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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창한 날들 Oct 18. 2022

싱글의 삶

여성 커뮤니티를 꿈꾸다



싱글이 되니 싱글끼리 만나게 되는 일이 많아진다.

싱글이 되었다는 내 말을 듣고 그제야 자신도 헤어진 지 몇 달 혹은 몇 년 되었다고 고백하는 이들도 있다.

예전 친구들 중에서 그간 소원하다가 내가 싱글이 되니 나보다 싱글 선배인 그 친구와 가깝게 지내기도 한다.

스포츠 클럽에서 만난 이들과 스포츠를 끝낸 뒤 술이나 차 한 잔을 하더라도 가족이 있는 이들은 먼저 귀가하고 싱글끼리 남는 경우가 있다. 그러다 보니 내가 싱글이 되기 전에 관심 갖지 않았던 싱글의 삶이 보인다.

(혹시 그 싱글들 중 불편할 수 있어서 내용을 조금 편집했음.)


이혼 경력 십팔 년의 A. 자기 분야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경제적 자립을 구축했으며 인지도까지 확보한 그녀는 신앙과 직업과 홀로 보내는 일상을 조화롭게 꾸려나가고 있다. 내가 남편과 헤어진다고 할 때 고요하게 응원해 준 친구는 자칫 내가 부정적으로 흐를 때 지그시 손 잡아 주는 천군만마 같은 지원군이다.


양육비 지원을 받지 못하는 조건에서 혼자 고등학생, 대학생 두 자녀를 키우는 싱글맘 B는 자녀의 입시를 위해 본업 외에 알바를 뛰며 24시간을 모자라게 살고 있다. 달마다 마이너스가 쌓이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자녀 이야기를 할 때 환하게 웃는 그녀를 보면 부양할 누군가는 짐이 아니라 선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최근에 가까워진 C는 이십 대에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해 단꿈을 꾸며 지내다 청천벽력 같은 남편의 외도 소식을 듣고 이혼한 뒤 삼십 년 가까이 혼자 힘으로 살아왔다고 한다. 처음엔 새초롬해 보여 다가가기 어려웠던 그녀는 다른 성향의 사람들을 품에 안을 넓은 가슴을 가진 작은 거인이다. 그녀를 알게 되어 감사한 요즘이다.


영업을 하며 중학생 자녀를 혼자 키우고 있는 D를 스포츠 커뮤니티에서 만났다. 그녀와 가까워질 기회가 없었는데 그녀가 사라진 뒤 남은 이야기. 손목을 여러 차례 그은 자국을 보았노라는 누군가의 증언과 그녀가 최근에 커뮤니티 안의 남자로부터 배신을 당했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그녀가 또 한 번의 상처를 입고 자신을 아프게 그을까 자꾸 그녀가 걱정된다.


일곱 살, 아홉 살의 두 자녀를 양육비 지원 없이 혼자 키우는 E 역시 24시간을 25시간처럼 지낸다. 그녀가 결혼하기 전 십 년 동안 함께 여행하였고, 다른 팔 년은 서로 그리워하며 자주 못 만나는 사이다. 우리는 수십 차례 싸웠다 화해했으며, 자주 얼싸안고 토닥이며 함께 왔다. 그녀가 남편과 헤어졌다는 말을 들려준 새벽을 잊을 수가 없다. 내일이면 집을 나가기로 한 남편 때문에 울음이 터진 내게 그녀는 자긴 이미 1년 전에 헤어졌으며 그 어린애들을 자기 혼자 보살펴 왔다고 했다. 글을 쓰는 지금도 눈물이...    




지난 일요일에 C와 시간을 함께 보냈다.

클럽의 다른 멤버들과 함께 어울리느라 단둘이는 처음이었다.

내가 요즘 자주 가는 송산 들녘의 카페로 달려가는 동안 펼쳐진 너른 들판과 하늘을 보며 그녀와 나는 소리를 질러대며 여행 기분을 만끽했다.

마침 신해철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우리는 어린아이들처럼 목청껏 따라 불렀다.


내가 사랑한 그 모든 것을 다 잃는다 해도 그대를 포기할 수 없어요
내 삶이 끝나는 날까지 나는 언제나 그대 곁에 있겠어요
<그대에게> 무한궤도


"안타까운 사람. 왜 이렇게 우리 곁을 빨리 떠났을까."

하늘과 바람과 벌판과 그녀와 나와 신해철과 '그대에게'가 한데 어우러졌고, 우리는 통하였다.

통창으로 들녘이 보이는 카페에서 저무는 해를 보며, 그녀는 지나온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혼자 힘으로 살아내느라 고독했던 그녀는 포기하고 싶은 때에도 오래전 홀로 되어 그녀와 형제들을 키워주신 노모가 있어 그럴 수 없었다고 했다.  

아픈 이야기를 담담하게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며 내 아픔은 별 게 아니었고 어쩌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저 옹이에서 얼마나 많은 날 피가 흘렀을까, 몇 차례 아물었을까, 다시 덧났겠지, 그리고 단단해졌을 테지.

그녀는 나보다 훨씬 큰 고통을 겪었지만, 어느새 그녀의 이야기가 내 이야기가 되고 내 이야기가 그녀의 이야기가 되었다.

그녀도 나도 친구들이 꽤 있다. 하지만 가족과 함께 있는 친구들을 아무 때고 부르기는 어려웠고, 그녀도 나도 선을 잘 지키는 타입이었다.

"우리들의 커뮤니티가 필요해. 우리들의 연대가 필요해. 난 언젠가는 여성 공동체 건물을 세울 거야. 지금은 우선 시간 내주는 걸로 하자."

"좋다 좋아!"

우리는 '서로 사용권' 쿠폰을 만들기로 했다.

'네가 필요해. 함께 있어 줘.'

한 달에 두 번, 밥과 차와 술과 나들이 어떤 형태든 가능함.

다음 날 아침에 일을 해야 하는 상대의 일상이 깨지지 않도록 새벽 2시 이전에 요청할 것.

마침 그녀의 집과 내 집의 거리가 멀지 않다.

갑자기 남은 시월이 든든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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