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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창한 날들 May 31. 2022

매일 쓰기 1년

이혼 이후 혼자 잘 살기 방법 중 최고



이런 날이 오다니!
거룩한 글쓰기 시즌 1이 2021년 5월 17일에 출발한 지  1년이 되었다.
이혼한 뒤 한 인문학 모임에 들어갔는데, 그곳의 멘토가 100일 글쓰기를 제안했다.

그곳은 동종 업계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 내밀한 글은 공개하기 어려웠다.

한 글벗과 모의해 우리가 사람들을 모아보기로 했다. 그날이 작년 5월 16일 저녁.

우리 둘은 이벤트 만드는 데 쿵짝이 잘 맞아서 바로 누굴 부를까 작전을 짰고, 밴드를 열고, 한 사람씩 초대하기 시작했다. 일요일 저녁, 저녁놀이 달뜬 우리와 함께했다.

그렇게 시작한 시즌 1이 출항할 때까지만 해도 100일 동안 매일 쓴다는 게 엄청난 일 같아서 '시즌'이란 말이 붙을 줄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저 100일 동안 빠지지 말고 어떻게든 가자. '단 세 문장 혹은 단 세 줄 혹은 100글자만이라도 냅시다'라는 최소한의 인증 원칙을 걸고 장사를 시작했다.


거룩한 글쓰기 시즌 1

오프라인 글 모임의 벗들을 꼬였다. 매달 한 두 편의 에세이나 손바닥 소설을 써서 합평을 4년째 해 오는 모임이었다. 활발하게 사회활동을 하며 24시간을 쪼개서 사는 사람들이다. 이미 매일 쓰고 있던 브런치 작가 '꿀벌'만 빼고 어떻게 매일 글을 쓰냐며 겁들을 냈다. 하루만 생각해 보겠다던 사람도 인증 첫날 밤 늦게 글을 올려 여섯 명이 시작했다. 그래도 가 보자고, 함께 가면 적어도 낙오되진 않겠지 하며 손을 잡고 걷기 시작했다.

누군가 '표정 달기, 댓글 금지' 조항을 넣기를 원했다. 남의 글 읽고 댓글 다는 게 감정 노동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이었다. 결과적으로는 별로였다. 각자 자기 창고에 글을 쌓아두기만 하다 보니 공감도 구체적이지 않고, 소통과 확장이 되지 않았다.

내가 특히 답답함을 많이 느꼈다. 동굴에 혼자 그림 그리며 더 깊숙하게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100일은 왔다. 그때 동시에 공적인 글과 사적인 글 두 편을 두 군데에 인증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거룩한 글쓰기에 인증하는 걸 빼먹어 99일로 마무리했다.

100일째 되는 8월 25일은 X의 생일이었다. 그를 그리워하는 마음보다 100일 동안 탈 하나를 벗어던진 내가 기특했다. 우리는 바로 잔치를 열었다. 서로를 축하하고 응원하는 자리였다. 엄혹한 코로나도 우리를 이기지 못했다. 그 자리에서 시즌 2를 이어가자고 의견을 모았다. 전 구성원 결의!


거룩한 글쓰기 시즌 2

시즌 1에서 자신감을 얻은 나는 세 명을 초대했고, 그 세 명은 각자 한 명, 두 명을 초대했으며, 시즌 1 멤버 중 한 명도 지인을 초대했다. 매일 쓰기의 놀라운 효과를 들은 지인이 '자신을 잡아 달라'라고 했다 것.

모두 열세 명.

서울, 안산, 수원, 인덕원, 천안, 전주 멤버들이 일상과 사유를 올려주었고, 삼십 년 전 미국에 정착 뉴요커가 파란만장한 인생사와 현재의 뉴욕 이야기를 들려주다.

새로 들어온 이들이 글 분량에 부담을 느껴서 시즌 1에서처럼 세 줄, 세 문장, 100자를 쓰기로 했다.

이번 시즌엔 댓글을 달아주자 제안했다.

게시글과 관련된 자신의 경험을 댓글로 올리니 그것 자체가 한 편의 글이 되기도 하고, 게시글 관련 정보를 추가로 올리는 이도 있어 글 소재와 주제가 넓어지고 깊어졌다. 게시글과 댓글 덕분에 영감을 얻어 다음 글로 재생산되거나 댓글 자체로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이 가지 치는 신기한 경험을 수 차례 했다.

소설가나 드라마 작가를 꿈꾸던 이들이 때로는 문학적인 글로, 때로는 촌철살인의 문장으로 자극을 주었다. 세월호 유가족과 함께하는 이의 '그 이후' 글로 행동해야 세상이 바뀐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BTS', '스우파', '싱어게인', '우리 이혼했어요', '나의 아저씨' 등 음악, 예능, 드라마 외에도 영화, 연극, 전시회 따위의 문화 리뷰로 서로에게 자극을 주었다.

아무에게나 털어놓지 못하는 암 투병 중인 이야기를 올린 멤버의 용기 덕분에 내 아픔만 크리라 착각했던 각자를 돌아보.

희로애락을 함께 나누는 동안 서로에게 섣부르지 않은 위로를 할 수 있었고, 그걸로도 각자 용기를 얻어갔다.

우리의 매일 쓰기를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 이후 '찐한 연애를 한 기분'이라고 표현했다. 누군가는 '적금'을 잘 부어 뿌듯하다고 했다. 누군가는 80일 동안 쓴 자신이 사랑스럽고 자랑스럽다고 했.

자기 전 댓글 달기, 눈 뜨면 새로운 인증글 읽는 100일이 가는 동안 우리는 조금씩 성장하고 있었다.
글로 친해지니 서로가 그리워 우리의 시즌 2가 끝날 때쯤부터 ZOOM으로 얼굴 좀 보자고 성화였다. 모든 구성원의 본명과 생김새를 알고 있는 건 나뿐이었다.

시즌 2가 끝난 12월의 어느 날, 여덟 명이 줌으로 만났다. 각자 자기 앞에 술과 차 등 먹을 것을 갖다 놓고 상상과 다른 서로를 보며 웃기도 하고 글 바깥의 궁금한 점을 질문하며 두 시간쯤 대화를 나눴다. 그날 만남의 형식과 내용 등을 구상하며 며칠 동안 기분 좋은 몸살을 앓았다.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그날의 떨림이 다시 살아온다.





거룩한 글쓰기 시즌 3

시즌 3에는 몇은 나가고 다른 몇이 들어와 열셋의 멤버로 출발했다. 신기하게 멤버 한 명만 바뀌어도 전체 분위기가 달라진다.

언젠가는 책을 내고 싶지만 아직은 글을 쓰지 않았다는 이의 일상, 무역회사를 직장으로 둔 커리어우먼의 일과 삶, 명상에 폭 빠진 이의 웃음과 감사일기, 퇴직하여 삼식이로 지내는 남편과 최대한 즐겁게 견뎌내는 일상, 익살스러운 한 컷 그림과 연관된 에피소드, 동화 읽어주는 일을 하는 분의 이쁜 아이들 에피소드, '아름다운 인간관계 훈련' 강사의 관계가 변화된 일상 등.

스물 된 독립적인 딸과 이기적인 남편과 수 년 동안 겪어온 이는 글쓰기 덕분에 자신은 물론 그들을 조금은 이해하게 됐다고 했다.

자신의 생각과 삶의 폭이 얼마나 좁은지 깨닫는 과정이 되었고, 다양한 공간에서 애쓰고 사랑하는 이들의 삶의 현장을 보았다. 자신을 알아가고 성장하기를 멈추지 않는 글벗들의 글은 때로는 날카롭게 나를 건드리고, 때로는 따스하게 어루만져 주었다.   


거룩한 글쓰기 시즌 4-이야기가 있는 글과 그림

밴드의 형식과 이름을 바꾸었다. 글&그림 콜라보다. 마치 왕조가 바뀌듯.

시즌 2부터 함께해 온 동화작가가 있어 그를 멘토 삼아 그림을 그리게 된 몇 사람이 글과 그림 밴드 양쪽에 매일 인증을 하니 버겁기도 하고, 글쓰기를 좀 쉬겠다는 이도 있어, 평소 짬뽕을 좋아하는 내가 콜라보를 제안했다. 무엇보다 한 사람도 떠나 보내기 싫을 만큼 그들이 좋았고, 서로 그림도 보고 글도 읽으며 자극을 받으면 얼마나 좋은가 해서였다.

변화를 주저하는 몇 사람이 어수선하다며 부정적인 사인을 보내오기도 했다. 그래도 좀 더 가 보자고 제안했다.

글만 쓰겠다고 들어온 이가 어릴 적부터 그리고 싶던 그림을 그렸다며 애장품인 색연필로 그린 스케치를 올렸고, 자녀가 사용하는 태블릿 피시를 자신도 사서 그림을 그렸다는 이도 있었다. 기존 질서에 안주하려던 자신을 살짝 넘어서는 작은 변화는 다른 변화를 만들어 냈고, 그것을 눈으로 확인한 이들은 차분하게 자신을 들여다 보고 다른 이의 말에 귀를 기울여 듣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듣기는 연민의 행위, 사랑의 행위다. 귀를 빌려주는 것은 곧 마음을 빌려주는 것이다.
잘 듣는 것은 잘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기술이며, 다른 기술과 마찬가지로 습득 가능하다.
- 쇼펜 하우어




매일 쓰기의 마법과 효과를 온몸으로 느낀 나야말로 최대의 수혜자였다. 나의 일상이, 일이, 관계가 완전히 바뀌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이자 시즌 2부터 함께한 친구가 말한다.

"이혼의 상처를 글쓰기라는 약으로 잘 발라서 금세 건강해진 너"라고.


변화는 나만이 아닌 다른 이에게도 옮아간다.
어떤 학생 집단과도 100일 글쓰기를 시작했다. 그들은 100일을 각자 96일 이상으로 완주했ㄴ느데 십여 일이 지나자 심심하다고 했다. 겨울 방학이 되어 그 아이들과 두 번째 매일 쓰기를 시작했다. 그 애들은 자신이 무언가 끝까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고백했다.

매일 쓰기 덕분인지 변화된 나를 지켜본 이가 시즌 2부터 동행했고, 그의 아들과 친구들을 묶어 일 년째 토요 글쓰기를 함께하고 있다. 내가 시제를 주고 토요일에 아이들이 글을 올리면 긍정적인 피드백을 달아주는 식이다.

시즌 2부터 함께해 온 다른 친구 역시 지인과 그의 아이들을 소개해 몇 달 동안 내가 멘토가 되어 토요 글쓰기를 함께했다. 이젠 글쓰기를 봐주어야 할 공간이 많아진 내가 버거워하니 그들은 자체 동력으로 움직이기로 했다. 한 학부모가 시제를 주고 어른과 아이들 모두 평등하게 글을 쓰고 나누는 밴드로 거듭났다.

한 발짝만 다르게 떼어도 새로운 변화가 생기고, 이전엔 상상해 보지 않은 변화를 꿈꾸게 되며, 드디어 나와 타인바뀌어 새로운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 감을 온몸으로 느낀 1년이었다.


시즌 5?

글쎄... 시즌 1이 끝까지 갈지 갸웃거렸던 우리가 1년 동안 매일 쓰기를 해 왔듯이, 다음 일은 모르겠다.

면접 보고 골라도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어디서 쉬 만나리.

개성 강하고 한 성깔 하실 글 벗님들이 스스로 깎아내고 서로를 보듬으며 한해살이를 해냈다.

나를 성찰하느라 쓰기 시작한 글이 다른 이의 아픔, 기쁨, 자랑스러움에 공감하고 반응하며 듣는 귀를 더욱 열게 되었다. 어디에, 누구한테 말해도 자랑스러운 우리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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