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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창한 날들 Nov 05. 2023

이국의 풍경을 만났을 때

거룩한 글쓰기 시즌 8 -2023년 11월 3일 (59일 차)




1. 관산 도서관 가는 길


다음 주에 토론할 책 <슬픔의 방문>(장일호)를 빌리러 관산 도서관을 방문하기로 하였다. 버스를 기다리며 올려다 본 십일 월의 하늘이 청명했다.

며칠 전 관산 도서관에서 정지아 소설가의 강연을 안내받았다. '삶은 어떻게 소설이 되는가'라는 주제가 몹시 끌렸지만, <아버지의 해방 일지>를 읽지 못하여 고민이 되었다. 게다가 강연만 들으면 뭐 한다냐. 직접 써야 말이지, 하는 내면의 소리가 나를 꾸짖었다. 다음 주까지 합평 소설을 내야 하니 우선은 쓰는 데 집중하기로 했다.

군자시장 정류소에서 내리자 도서관 이정표가 보였다. 300미터쯤 걸어가는 동안 이국의 언어로 쓰인 간판들이 낯설었다. 차로 갈 때는 아주 잠깐 스치면 그만인 풍경이었는데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올라가려니 외국에 온 기분이 들었다. 내가 다녀온 외국의 도시는 방콕, 상하이, 후쿠오카였고 친구들이나 직장 동료들과 무리 져 갔기 때문에 모든 풍경이 신기하고 흥미롭기만 했다. 사진 찍고 식당이나 상점에 들어가 구경하는 게 당연했다.

그런데 혼자라서 그런가, 내가 30년이나 살아온 안산인데 외국 같아서 그런가, 낯선 분위기에 위축되었다. 외국인들이 나를 흘낏거리는 것 같았고 나 역시 그들을 흘낏거렸다.

원곡동 거리는 해외 이주 노동자들이 밀집해 사는 곳으로 오래전부터 유명했지만 나는 처음 걷는 거였다. 오전이라 대부분의 상점이 아직 문을 열지 않았고 내가 좋아하는 마라탕 파는 식당도 오픈하기 전이었다.

요즘 집밥을 고수하고 있어서 책만 대여할 요량으로 도서관에 도착하였다. 관산 도서관은 전에도 두세 번 와 보았는데 잘 가꾸어놓은 작은 숲이 근사하다. 도서관 여기저기에 '삶은 어떻게 소설이 되는가'라는 현수막과 포스터가 보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책만 빌리고 가자고 토닥였다. 다음에, 다른 도서관에도 얼마든지 기회는 올 것이다.

<슬픔의 방문>을 빌린 뒤 밝고 환한 도서관의 분위기를 만끽하고자 문헌자료실에 주저앉아 책을 읽기 시작했다. 마침 김애란 작가의 추천의 말이 있었다. 아, 어째 이렇게 문장마다 아프고 슬프고 따뜻한 시일까.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맺힌 채 저자 장일호의 '들어가며'를 읽다가 눈물이 쏟아져 그곳을 빠져나오고 말았다.


나 역시 세상이 너무 무서워서, 그만큼 간절하게 궁금하고 이해하고 싶어서 읽고 쓰는 사람이 되었다는 걸. 쓰는 사람은 쓰지 못한 이야기 안을 헤매며 산다. 세상에는 모르고 싶은 일과 모르면 안 되는 일이 너무 많았다. '덜' 중요한 것을 쓰고 싶다는 야심은 자주 실패했다. <슬픔의 방문>(장일호, 낮은산) 중 들어가며


밴드와 브런치에 쓰는 일에 대해 엄살을 떨었던 내가 부끄러웠다. 도서관 건물을 나오니 현수막이 다시 눈길을 끌었다. 숲의 벤치에 앉아 책을 더 읽다가 현장 접수를 알아보러 다시 들어갔다. 다행히 자리가 주어졌고, 다섯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읽고 점심 먹고 또 읽고 밴드 인증글 쓰고 저녁 먹으면 그 시간이 될 것 같았다.

문헌 자료실로 다시 올라가 정지아 작가의 소설을 검색했다. <아버지의 해방 일지>는 모조리 대여됐고, 십여 년 전에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단편소설 '봄날, 과부 셋'과 '목욕 가는 날'을 빌릴 수 있었다. '봄날, 과부 셋'(이 리뷰는 다음 글에)을 읽다 또 눈물바람을 하고 허기진 배로 점심을 먹으러 도서관 밖으로 나갔다. 집에 다녀오는 버스비로 삼각김밥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가 이 거리에서 밥을 먹어 봐야겠다는 도전욕이 생겼다. 빌린 권을 팔로 감싸고 버스 정류소를 향해 천천히 내려갔다.



2. 이방인


나를 힐끔거리는 눈빛들. 하나같이 허름한 행색으로 보였다. 화장을 촌스럽게 짙게 한 연인이든가, 억센 인상의 남정네라든가, 묘하게도 외국인을 알아볼 수 있었다. 도무지 가늠할 수 없는 외국어로 그들은 일상을 살고 있을 뿐인데 나만 특별한 공간에 온 것 같은 기분으로 내 행동은 어딘지 자연스럽지 못하였다.

그때까지도 마라탕집은 아직 열리지 않았다. 문을 연 식당 앞에 알아볼 수 없는 언어로 쓰인 메뉴판들이 보였는데 선뜻 들어가지 못했다. 사 차선 대로를 건너 50미터씩 위아래로 훑은 뒤에 김밥집을 찾았다. 맞은편에 원곡고등학교가 보였다. 고등학생들이 드나드는 김밥집이라면. '국내산 김을 두 번 구웠다'는 작은 현수막을 붙인 식당 앞에 수십 개의 화분이 싱싱하게 자라고 있었다. 화분을 잘 키우는 식당의 음식맛이 그리 나쁜 적은 없어서 믿고 들어가는 편이었다.

식당에는 손님이 없고 뉴스 소리가 크게 들렸다. 사십대로 보이는 여주인이 일손을 부지런히 놀리고 있었다. 수많은 김밥 메뉴가 보였는데 아침을 부실하게 먹었던 게 떠올라 제육덮밥을 주문했다. 처음엔 주인과 마주보는 자리에 앉았다가 등을 보이고 밖을 내다 보는 자리로 고쳐 앉았다. 음식 조리하는 소리가 한참 들리더니 주인이 제육덮밥을 내주고 무언가 생각난 듯 급하게 나갔다. 나를 해코지할 사람으로 보진 않은 것 같았다.
제육볶음은 식성이 까다롭지 않은 내가 먹기에도 재료비를 최소화한 게 느껴질 만큼 퍽퍽한 돼지고기와 덜 익힌 당근과 양파 조각들이 겉돌았다. 한적한 휴게소 식당의 새 모이 같은 반찬 네 가지를 보니 어느 식당의 반찬이든 젓가락식은 먹어보는 나지만, 젓가락이 가지 않았다. 반찬으로 콩자반만 콕콕 집어 먹었다.

오 분쯤 뒤에 주인이 육십 대 아주머니를 이끌고 들어왔다. 그때부터 중국어를 메인으로, 간간이 한국어로 두 여인의 수다가 시작되었다. 손님인 내게 인사도 하지 않던 주인이 깔깔거리며 빠르게 중국어로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의 웃음소리를 들으니 나도 모르게 안도가 되었다. 이 음식에 무엇이 들어갔을지 모른다는 불안이 잦아들었다.
그녀의 웃음, 그녀의 순해 보이는 이웃의 나긋나긋한 말투, 두 사람의 다정함이 주는 안도였다.
다 먹고 나올 때는 영수증 필요하냐, 잘 가라,는 조금은 친절해진 주인장의 인사를 들을 수 있었다.
극외향형인 내가 머뭇거릴 정도로 원곡동 거리는 낯설었다. 버스 정류소, 주변 상가, 편의점에서 들었던 외국어와 스쳐 지나가는 외국인들에게 미소를 띠지 못하는 나를 보며 당분간 관산 도서관 나들이를 자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는 쓸데없이 두려워하고 있지 않느냐. 세상의 모든 구석, 작은 사람들의 곁에서 글을 쓰겠다던 너는 어디 있느냐.'

내 안의 외침으로 귀가 따갑고 심장이 아려왔다.


무언가를 기어코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이 곧 사랑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슬픔의 방문>(장일호, 낮은산)

 


관산 도서관 앞의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에 따뜻한 두유를 저녁으로 먹었다. 앉을 수 있는 자리 두 곳 중 한 군데에서 먹고 있는 동안, 러시아인으로 보이는 키 큰 여성과 아랍인으로 보이는 까무잡잡한 남성, 소주 한 병과 소시지 하나를 봉지에 넣은 이미 취한 할아버지 들이 오고 갔다.

정지아 작가의 강연은 지금의 내게 꼭 필요한, 정말로 좋은 선택이었다. 강연 내용도, 단편 읽은 감상도 쓰고 싶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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