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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면글왕-2

스무 날째 이렇습니다

by 창창한 날들


100일 글쓰기 시즌 1부터 5까지 새로운 글친구들이 합류하면 밴드 전체 분위기가 바뀌는 건 당연했다. 일종의 물갈이가 되는 셈인데, 기존 멤버 중에서 섬세하고 예민한 사람들은 낯선 멤버와 낯선 환경을 불편해하였다.

운영자인 나는 새로운 시즌이 시작되면 매주 응원하고 독려하는 글을 올렸다.

'분위기가 달라지는 건 당연하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넣어야 하지 않는가. 조금 지나면 차차 안정되고 적응될 것이다.'

나와 시즌 1부터 함께하던 찐친들이 협력적인 분위기 조성에 도움을 주는 댓글을 달아주었다. 부탁하지 않아도 이미 마음이 전도되어 알아서 척척척이었다.


100일에 지쳐서 나가겠다고 하는 이들도 있었으나 글이 좋은 사람, 댓글을 유쾌하게 달거나 공감력이 큰 사람, 인정 있고 따스한 사람, 특이한 직업군, 새로운 형식의 글을 시도하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붙잡았다. 그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강력한 끌림으로 작용했다. (그리하여 작년 연말에 모두가 염원하는 오프라인 송년회까지 할 수 있었다. 모두가 '잊을 수 없는 비현실적인 동창회'였다고 증언했다.)


시즌 6인 복면글왕은 이전 시즌보다 더 낯설었다. 기존 멤버들 중 누가 들어왔는지도 모르는 채 새 얼굴들과 복면을 쓰고 만났으니 말이다.

내 짧은 상상력으로는 브런치와 비슷하여 선호도에 따라 글을 읽고 반응하면 되지 않을까 했는데, 밴드는 제한된 공간에서 1단계 혹은 2단계로 아는 사람들이 멤버이다 보니 모든 글에 댓글을 달아야 한다는 착한 강박을 느꼈던 것 같다. 열일곱 명으로 시작된 적지 않은 인원이 어마어마한 숙제거리를 얹었다.


나는 원래 새로운 환경을 재미있어하는 성격이라 바뀌는 걸 더 즐거워했지만 변화가 없거나 적기를 바라는 사람들에게는 힘든 과정이었을 것이다.

기존 회원들 중 일상을 주로 쓰던 이들은 직업이나 가족에 대한 글을 못 올리니 쓰는 것 자체를 버거워했고, 새 멤버에 대한 배경 지식 없이 글을 읽자니 입력이 안 되어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난감하다고 했다.

상상이상으로 꼼꼼한 새 멤버 S는 대학노트의 페이지마다 한 작가씩 표로 정리하는 완벽주의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작가명과 글 제목, 주제를 요약한 그의 노트를 보고 모든 멤버가 놀라 댓글이 유달리 많이 달렸다.


밴드 운영자라고 해서 멤버들의 정체를 아는 건 아니었다. 가명으로 가입 신청을 누르니 알 리 만무했다. 다만 가명이 품은 뜻이나 초대 링크를 보낸 어느 시점에서 가입 신청을 누르는 시간대를 보고 1차 추리를 했다. 인증글의 소재와 주제, 제목의 특징, 정서, 댓글의 분위기, 온점이나 말없음표를 표기하는 습관, 인증글을 올리고 댓글을 다는 시간대, 댓글을 좀처럼 달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 등을 단서로 유추하기 시작했다.

일주일이 지나자 기존 멤버가 다른 멤버의 얼굴을 알아보았으나 모르는 체하며 유머러스하게 댓글을 남기는 일이 종종 생겨서 또 다른 웃음을 유발하는 요소가 되었다.


기존 멤버들과 복면 속 얼굴을 알아내는 각자의 방식을 공유하며 새로운 대화의 물꼬가 터지기도 했다. 운영자에게 전적으로 유리하다며 나한테 치트키 쓰지 말라는 멤버도 있었는데, 모든 게 웃을 거리였고 게임하는 느낌이어서 신선했다.

실은 새로운 멤버들은 하나도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어차피 모르고 시작했으니 괜찮다는 것이었다. 기존 멤버들만이 자신이 아는 사람들인데 확실하지는 않은 인지 부조화를 견디기 힘들어했던 것 같다. 그들 역시 날짜가 지나고 서로 자신이 알아낸 멤버를 공유하기도 하면서 안정을 찾아갔다.


하다 보니 원칙도 없고 정답도 없는 이 방식 역시 정착하게 된 듯하다. 이전 시즌은 직업과 가족, 그의 일상 공간 등이 배경지식이 되어 그 작가를 좋아하는 입체적 요소였다면 이번에는 외적 요소를 최대한 제거한 오롯한 글에서 독자가 생기고 있다. 말 그대로 '글만 보는 것'이다. 가명이 누구인지 알려고 하기보다 글과 생각과 정서에 집중하고 있다.


며칠 전에는 내가 새로 두 친구를 초대하여 모두 스무 명이 되었다.

한 친구는 편집자로서 업무 기록의 필요성을 느끼던 터였다며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책 만드는 일과 사유를 읽게 해 주었으며, 요리의 고수인 친구는 오래도록 뜸 들이던 맛 칼럼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전에는 시즌 중간에 새 멤버를 영입하기도 굉장히 미안해하고 조심스러웠는데, 이제는 모두가 함께 출발하는 것이 큰 의미가 없다고 느끼기에 글 쓸 공간이 필요한 사람이라면 무조건, 무조건 '드루와'이다.

내일로, 다음 시즌으로, 미루며 무엇하겠나. 오늘 당장 쓴다면 '100일 그까이것'이 될 터인데.


자 이제 시작이야.

네 꿈을 네 꿈을 위한 여행 피카추

걱정 따윈 없어 내 친구와 함께니까 피카 피카

처음 시작은 어색할지도 몰라

- 포켓몬스터 OST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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