데, 두 달 동안 그렇게 하기 어려울 것 같다.
당분간 브런치 휴업을 안내하고 문을 잠가 놓을까 하다가, 매일 쓴 글 중 두어 개만 골라 복사, 붙여넣기 하자로 선택했다.
멈추는 것보다는 살살 가는 것으로 결정한 나를 칭찬하면서 오늘, 말개진 하늘에 덩달아 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