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동굴형, 나는 들판형이라 하자. 우리의 여행은 한 사람(나)이 원하고, 다른 한 사람(남편)이 맞춰 주는 형식으로 이루어지곤 했다.
남편은 침대와 들러붙어 있기를 좋아했고, 나는 휴일에 한나절 집안에 있으면 박차고 나가야만 했다. 안 그러면 몸이 아팠으니까.
이십 년 전 우리 가족이 처음 자동차를 구입할 때, 아이를 데리고 여행 다니자, 특히 동해를 보러 아무때고 훌쩍 떠나자고 마음을 맞춰 결정했다. 하지만 맞벌이하느라 바쁘고, 빚 갚느라 허덕이면서 우리의 여행은 미뤄졌고 차는 출퇴근용으로만 기능했을 뿐이었다.
마흔 중반이 되어 우리 부부는 몇 년 간 자연휴양림이라는 값싸고 자연친화적인 여행지를 다니기 시작했다.
대관령 자연휴양림에 간 날이 문제였다. 전체 숙소에 우리 커플만 있다는 걸 알았고, 불을 끄고 나니 빛 하나 없는 칠흑이었다. 어둠에 짓눌린 남편이 가위에 눌렸다며 새벽에 깨어 잠을 이루지 못하였고,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이른 아침 그곳을 빠져나왔다.
남편은 당분간 여행을 다니지 않겠노라 선언했다. 남편이 이해되면서도 다른 공간에 가면 괜찮을 텐데 하는 마음이 더 컸기에 서운했다. 우리 관계는 한동안 긴장 상태였다.
이년 후쯤 다시 여행을 시도했지만, 우린 서로에 대해 너무 몰랐다는 것을 깨달았다. 남편은 내가 발발거리고 돌아다니기 좋아하고 친구들이랑 여행도 잘 다니니까 일정을 짜는 모든 과정을 내가 해 줄 거라고 짐작했다. 하지만 나는 친구들을 모아 운전하고 분위기를 업 시키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었다. 한 친구는 검색의 여왕으로 일정을 짜는 역할, 다른 친구는 먹을거리와 관련된 모든 걸 담당하는 역할 등 여자들끼리는 그런 게 잘 통했기 때문에 나는 일정 짜기라는 걸 하지 않아도 되었다. 게다가 검색을 바탕으로 판단하는 일은 결정장애를 지닌 내게 어려운 문제였다. 나는 뭐든 궁금한 것은 자기 손으로 찾아보는 학구파인 그가 여행 일정을 잘 짤 거라고 턱없이 믿고 있었다.
동성 친구들끼리 여행가면 아무 문제가 생기지 않는데 내가 좋아하는 그와 가는 여행에서 왜 자꾸 싸울 거리가 생길까. 식당에 가거나 숙소를 정하거나 통행 도로를 정할 때도 우리의 호불호가 너무 달랐다.
남편은 아무 음식이나 입에 들어가 소화만 되면 한 끼를 해결했다고 보는 스타일이지만, 나는 '예쁜 공간에서 오감을 자극하는 저렴한 음식을 친절한 서비스까지 받으며 먹기'를 바랐다. 남편은 그 모든 니즈를 충족할 수 없다는 걸 진작 알았지만, 내 기분을 망치지 않으려고 침묵을 택했다.
일그러진 기분으로 대화 없이 다니다가 집에 돌아오면 차 마시며 평가, 반성을 했다. 서로의 노고를 치하하고 몸으로 나누는 대화로 현상적인 갈등을 해소했다.
친구들과의 여행이 높은 만족도와 즐거운 웃음을 남겼다면, 우리 둘의 여행은 싸움으로 얼룩진 일이 주로 남았는데도 둘의 여행을 시도했던 이유는 그때까지만 해도 남편에게 친구가 없어서였다. 그는 나만 바라봤고, 나랑 있는 시간을 좋아했다. 문제는 오직 집에서였다는 것. 들판으로 뛰쳐나가려는 여자를 집안에 잡아두니 여자는 욕구불만덩어리가 되었다.
물론 즐거웠던 순간도 많았다. 하지만 남편과 헤어지고 나자 '여행지에서 찡그렸던 그의 얼굴'만 자꾸 떠올랐다.
일상은 눈빛만 봐도 상대가 뭘 원하는지 알게 되니 대부분은 맞춰 주기 쉽고, 크게 화낼 일도 없었다. 혹 그런 일이 있어도 누그러뜨릴 수 있었지만, 낯선 공간에서 긴장하는 그와 아무데나 가 보자, 아무거나 해 보자는 나의 다름은 여행지에서 간극이 컸던 것 같다.
그래도 이제 와 생각하니 그가 나름대로 노력했구나, 헤어지고 나서야 보게 되는 나는 얼마나 어리석은가.
며칠 전 혼자 강화도 여행을 하고 온 뒤 그와 떠났던 여행 추억이 떠올라 매일 글쓰기에 연재하고 있다. 그 글들을 조금 다듬어 이곳에 올리려 한다.브런치 발행 두렴증이 재발했는데, 완성도 있는 글을 쓰겠다고 미루는 것보다는 낫지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