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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창한 날들 Sep 04. 2023

사라지는 것들에게 미안하다

안산 <펨 카페>




어제(2023. 9.2)는 안산에 있는 페미니스트 북카페 <펨>이 문을 닫는 날이었다. 와인과 하이볼을 마시며 마지막을 함께하자고 하여 서운한 마음을 안고 문했다. 집에서 멀기도 하고 종이책을 사지 않는 데다 창이 보이는 카페를 좋아하는 나는 이런저런 핑계로 지하에 있는 펨에 자주 갈 일이 없었다. 좋은 강의가 있을 때에는 내가 수업하는 시간대랑 겹쳐서 참석하지 못했다.

펨은 7년 전 안산 사동에서 문을 열었다. 정기적으로 좋은 강의를 여는 등 지역 커뮤니티 활동과 여성운동을 꾸준히 해 온 곳이다. 올해 초에 나도 그에서 '마더피스 타로'를 배웠다.
그런 펨이 장기 적자를 이기지 못하고 문을 닫게 됐다는 소식을 알렸다.
마지막 와인파티에 참석한 이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이 '언제나 있을 줄 알았다' '자주 오지 못해 미안하다'였다. 

펨이 사라지는 것이 자기가 마음을 좀 더 쓰지 못해서라는 자책이 들어서다. 사라지는 것들에게 미안함부터 느끼는 사람들. 



페미니스트 북카페 펨 입구


<고려인 청소년 기금> 마련을 위한 바자회


페미니즘 서적


당일 참석한 페미니스트 활동가가 안산에서만도 여러 시민 단체가 문을 닫았다고 말해 주었다. 시민 단체 보조금을 5,000억 원이나 깎은 것으로 알려진 정부는 보조금을 불법으로 사용했다는 혐의를 씌우고 과태료를 부과함으로써 시민 단체에 더 큰 부담을 안기고 있다고 한다. 이러다간 시민 단체 다 죽이는 것 아닌가 답답하다.

<함께크는여성 울림>의 회원 몇 사람과 참석한 자리에서 울림 대표는 시울을 훔쳤다. 여성 운동을 하는 단체장으로서 동병상련의 마음이 든고 했다. 회비로 운영되는 울림은 활동가들이 성평등 관련 사업을 기획하여 지자체에 지원비를 받은 뒤 좋은 강사를 섭외하고 회원들에게 양질의 교육을 제공해 오고 있다. 그런데 요즘은 채택되는 사업의 수가 줄어서 활동가들이 고심하고 있다.






와인과 하이볼, 카프레제 등의 안주까지 융숭한 대접을 받는데 회비도 따로 내라고 하지 않는 선량한 사람들. 책을 두 권 샀다. <오늘부로 일 년간 휴직합니다>와 <덜 소비하고 더 존재하라>는 책이다. 지금의 내게 딱 맞는 책이어서 그 책들이 내 눈앞에, 내 손안에 들어오는 게 신기했다. 




그저께, 두 달 전 휴원한 학생의 어머니가 느닷없이 전화를 걸어왔다. 나의 1호 학생의 어머니였다. 3년이나 꾸준하고 성실하게 오던 그 학생은 이곳에서 힐링을 받는다고 이쁘게 말하곤 했다.
"선생님, 언제나 계실 줄 알았어요. 경제적으로 좀 힘들어서 몇 달만 쉬다 보내려고 한 건데..."
어머니는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미안하다고 했다.
삼 년 동안 내가 헛짓을 한 건 아니구나 싶어 위안이 되었다. 우리는 3초 동안 고요하게 마음의 공명을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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