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살 창희의 선물

신나는 월요일이다

by 창창한 날들



"선생님, 두 개 중에 고르세요. 한 가지는 엄마 드릴 거거든요."

아홉 살 창희가 파란색과 보라색 클로버 중 하나를 고르라 했다.
"창희가 만든 거야? 이렇게 정성스레 만든 걸 나를 주겠다고?(창희가 고개를 끄덕인다) 난 보라를 좋아하니까 보라~~ 고마워.^^"

아홉 살배기가 테이프로 덕지덕지, 대신 꼼꼼하게 만든 클로버를 받았다.

행운의 네 잎 클로버를 받은 올해, 나는 운수대통이다.


다음 수업에 창희가 들어오자마자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낸다.

"피아노 학원에서 어린이날 선물 줬어요. 이건 제가 안 마실 거거든요. 선생님 드세요."

창희는 받았다는 선물 몇 가지를 보여주며 그중 포도 주스를 건넨다.

"... 어어, 고마워."

"근데 선생님 포도 좋아하세요?"

창희는 자기 것을 주고도 혹시 내가 좋아할지 좋아하지 않을지 걱정됐는지 묻는다.

"그럼. 엄청 좋아하지. 샘은 포도대장인 걸."

실은 사과 당근 주스를 더 좋아하지만, 창희가 주는 포도는 무조건 맛있을 터였다.

창희가 돌아간 뒤 아껴두었다가 며칠 뒤 피로감이 물밀 듯한 날에 한 모금씩 달게 마셨다.


다음 주에 창희가 오는 시간을 즐거이 기다렸다. 창희가 가방에서 또 무엇을 꺼냈다.

"영어학원에서 포인트 모으면 선물을 뽑거든요. 오늘은 이걸 뽑았어요. 이 샤프 선생님 줄게요."

"샘이 자꾸 받기만 해서 미안하네. 고마워. 근데 왜 이렇게 샘한테 주는 거야?"

"여기가 너무 재미있어서요. 선생님 주고 싶어요."

창희 어머니가 직장에 다니셔서 창희는 학원을 많이 다니는 것 같다.

창희는 학교 끝나고 다른 학원을 들러 이곳에 온다. 오자마자 가방을 책상에 걸고 목걸이 휴대폰을 목에서 풀러 책상 한쪽에 놓아둔 뒤 집중력 훈련의 안구 회전판을 바라보며 시작되기를 기다린다. 그렇게 척척 준비하는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면 짠할 때가 있다.

두 눈을 반짝이는 창희를 보면 저절로 웃음이 난다.

뭔가를 자꾸 가져다주는 창희가 돌아간 뒤 고백받은 사람처럼 마음이 붕 떠 있었다. 어린이날인데 내가 준 선물보다 몇 배나 큰 선물을 받았다.

어머니께 카톡으로 감사 인사를 하니 '창희가 샘을 참 좋아해요'라는 답이 왔다.




창희가 처음 엄마를 따라왔을 때는, 웃는 낯이 아니었다. 집에서도 곧잘 책을 읽지만, 편독을 하니 보내고 싶다는 어머니의 전화가 있었으므로, 창희가 별로 오고 싶어 하지 않았음을 눈치챘다.

5분 동안 얌전히 앉아 있던 창희가 엄마와 상담하는 책상 주변을 뱅글뱅글 돌기 시작했다. 엄마가 말려도 멈추지 않았다. 무료한 것 같기에 드로잉북과 연필을 건넸다.

"그림 좋아해? 샘은 심심하면 그림 그리는데, 창희도 그리면서 잠깐만 기다려 줄래?"

창희는 궁둥이를 붙이고 앉아 블록을 쌓은 모양을 그리기 시작했다. 가로, 세로, 높이가 일정했고, 입체적인 모양을 잘 표현했다.

"집중력과 공간지각 능력이 좋아 보이네요."

"선생님, 저는 이런 것 그리기밖에 못해요. 사람은 잘 못 그려요."

집으로 돌아간 창희는 샘이 그림 칭찬해 주었다며 아빠한테 자랑했단다. 더불어 여기 수업을 오고 싶다고 주말 내내 엄마를 졸랐단다.




그 뒤 창희는 매주 월, 화, 수에 60분씩 수업을 온다.

수업 시작 전 10분 이내로 하는 집중력 훈련에서도 날마다 새 날처럼 도전한다.

전날의 기록을 깬 날은 기뻐하고 비슷한 날은 무척 아쉬워한다.

새로운 어휘를 만나면 동공이 커지며 몸짓 언어까지 합동으로 그 말의 의미를 설명하려고 애쓴다.

자신만의 새로운 용례를 만들기도 하면서 그렇게 쓰는 게 맞느냐 묻는다.

눈을 반짝이며 재미있어하는 창희를 보면 이 수업을 참 잘 시작했지 싶다.

아이들의 책 읽기가 자리를 잡아간다고 느끼면 글을 써 보도록 한다.

어떤 아이들은 글에 접근하기 어려운데 창희가 그랬다.

"선생님, 저는 책은 좋은데 글은 잘 못 써요. 지금은 아닌 것 같아요."

그래서 두 달 가까이 기다려 주었다. 그리고 '이모의 결혼식'이라는 그림책을 읽고 난 날, 넌지시 권했다.



외국인 이모부가 무섭고 어색해 뒤로만 숨었던 아이가 몇 달 뒤 이모부와 재회하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나온다.

고학년도 그 눈물의 의미를 몰라 물을 때가 있는데, 창희는 그 아이의 눈물에서 반가움과 미안함과 고마움을 알아챈 것이다.

얼마 뒤 창희는 '선인장 호텔'을 읽고 선인장과 도마뱀 무늬 딱따구리가 서로 도와가며 사는 모습을 그림으로 그리고 자세히 설명하려고 애썼다.

"선생님, 도와주는 게 좋아서 그렸어요. 글을 쓰는 것도 재밌네요."


지난주에는 수업 끝난 뒤 창희에게 어느 학원으로 갈 거냐고 물었다. 커다란 가방을 멘 창희가 안쓰러워 물은 건데 축구를 간다며 활짝 웃는다.

"축구가 엄청 재밌나 보구나?"

"축구를 다시 다니는 건데요. 축구 안 할 때는 독서가 최고로 좋았고요. 이제 독서는 두 번째예요. 축구가 첫 번째."

두 번째가 어디냐. 여러 학원 중 책 읽고 글 쓰는 걸 두 번째로 좋다고 하니, 그걸로 됐다.

창희 너의 하루가 신나는 일로 가득 차길.

오늘은 너를 만나는 신나는 월요일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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