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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창한 날들 Jul 14. 2023

생의 광막한 여정 앞에서

물줄기를 바꿔 보자




1. 결심-느닷없지만은 않은


이 집을 떠나 다른 일을 하며 살아보려 한다.

지금 같아선 육체로 움직이는 모든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고 그러고 싶다.

얼마 전 읽은 책 <공정 이후의 세계>(김정희원, 창비)에서 '번아웃'의 개념을 언급했는데, 내가 지금 그 상태인 것 같다.

학원 사업이란 게 학생의 학습 능력도  향상해야 하지만 불안에 떠는 학부모도 설득하며 가야 하는 이중의 고객 상대 감정 노동 해야 하는 구다.

스물한 살에 시작해 지금까지 삼십 년을 해 온 나는 업계에서 대성을 이루지도 못했지만 크게 망한 적도 없어서 근근이 먹고 살아오게 해 준 고마운 업종이기도 하다. 

하지만 코로나 시국이 해제되면서 학생들이 많이 그만두었고, 나는 그간 마음의 정성을 들여온 아이들이 떠나가는 반복된 상실감을 이제 겪고 싶지가 않아 졌다. 이런 마음도 번아웃의 일종이란다.

또한 퇴근하고도 퇴근을 하지 못하는 정신노동이 힘겨워졌다. 연차도 월차도 없는, 불안한 자영업을 그만하고 싶어졌다.


지난주 부동산에 집을 내놓자 중개인과 집주인이 전화를 했다. 그들과 통화하면서 호기로운 결심이 쭈그러들고 갑자기 현실로 다가와서 무서워졌다.

학부모들에게는 뭐라고 할 것이며 독서훈련 공부방을 좋아하던 학생들은 어디에 가서 어떤 학습 혹은 독서를 하라고 할 것인가.

나 스스로에게 따져 물었다.

나의 자유 영혼만 중하냐.

무책임하다는 화살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딴은 이런 생각도 올라온다. 몇 년을 더 수업해 준다 해도 언젠가는 멈출 때가 있을 것이며 결국은 얻어먹을 욕이다. 그러니 지금 맞더라도 그러려니 하자.

또 이런 생각도 든다. 내가 그렇게 강한가. 맞고 나서 살촉을 빼고 상처 입은 몸과 맘으로 결정한 길로 걸어갈 수 있을 만큼 강한가 말이다.


솔직하게 말하는 성향 덕분에 주변 사람들의 말도 많이 듣게 된다.

한 친구가 "성급하게 결정하지 말라"며 내게 충동을 가라앉히라고 하였다. 나는 한 언니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A 언니가 남편의 이직으로 30년 정든 안산집을 떠나 전북으로 가서 산대. 그 언니에게는 성급하다고 누구도 말하지 않잖아. 나는 내 앞길을 내 주체 의지로 그 누구와의 관계도 고려치 않고 정했어. 결혼을 결정할 때 빼고 처음이야. 성급하다는 판단을 하는 근거는 뭐야?"

성급하게 결정하지 말라는 말에 발끈한 걸 보니 내가 그 말을 좋아하지 않는 것도 맞고, 실제로 성급한 것일 수도 있다.

그래도 예전의 나라면 풀이 죽어서 이렇게 말하며 꼬리를 내렸을 것이다.

"나 성급한가? 그래 성급한 거 맞아. 그럼 나 어떡하지?"

수용을 가장하여 내 인생에 대한 책임에서 쓰윽 빠지려고 들었을 것이다. 신중함이 필요하다며 우물쭈물하다 말았을 것이다. 그리곤 누군가를 탓하겠지.

하지만 이제 그 누구도 내가 탓하는, 핑계 대는 대상으로 만들고 싶지 않다.

생의 광막한 여정(브런치 진샤 작가의 대문 글 인용) 앞에서 두렵지만, 불안하지만, 나를 믿고, 나만 믿고 가 보자.



2. 불안-당연한 과정이니 피하지 말자


주변에 나의 고백을 들은 사람들이 물었다.

"계획 있어? 어디 가서 살려고? 어떤 일 할 건데?"

아무것도 정하지 않았다.

친한 몇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들어온 밤, 공부는 좀 해야 할 것 같아서 유튜브로 에어비엔비와 게스트하우스 창업(자영업이 싫다면서 기웃ㅠ), 배우 되는 법, 귀촌 등을 보았는데 어느 것 하나 지금 하는 공부방 사업과 비교해 '만만한 것'은 없었다. 영상들을 보고 난 뒤 불안이 눈덩이처럼 커졌다. 그러고 있던 차에 읽게 된 브런치 글이 마음에 들어왔다.


얼마 전 엘랑비탈 작가를 구독하게 되었는데, 그분이 쓴 '선'이라는 아이의 이야기다.

어릴 적부터 선의 유희는 대상을 가만히 바라보고 생각하는 것, 그 대상의 느낌에 빠져드는 것, 대상을 관찰하기, 사유의 늪에 푹 빠져 보는 것 들이었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선이 그러고 있기를 놔두지 않았다.

선은 고 1에 올라가 교련 수업에 참여한 뒤 부조리를 깨닫고 홈스쿨링을 하기 시작했다. 리고는 골방에 스스로를 가두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에밀, 루소, 존 듀이의 교육론, 프로이트의 정신 분석 입문 등.


선이 학교를 그만두고 학연이라는 네트워크를 거부한 채 혼자 독서하고 사유하는 과정을 보니 '어린것이' 하는 어른인 체하는 마음과 동시에 짠하기도 하고 대단해 보이기도 했다. 어린 '선'의 선택과 결단을 보니 부끄러워졌다.

나의 청춘 시절도 떠올랐다. 대학 때 운동권에 들어가고, 중퇴를 하고, 동거라는 방식의 이른 결혼을 하였던, 정상이라는 삶의 범주에서 벗어난 길을 걸었던 나. 하지만 결혼한 뒤 아이를 낳고부터는 착실하게 돈을 벌며 보통 사람으로 살아왔다. 문제의식조차 생기지 않는, 생기더라도 실천하기 두려워 눈을 애써 감은 나는 늘 내 삶에 결핍감을 느꼈다. 이렇게 살면 안 되는데 하는.

그리하여 해 온 일이니까 상대적으로 안전한 지금의 삶에서 발을 떼어 다른 곳을 가 보기로 했다. 지금이나 다른 선택지나 완벽하게 안전한 것은 없지 않은가. 설국열차에서 나가는 두려움을 느끼며.

다시 나를 세워 각오한 것을 밀고 나아가 보기로 했다.

어린 선에게서 한 수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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