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온 동네가 놀이터였다. 종일 놀고도 모자라 저녁을 후다닥 먹고 뛰어나가 늦은 밤까지 술래잡기, 고무줄놀이, 말뚝박기, 망까지, 말타기, 자전거 타기 등을 하며 놀았다.
고등학교에 들어가니 야간자율학습과 주말자율학습이란 명분으로 학교에 잡혀 있어야 했고, 갑갑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담 넘어가서 뭐 사 먹기, 학교 뒷동산에 숨어 수다 떨다 자율학습 끝나기 전 교실로 돌아가기, 자율학습으로 위장하고 소설 읽기, 날마다 편지 쓰기(주로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주말에는 대학로의 카페 들어가서 긴장하지 않은 척 대화 나누기(고등학교 시절의 놀이가 고작 이런 거였다니... 한숨), 한 달에 한 번꼴로 등산하기(고3 때 집중적으로) 등 나의 놀이이자 일탈이 이어졌다.
대학 가서 나의 놀이는 주로 술자리로 채워졌다.
집회 끝나고 술자리, 사회과학 토론 끝나고 술자리, 보수적인 교수의 수업을 빼먹고 술자리, 그냥 술자리.
날이 좋아서 캠퍼스에 둘러앉아 마시는 술자리, 비가 오거나 눈이 온 덕분에 센티멘털해진 마음으로 세미나실에 모여 앉아 창밖을 보며 마시는 술자리. 핑계도 변명도 많았던 술자리. 때론 울고 때론 웃고 때론 싸우며 우리 모두의 해방을 소망하던 술자리.
가진 게 없는 사람들이 동전 하나까지 털어서 모은 돈으로 알뜰하게 술을 마셨다. 그게 그 시절 나의 놀이였다.
이른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뒤 나의 놀이도 양육을 하느라 멈추었다.
모든 시절 일탈을 시도하고 즐기던 나였지만, 이제는 '놀이하는 인간'이 아닌 '양육하는 인간'으로 살아야 했으니까.
대신 아이와 노는 것으로 나의 놀이 형태가 바뀌었다. 아이가 말을 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는 퍼즐 맞추기, 보드게임(수십 가지의 보드게임을 하는 동안 아들과 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나게 되는 숙명의 적수였다. 승부욕이 절어서 아들에게 져 주는 시늉은 해도 결코 져 주진 않는 바람에 역시 승부욕 강한 아들을 숱하게 울렸다.), 곤충 채집, 베개 싸움이나 몸싸움, 킥보드와 자전거 타기, 뒷산으로 탐험 가기, 놀이터에서 마냥 놀기 등 놀 것은 수도 없었다.
맞벌이하느라 아이를 시부모에게 맡기고 주말에만 함께 지내는 동안 밀도 있게 놀았던 그 시간은 짧아서 아쉽지만, 늘 부족해서 더 강렬한 추억거리들이다.
X는 가장 행복했던 시절을 우리 아들 일곱 살 때라고 말하곤 했다. 몸이 아파 직장일을 쉬게 된 내가 아이와 종일 놀던 그 시절. 일을 끝내고 피곤한 몸으로 집에 돌아오면서도 웃음이 나왔다고 했다. 집 밖으로 아이와 나의 웃음소리가 새어나가 그의 들뜬 발걸음을 재촉하였노라고. 현관문을 열면 아이와 엄마가 엉켜서 놀다가 활짝 웃으며 자기에게 달려가 안기곤 했노라고. 밥이 준비되지 않아도, 집안이 지저분해도, 아이가 그늘 없이 웃고 있어서 마음이 놓였다고.
아이가 컴퓨터 게임을 하면서 내 놀이 상대가 사라졌다. 아이는 내게 컴 게임을 가르치려 했으나 그쪽으로는 머리가 돌아가지 않아 테트리스나 버블보블 따위가 내가 할 수 있는 게임의 전부였다.(테트리스는 아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최고까지 올라갔으니 지금까지도 자부심이다.ㅎㅎ)
놀기의 암흑기가 꽤 오래 지속되었다가 서른다섯에 들어간 입시학원에서 만난 이들과 산벗이 되어 십 년 동안 등산이라는 놀이가 이어졌다. 한 달에 두 번 정도는 명산을 등반했다. 등산과 전국 휴양림 나들이는 여성들과 함께했다.
X와는 집 근처 공원을 산책하였고 아침에는 차, 밤에는 술을 매개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수다를 나누었다. 그것이 그와 나의 놀이였다.
재작년 이혼한 몇 달 뒤에 구글 포토가 추억의 영상을 띄웠다. X와 직장 동료들과 어느 회식의 2차나 3차쯤에 볼링을 하는 장면을 내가 시종일관 깔깔 웃으며 찍은 영상이었다. 모두가 100 넘기기도 어려운 볼링을 하는 동안 웃음소리가 영상을 가득 채웠다.
X의 목소리, 행동이 저랬지. 스페어 처리를 실패하여 아쉬워하는 그의 제스처를 보니 어제 일처럼 선명했다.
실은 영상을 끝까지 보는 게 괴로웠다. 그가 지금은 왜 내 옆에 없지?
밤에 잠을 설치고 아침에 일어나 볼링 밴드를 검색했다. 격주로 일요일 오전에 모이는 볼링 클럽에 가입 신청했다. 그때만 해도 X를 다시 만날 거라 믿어서 볼링 연습을 열심히 하여 재회하면 보여주고 싶었다.
첫 모임에 가기 전날까지, 지금 생각해도 심장이 터질 것만 같은 긴장과 설렘의 시간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