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 것보다 하는 게 맛이지만

내가 잘하고 싶은 일

by 창창한 날들




솔로가 되고 난 뒤 재미있는 일이라 생각되면 바로 행동하여 일을 낸다.

매일을 축제처럼 보내고 싶은 나는 티 타임, 술 타임, 글 타임을 제안하여 이런저런 모임을 만들었다.

100일 글쓰기 밴드, 수요일 글쓰기, 온라인에서 실시간 글 쓰기 모임 등을 하고 있다. 사십 명 가까운 이들이다.

고등학교 친구, 대학 친구, 예전 동료, 볼링 멤버, 등산 모임 회원, 그림책방 여행에서 동행한 이도 초대했다. 서울, 평택, 안산, 평촌, 산본, 동탄, 전주, 천안 지역도 다양하다.

읽을 줄만 안다는 독서 모임 멤버에게 쓰기도 해 보라고 꼬였고, 마음이 아픈 친동생에게도 권하여 한 시즌 함께했다. 명상하는 이에게는 감사일기를 써 보라고 권했다.

글을 쓰고자 하는 욕구는 다들 가지고 있어서 몇 번만 공을 들이면 동행하게 되고 어느새 그들은 매일 글쓰기 사랑에 푹 빠진다.

글쓰기 건물에 사람들을 들여놓은 나는, 그러니까 예술촌에 예술 초보자들을 입주시킨 나는 임대사업자이다. 작가가 아니다.

글을 매일 못 올리는 이들을 독려하고, 소재가 없다는 이에게 지난번 대화에서 나왔던 그 화제를 써 보라며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100일 동안 쓸 콘셉트가 없다며 시작하기 주저하는 이에게 그가 잘 묘사하던 음식, 나무를 100가지 연작으로 써 보라 제안한다.

절대 못한다며 앓는 소리를 했던 그들이 글을 써낸다. 그 글은 다른 글벗들에게 열광적인 반응을 얻기도 한다. 그에게 애독자가 생긴다. 100일이 끝날 때 온라인이나 오프라인으로 자축연을 열면 센세이션을 이끌어 낸 몇 작가와 그들의 작품에 열렬한 환호가 터진다.

글벗들은 이 마당을 만들어 준 내게 감사하다고 아낌없이 표한다.

글 쓰느라 주변을 관찰하는 일상에 윤기가 생기고, 인간관계가 건강해졌으며, 감사함을 되새기게 되었다고 한다.

"선한 영향력을 펼쳐 주어 고마워요."

어린 자녀들과 함께 가족 전체가 읽고 쓰는 저녁 시간을 보낸다고 하는 이가 건넨 인사다.

어느 날은 이런 인사를 댓글로 남기는 이도 있다.

"따뜻한 편집자 님 고마워요."

어떤 글 좋았으니 이런 글도 쓰면 좋겠어요, 하고 댓글을 남기는 내게 주는 인사다.


수요 글쓰기는 오프라인으로 5년째 글을 써 오던 벗들과 온라인으로 모집한 몇 명이 올여름부터 시작하였다. 100일 글쓰기보다 분량이 길고 완성도 있는 글을 올린 뒤 한 달에 한 번 합평 모임을 하고 있다.

100일 글쓰기에는 응원과 공감을 위주로 댓글을 쓴다면 수요 글쓰기에는 공을 들여 비평 댓글을 남긴다. 언젠가는 책을 내고 싶은 소망을 가진 이들이기에 객관적이면서 따가운 피드백을 해 주기로 한 때문이다.

그 모임에서 최고의 작가로 등극한 이가 있다. 그동안 일기 외에 글을 쓴 경험이 없다는 그이는 다둥이 엄마로서의 삶을 반전과 여운을 주는 글로 표현했다. 연속극의 마지막 장면처럼 다음 화를 기다리게 하는 그녀의 밀당이 얼마나 기가 막힌지, 입 벌리고 감탄할 뿐이었다. 고생은 또 얼마나 억수로 했는지. 역경과 직관과 통찰을 다 가진, 글쟁이의 조건을 두루 갖춘 부러운 이다.

얼마 전 그녀와 옆지기가 내게 술을 사겠다고 방문했다.

"글 선생님 고맙습니다. 우리 K 여사 글 쓰게 해 주셔서요. 몇 년 동안 글을 쓰면 좋겠다고 제안했는데 그렇게 안 듣더니 이번에 웬일인지 글을 쓰대요. 이 사람 한 번 시작하면 끝장 보는 성격이니 잘 부탁합니다."

과분하게도 옆지기가 내게 건넨 인사였다. 나와 동갑인, 친구 같은 그들 부부와 술을 마시며 그날 밤 뿌듯함과 행복으로 꽉 찼다.

이 모든 일들은 나의 행복지수를 확실히 끌어올렸다.

100일 시즌 5까지 줄곧 함께한 이들도 있고, 중간에 들어온 이들도 있는데 대부분 멤버들의 성품과 글을 사랑하게 된다. 연애 감정이라고도 표현하고 신뢰라고도 표현한다. 선 경험자들에게서 배우는 나이 어린 글벗들도 있다. 어린 글벗들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꼰대스럽지 않으려는 연장자들의 겸손이 함께한다. 한 번 들어오면 웬만해선 나가지 않는다. 나갔다가도 대부분 다시 돌아온다. 감사와 행복을 여기서 발견한다고 한다.

그 와중에 나는 남 모르게 한숨을 쉰다.

내가 잘하고 싶은 건 따로 있다.

잘한다는 말을 듣고 싶은 건 따로 있다고.

그래.

글을 잘 쓰는 것!

나도 글 잘 써서 애독자를 만들고 싶은데.

임대사업자이자 편집인보다는 작가이고 싶은데.

감독이나 코치보다는 선수이고 싶은데.

스포츠는 보는 것보다 하는 게 맛인데.

나에게는 그게 더 멋지고 가슴 뛰는 일인데.

바람과 욕망으로 버무려진 악마가 브런치 글만 전념하라고 속삭인다.

선택과 집중을 하라고 한다.


난 세상의 모든 범인(凡人)을 대변한다오. 내가 그들의 대변자이지. 난 그들의 수호성인이야. 세상의 범인들이여! 내가 너를 용서하노라. 내가 너를 용서하노라. 내가 너를 용서하노라. 내가 너를 용서하노라. 내가 너희 모두를 용서하노라. 영화 <아마데우스> 중



어쩐지...

살리에리에게 그렇게 감정이입되더라니.

문득 범인(凡人) 임을 깨달은 내가 스스로를 다독인다.

임대사업자 혹은 에이전트면 어때?

사람들 모아서 놀게 하는 진행자면 어때서?

네가 잘하는 것과 잘하고 싶은 것이 동일할 순 없잖아?

재미있었잖아! 그거면 됐잖아!

리하여 시즌 5까지 왔고, 큰일이 없다면 시즌 6도 가지 싶다.

그럼에도 실낱 같은 소망 하나 품어도 된다면...


지금은 매미떼가 하늘을 찌르는 시절
그 소리 걷히고 맑은 가을 하늘이
어린 풀숲 위에 내려와 뒤척이기도 하고
계단을 타고 이 땅 밑까지 내려오는 날
발길에 눌려 우는 내 울음도
누군가의 가슴에 실려 가는 노래일 수 있을까.
<귀뚜라미> 나희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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