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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창한 날들 Jun 09. 2023

커플에 대한 애도 2

- '난 아직도 그대를 사랑해.'라는 착각 속의 나에 대한 애도


1. 등장

그가 오기로 한 오전 10시.

아침 낭독회와 합평 모임에 참여한 뒤 냥이 물건을 놓을 수 있도록 방 정리를 서두르니 약속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아이라인을 그리고 은은하게 반짝거리는 립글로스도 바른 뒤 치마를 입었다.

"세대 차량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냥이 물건을 함께 가져오려고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다.

뒷좌석에서 모모(냥이 이름) 특유의 요란한 울음소리가 들렸다. 차 문을 여니 고양이바구니, 배변통과, 캣타워 부품들이 보였다. "물건이 좀 많네." 했더니 트렁크에 더 있다고 했다. 두 종류의 동굴, 배변용 모래 상자, 사료, 밧줄(책상다리를 긁지 못하도록 감기 위한 것), 자동급식기, 급식수기 등이 연줄연줄 나왔다. 

세상에 이렇게나 많은 물건이 따라올 줄이야!

안방을 제외한 방 두 개와 거실은 학생들 학습 공간이라 냥이와 나는 안방에 동거하기로 마음먹었는데 물건이 너무 많았다. 많아도 너무 많았다.(그는 솔로로 살면서 맥시멀리스트가 돼 버렸던 말인가.)



2. 대화

물건만 전달하고 돌아갈 것까지 예상하여 그렇더라도 실망하지 말자고 다짐했는데, 그는 캣타워를 설치해 주겠다고 내 침실로 들어왔다.(전에 방문했을 때 안방은 굳게 닫혀 있었다) 수고하는 그에게 음료 마실 거냐 물으니 믹스커피가 있으면 달란다. 믹스커피를 타 주며 점심 먹겠느냐 물으니 간단히 짜장면을 먹겠다고 했다. (분위기 좋은 장소에 가는 건 글렀다. 아쉽군. 쩝.) 나는 일하기 편한 칠부바지로 갈아입었다.


그가 전날 내가 보낸 톡 이야기를 꺼냈다.

"당신 주변에 사람들 많잖아. 나랑 나눠야 할 대화가 있어?" (그런 말이 어디 있어? 우리는 대화를 나누는 게 주특기인 부부였잖아.)

"당신이나 H(아들)처럼 IT 분야나 과학 분야의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내 주위엔 없어. 그런 얘기에 목이 마르더라고. 당신 같은 뇌섹남을 못 만나겠던데..."

그는 희미하게 웃었다.


짜장면과 마파두부덮밥을 배달시켜 먹은 뒤 허브차를 마시며 한 시간쯤 대화를 나눴다. 예전에 날마다 두세 시간씩 대화를 나누던 우리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당신과 이야기를 나누던 시간이 그리웠는데 당신은 대화 상대로서 내가 필요하지 않았어?"

"... 응. 학원에 국어 샘이 둘이나 있고... 여러 분야 샘들과 대화를 많이 나누니까." (그 학원은 사적인 얘기들까지 상의하는 분위기이고 십 년 넘게 일한 동료들이다. 대학교 동아리 같은 분위기랄까.)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당혹스러웠다. 나는 도대체 무슨 답을 기대했단 말인가.

"대화 상대로서 내가 국어 샘이라는 역할만 있었던 건 아니잖아?"

"응 그렇긴 하지."


3. 엇갈린 길
시작은 졸혼이었다. 따로 살아보기 1년 혹은 2년만 하자고 합의했는데, 그는 며칠 뒤 학원의 빚과 시부모 부양을 언급하면서 서류 이혼까지 하자고 했다. 그러더니 한 달 뒤 최종 이혼을 하는 날 내게 다른 사람을 만나 보라고 축복(?)했다.

단 석 달 사이에 나는 그와 만나지 못하는 사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나는 그가 이혼 언급 일주일 전 산책하면서 내 허리를 감으며 했던 말만 되감기하며 기다렸는데.

"당신은 나의 유일한 쏘울메이트야."

그의 베스트 프랜드는 여전히 나일 거라는 믿음으로, 나를 스스럼없이 만나는 날이 오기를 기다렸다. 학원문제로 싸우기도 많이 했지만 친구 사이로서는 유지할 수 있겠지 하고. 그런데 "국어 샘이 둘이나 있고"라는 그의 대답을 들으니 그동안의 믿음이 와르르 무너졌다. 나는 그에게 대체 가능한 인물이었던 것이다. 지금도 믿기지 않지만.


4. 망상의 결과
3년 동안 좁은 원룸에서 고양이 두 마리를 혼자 키우는 그에게 내내 미안했다. 23년 살다 간 고양이 장례식을 혼자 치렀다는 얘기를 나중에 듣고 더 마음이 아팠다. 그러다 어려운 상황이니 도와달라는 말을 어렵게 꺼냈을 그의 처지를 생각하여 이왕이면 서로 기분 좋게 즉답을 해 주었다.

"당신이 3년 키웠으니 이번엔 내가 해야지." 

하지만 이면에는 선뜻 호의를 보여주면 그도 내게 마음을 빨리 주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 있었다.  

나의 상상이 망상이었다는 걸 깨닫게 되자 냥이와 물건들을 되물리고 싶었다. (여기에는 나의 오해도 기여했다. 그가 다른 여자와 살려고 냥이를 내게 데려온 것인가 하는. 그 상상을 덧붙이니 킹 받는다는 표현으로 그날 오후는 침잠해 있었다. 오해를 할 만한 표지가 두 가지 있었는데 이 내용은 다음 기회에 쓸지, 안 쓸지 모르겠다.)

내가 감당해야 할 일들, 재회에 눈이 어두워 미래에 책임져야 할 일들을 잊고 있었다는 자각이 뒤늦게 왔다. 온 집안을 꽉 채워 휘날릴 털, 방바닥을 흙바닥으로 만들 모래, 여기저기 긁힐 벽지와 기둥, 나를 잠 못 자게 만들 녀석의 야행성 리듬... 한 마디로 상대의 마음을 갖기 위한 얕은꾀로 나는 수년 동안 개고생하게 생겼다는 자각이었다.

뒤늦은 후회로 그날 종일 인과응보라는 말을 떠올렸다. 그러나 나의 호의가 불순했으므로 만만치 않은 대가를 치른대도 할 말이 없는 처지가 됐다.


냥이와의 동거는 첫걸음부터 쉽지 않았다. 차에서 공포 섞인 울음을 울던 모모가 내가 다가가니 조용해지기에 기특하다 생각했는데 48시간 동안 굴 속에 숨어 먹지도 않고 싸지도 않았다. 마치 남자 집사 어디 갔느냐 그리워하는 것처럼. 여행 전날 잠을 자야겠기에 우선은 침구를 빼서 작은방에서 잤다.

여행 떠나는 날 아침에 냥이는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 3일 만에 집에 돌아오니 이불과 베개를 미리 치우고 떠났으니 망정이지 침대 시트 여기저기가 찢겨 있었다. 방바닥을 디딜 수 없게 모래 천지였고 악취로 가득 찼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녀석이 얼굴도 보여주고 가르릉거리고 예전에 하듯 내 뒤를 졸졸 쫓아다니기 시작했다.

"이제 너랑 나 둘이 협력해야 한다. 모모야. 우리 잘 살아보자."




이 글은 거룩한 글쓰기(100일 동안 매일 쓰기) 시즌 7의 미니버전인 <49일 애도하는 글쓰기>에서 쓴 글이다.

이 글을 읽은 밴드의 한 글벗은 '아직도 그런 카톡을ㅠ 난 절대 하지 않는 일. 너와 나의 다름'이라고 댓글을 남겼다. 그녀에게 나는 드라마로 치면 고구마 같은 인물인 모양이었다.

다! 아직도 난 그에 대해 할 말이 너무너무 많은데 어쩌지?

하지만 어쩌랴. 이젠 각자의 길을 가야 할 때다. 부제처럼 '난 아직도 그대를 사랑한다는, 혹은 그대가 아직도 날 사랑할 거라는' 착각 속의 나를 보내고 새로운 나를 불러야 한다.

죽음학자 임병식이 말하는 애도를 어와 변명이라도 하고 싶다. 그의 말대로라면 글쓰기 과정은 사랑했던 사람과 사물을 보내는 '애도'의 과정이다. 그 과정은 나의 의식이 성장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새로운 희망 찾기다.

모든 narrative는 애도의 과정이다. Narrative, 즉 말을 한다는 것은 과거의 사건을 오늘이라고 하는 안정된 환경 안에서 재구성하는 것이며, 향후 자신의 소망이 투여된 의식의 지향성을 바탕으로 재구성하는 것이다. 말한다는 것은 억압된 감정을 소산(消散, scatter)하는 것이고, 말을 함으로써 비탄과 동일시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그 동일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객관적인 힘을 제공한다. 응어리진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마주하고, 그 감정을 신체감각인 생리적 감각으로 표현하고 나면, 신체적인 후련함과 더불어 저절로 스며드는 생리적 현상으로 안정감이 찾아온다. 이러한 후련함과 안정감이 자연스레 찾아오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게 되며, 인식차원의 질적 변화가 일어난다. 감정에 몰입되었던 의식이 서서히 제자리를 찾게 된다. - 임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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