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 초에 함께 크는 여성 울림 회원인 '나정숙' 전 안산시 의원이자 현 '안산 맨발 학교' 교장샘을 인터뷰이로 만났다.
그때만 해도 맨발 학교 단톡방 회원이 30명이 안됐던 걸로 기억하는데, 6월 24일 현재 회원이 130명이 넘는다. 단 두 달 사이에 회원 수가 네 배로 뛴 것이다.
나도 이번 주 월요일에 맨발 학교에 입학하여 맨발로 걸은 지 어제가 육일 째였다.
맨발 걷기는 진작 해 보려던 것이었다. 정전기 고통 때문이었다.
수년 동안 봄, 가을, 겨울에 정전기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곤 했다. 차 문, 현관문, 옷장, 수전을 만지지 못했고 의자에 앉을 때도 쇠로 된 의자 다리가 종아리에 닿으면 정전기가 일어나기 일쑤였다. 그때마다 따끔하거나 꽤 큰 통증이 왔고 놀라는 일이 반복돼 이만저만 스트레스가 아니었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는 수전을 틀고 물이 흐를 때 손이 닿으면 정전기가 흘러 물 사용하는 것도 겁이 날 정도였다. 별 짓을 다해 정전기 방지를 해 보려 노력했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가을이 들어설 때부터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정전기가 지긋지긋해 검색하던 중 일본 의사에 대한 기사를 보았다. 손과 발을 흙에 닿도록 하여 몸 속의 전기를 땅에 흘려 보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의사를 소개하는 글이었다. 맨손으로 농사를 짓거나 모래밭을 걷는 것이 가장 좋고, 정원을 가꾸거나 집안의 작은 화분을 가꾸며 흙을 만짐으로써 몸 속 전기를 흙으로 빼내라는 것이었다. 그는 면역력이 떨어지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하늘에서 벼락 치듯 몸 안에서도 전기가 스파크를 일으키는데 이런 일이 잦아지면 염증이 생기고 만병의 원인이 된다고 주장해왔다. 그는 땅의 흙을 밟아(어싱, earthing) 전기를 몸 밖으로 배출함으로써 병을 고칠 수 있다고 하였다.
맨발 학교 입학 첫날 우리 아파트 건너편에 있는 항가울산의 둘레길을 맨발로 걸었다. 운동화 신고 걷던 길이었고, 많은 주민들이 걷는 길이라 그런지 며칠 전에 여행한 순천 국가정원의 어싱길보다도 흙이 부드러워서 통증이 크지 않았다.
맨발로 둥글게 둘러서서 삼십 분 동안 준비 운동을 했는데 그때 이미 나는 반해 버렸다. 주변의 몸이 아픈 다섯 사람이 떠올랐다. 아버지와 불면증을 겪고 있는 친구, 항암 중인 친구 들. 당장 맨발로 걷는다면 그들의 심신이 치유받을 거라는 확신이 생겼다.
마른 흙, 젖은 흙, 딱딱한 흙, 부드러운 흙, 나뭇잎 수북한 곳과 돌이 튀어나온 부분을 입맛에 맞게 조심조심 걷는 동안 조금도 지루하지 않았다. 혼자 걸어도 심심치 않은 건 처음이었다. 길동무 없이, 휴대폰 없이 혼자 걷기는 심심하다고 느꼈던 내가 맨발로 조심조심, 느릿느릿 걷는 동안 나무가 광합성할 때 내는 빗소리도 들었다. 소소소.
신세계다!
무엇엔가 빠지면 불나방처럼 덤비는 나는 그날부터 지인들에게 맨발 걷기의 장점을 알렸다. 하나같이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아픈 이들이었다. 내 말을 들은 사람들은 다치면 어떡하냐, 불결하지 않느냐, 물어왔다. 하고 싶지만 청결한 길이 없다는 것이다.
흙은 자정작용을 한다고 한다. 강아지들의 분뇨가 걱정이라면 최근 싼 것은 피하고, 예전에 싸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땅이 이미 처리해 준 것이니 걱정할 필요 없다는 선배들의 말을 전했다.
맨발 학교 회원 중 청일점으로 대장암 4기라는 시한부 선고를 받았던 분이 인싸이다. 맨발 학교 구 개월차인 그분은 죽든지 살든지 하는 마음으로 약을 죄다 버리고 맨발로 걷기 시작했다고 한다. 두 달 만에 몸이 좋아져 검사했더니 완치 판정이 나왔다는 믿을 수 없는 얘기를 본인이 직접 들려주었다. 그 분은 동글동글한 눈에 건강해 보이는 구릿빛의 피부로 삼십 대 같기도 했고 사오십 대 같아 보이기도 했다. 그 분은 작년 겨울에 눈밭을 걸을 때 유리가 박혀 상처가 깊었을 때의 이야기도 들려주며 짙은 갈색의 곰발바닥을 보여주었다. 다쳤는데도 하루도 안 빠지고 걸었고 발바닥은 이전보다 빠른 속도로 치유되었다고 했다. 인스턴트와 탄산 음료 외에는 가리지 않고 먹는다는 그분은 준비 운동이 끝난 뒤 고급자 코스를 향해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깔딱고개와 급경사를 빠른 속도로 걷는 코스다. 내게 경계 없이 환하게 웃어준 그 분 얼굴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맨발로 걷고 온 다음 날 아침 놀라운 변화가 있었다. 옷장에 걸린 옷을 내리는데 올라가지 않던 어깨가 통증 없이 올라갔다. 몇 년 동안 물리치료와 스트레칭으로도 별 차도가 없어 포기하고 통증이 일어날 때마다 짜증내던 팔인데. 첫날 준비운동에서 팔운동을 해서일까? 팔운동이나 어깨 스트레칭은 자주 했는데 그만큼의 효력은 처음이었다. 청일점에게 물었다. 몸 안의 활성산소가 빠져 염증이 없어졌을 거라고 한다. 회원들이 각자 몸이 어떻게 좋아졌는지 간증을 하기 시작했다.
십 년 동안 올라가지 않던 팔이 맨발 걷기 십오일 만에 올라갔다.
무릎을 사용하지 못했는데 팔딱팔딱 뛸 수 있다. 그 분은 맨발 걷기 80일째다.
불면증, 우울증이 개선됐다. 맨발 걷기 88일째다.
만병통치도 아니고. 그런데 회원들은 활짝 웃는 얼굴로 맨발을 즐겼다.
둘째, 셋째 날 열심히 걷지 않을 수 없었다.
삼일째 되는 날 아침부터 비 소식이 들렸다. 맨발 학교 단톡방에서는 비 오는 날의 어싱이 극대화된다며 맨발 학교 회원들은 축제 분위기로 조회 장소에 모였다.
비 내리는 날을 유독 싫어하던 나도 빠질 수는 없었다. 슬리퍼를 신고 항가울산 입구까지 걸어갔다가 맨발로 젖은 땅을 디디기 시작했다. 촉촉하고 쫀득쫀득한 흙이 발가락 사이로 비지직 비지직 들어가는 느낌이 재미있었다. 우산을 쓰고 비에 젖은 산길을 천천히 걷는 동안 마음이 고요해졌다. 숲의 생명들이 내는 소리가 들렸다. 혼자 걸을 때는 휴대폰을 보던 나쁜 습관이 있었는데 그러면 안되었다. 자칫 부상을 입을 수 있으니 오로지 걷기, 천천히 걷기, 땅과의 감촉에 집중하기만 해야 했다. 자연스럽게 '몰입'의 효과가 있었다.
몇 년 전부터 만보, 팔천보 등 매일 걷기를 해 오던 내가 자연과 좀 더 가까워지는 맨발 걷기. 육체적 변화뿐 아니라 의식의 변화까지 가져오는 혁신적인 도전이다. 당분간 이 행위를 사랑할 것 같다. 사랑은 어디로 나를 데려갈지 모를 일이다. 지구와 환경 문제는 나와 더욱 밀접한 문제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내 발이 딛는 땅이 살아있어야 하니 말이다. 이미 혁명은 시작된 것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