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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창한 날들 Mar 16. 2023

건조한 세상

빨래, 도대체

사진 pixabay



20년 전 새 집을 장만할 때 구입한 드럼 세탁기는 우리 가족과 우여곡절을 거듭하며 최근까지 왔다. 그전에 통돌이 세탁기를 쓸 적에는 수건이 늘 하얬는데, 드럼 세탁기를 사용한 지 몇 달이 지나면서부터 색이 누레졌고 상습적으로 퀴퀴한 냄새가 났다. 그래서 빨래를 돌리는 시간이 2시간 반, 다섯 번 이상의 헹굼까지 늘어났다.


우울증을 겪던 어느 날(운 나쁜 일들은 모두 그 시기에 몰려 있다) 빨래가 다 된 수건과 면옷들을 꺼냈더니, 비눗기가 가시지 않은 뻣뻣함이 유달리 심했다. 그것들을 세면대 옆에 쌓아놓고 손으로 일일이 헹구기 시작했다.

그 시절 나는 40킬로그램이 겨우 넘은 앙상한 몸으로 팔, 허리, 뒷목, 무릎 안 아픈 데가 없이 버티고 있었다. 네 번을 바락바락 헹궜는데도 가시지 않는 뿌연 비눗물을 보다가 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울고 말았다.

그때 귀가하던 X가 우는 나를 진정시키고는 자기에게 맡기라고 했다. 그는 공학도 특유의 탐구 본능으로 세탁기의 세탁, 헹굼, 탈수, 세제 등의 조건을 달리하면서 빨래 실험을 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며칠 뒤 적당한 세제, 섬유유연제의 양, 물의 온도 등을 찾았노라 기쁨에 겨운 발표를 했다. 그때부터 빨래는 그의 몫이 되었다. 그렇다고 빨래의 냄새가 없어진 건 아니었다. 수건과 청바지 등은 자주 악취가 진동했다. 그는 락스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헤어지기 전까지 여름에는 락스를 희석해 웬만한 옷들을 헹구었다. 어느 날 락스로 색이 바래진 양말을 신은 내게 친구들이 질색하며 만류했다.

"락스 쓰지 마."

X는 락스가 통념과 달리 해롭지 않다며 나를 설득했고, 에너지는 고갈되고 사소한 일에도 스트레스가 심했던 나는 그에게 빨래를 맡겼다.   


헤어질 때 그는 몸만 나갔기 때문에 세탁기는 당연하게도 나를 따라왔다.

그 세탁기가 한 달 전 아예 멈추어 버렸다.(그와 사용하던 것들을 하나둘씩 버리지 않을 수 없게 상황이 흘러가고 있다)

물건 수를 줄이며 최대한 덜 갖고 살기로 작정한 지 꽤 되어서 렌털이나 빨래방 빨래로 지낼 작정이었다. 여러 친구들이 말렸다. 그중 한 친구가 하는 말.

"우리 아이가 빨래방에서 빨래한 옷을 입은 뒤에 피부질환이 생겼어. 어떤 사람이 어떤 빨랫감을 넣을지 어떻게 알아. 몸에 닿는 건데 조심하는 게 좋지 않겠어?"

그 말을 들으니 더럭 겁이 났다. 아토피 피부염이 있는 내게 불안이 얹어졌다.

하지만 세탁기에 건조기까지 더하여 구입하면 예상치 못한 목돈을 써야 하니 구입할 결심이 쉬 서지도 않았다.


결단력 제로에 가까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몸이 좀 고달프더라도 돈을 적게 쓰며 오래 망설이는 것뿐이었다. 빨래방에 가서 4500원을 결제한 뒤 세탁만 해 가지고 돌아와 안방의 침대 한편에 빨래 건조대를 두고 널기를 두 번. 빨래들이 며칠째 안방 한쪽을 차지하고 있으니(거실과 두 방은 학생들 교실로 사용 중이라 사적인 공간은 안방밖에 없다) 좁아진 공간에서 나는 자신에게 자꾸만 짜증을 내며 도무지 좋게 봐줄 수 없는 나를 탓했다. 게으른 나를. 지저분한 나를. 아들이 함께 살던 시절에 제 방을 카오스로 만들다 거실까지 물건을 내오는 아들에게 더럽다며 나무라던 나를.


오늘은 아침부터 밤까지 일정이 꽉 차 있기에 돈이 두 배 들더라도 건조까지 시도해 보기로 했다.

마침내, 건조라는 걸 처음 해 본 것이다. 그것은! 별세계였다!

빨래를 넣은 뒤 1시간 알람을 맞춰놓고 운동하다 가 보았다. 보송보송한 옷가지들이 온기를 품은 채 나를 반겼다. 빨래를 한 게 맞나 착각이 들 정도였다. 분명히 처음 5분 정도를 들여다볼 때 물이 채워지는 걸 보긴 했는데, 어쩜 이렇게 바짝 말라서 나올 수가 있느냔 말이다.

빨래방 테이블 위에 온기가 남아 있는 옷가지를 쌓아놓고 개킨 다음 들고 간 봉지에 넣으면서 수건의 향을 맡아보았다. 향기가 폴폴 났다. 다 개킨 옷들을 집에 가져와 서랍 안에 넣으면서도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지인이 가족 병시중을 하며 똥오줌을 받아내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이 말려도 말려도 축축하고 냄새나는 빨래였는데, 그래서 환자가 너무너무 미웠는데, 건조기로 바짝 마른빨래가 나오는 걸 보니 세상이 다시 보이더라고, 아주 살 만하더라고 한 말이 떠올랐다. 과장이 아니었다.

이런 세계를 나는 왜 이제야 알았단 말인가. 빨랫감이 줄어들어도 좋다. 나는 건조기를 살 테다.

마침 건조기 신모델을 쓴 지 몇 달 됐다는 친구가 옷감 줄어드는 문제조차 이젠 없어졌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려주었다.

건조기를 가지고 싶은 망이 솟구쳐 올랐다. 다른 비용을 줄여서 건조기를 가지고 말 테다.(위험한 소유욕인가...)

안방의 자리를 제법 차지하는 빨래 건조대가 필요 없어질 것이고 널고 걷는 과정이 제거될 것이다. 보송보송하고 향기 나는 마름의 세상에서 내 몸과 마음은 날마다 쾌적할 것이다.

덜 갖고 살겠다는 대원칙에 위배되니 '구입 반대'를 외치는 내게 또 다른 나는 '이번만 봐 줘. 내가 편해지게 좀 봐주란 말이다. 본업에 충실해질게. 른 건 사 들이지 않을게. 기가 사라진 세상, 보송보송한 세상 좀 누려보자.'라는 달콤한 말로 꼬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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