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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창한 날들 Sep 11. 2023

몸으로 깨달아지는 시간

춤의 학교 체험기

사진 출처 : pixabay



틀 없는 춤


서울 부암동에서 4주간의 '춤의 학교'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첫 수업부터 내 생각을 깨는 춤의 학교의 매력에 푹 빠졌다. 스물다섯 명의 여성과 남성 두 명이 참여한다.

2시간 동안 세 가지 정도의 춤을 춘다. 지난주 수업에선 '털기춤', '리드&팔로우', 'Mother's present'를 했다. 춤이라기보단 자신을 표현하는 동작이나 안무라 하는 게 맞겠다. 틀이 없는 게 춤의 학교 특징이다.

각 과정이 끝나면 느낌이 어땠는지 돌아가면서 나눈다. 사는 곳, 일해온 분야, 성장 과정 등 모든 게 다른 이들이 꺼내 놓는 깨달음의 언어들에서 배우는 게 많다. 내가 미처 알아채지 못하는 영역을 적절한 어휘와 문장으로 표현해 주는 이도 있고, 전체 참가자들이 자아내는 분위기에 집중하여 느꼈던 것을 표현하는 이도 있다. 특히 교직에 몸담았다는 칠십 대 할아버지의 말씀은 긍정과 포용의 언어인 데다 시 같아서 귀를 기울이게 된다.

'나눔'도 통찰과 자신만의 연륜에서 나오는구나 느끼게 되어 한 분 한 분의 말을 녹음하고 싶을 정도이다. 그런데 춤 수업이 끝난 뒤 안산으로 돌아와 출근해야 하므로 전철 안에서도 나는 달린다. 곱씹을 만큼 여유롭지 못해 느낌만 남고 구체적 언어는 다 날아가 버려 아쉽다.





리드 & 팔로우


지난주에는 '리드 & 팔로우'라는 춤을 추었다.

둘이 짝을 이루어 리드하는 사람은 눈 감고 뒤로 걷고, 눈 뜬 사람은 리드하는 사람을 보아주며 팔로우를 한다. 일정한 시간이 지나 안내의 멘트에 따라 역할을 바꾼다.

내 짝은 나와 성(姓)이 같아서 주목한 데다 웃는 인상에 좋은 목소리를 지닌 분이었다. 지난 두 번의 수업에서 나눔을 할 때 솔직하면서도 겸손하게 자신만의 독특한 깨달음을 들려준 모습에 호감이 한층 더 생겼다.


나는 전날 잠이 부족해 자꾸 눈이 감기기에 먼저 리드하는 역할을 했다. 뒤로 걸을 때 그분이 내 손에 힘을 주어 방향을 바꾸라는 느낌을 강하게 전달했다. 나를 다른 이와 부딪치지 않게 하려는 의도였을 텐데, 불안이 큰 사람이거나 통제하는 게 몸에 붙은 사람이거나 한가보다 했다. 그래도 속도와 방향 모든 게 편안해졌고, 점점 손이 따뜻해졌다. 발걸음에 리듬이 얹어지고, 어깨도 약간씩 그루브가 생겼다.


춤이 다 끝난 뒤에 마주 보고 앉아 느낌을 나누었다. 그분이 먼저 말했다.

"저는 장녀로 자라서 앞만 보며 살아왔어요. 남편에게도 제가 보호자의 역할을 주로 했고요. 제 주변 사람의 안정에 과한 신경을 쓰는 편이라서 창아 씨가 누구랑 부딪칠까 봐 너무 염려되어 손에 힘을 꽉 주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창아 씨는 어디든 제가 가도록 두더라고요. 손에 힘을 하나도 안 주는데 제가 안심이 되는 거예요. 나도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다고 느꼈어요. 안 다칠 수 있는데 쓸데없이 걱정이 많았구나 하는 생각. 신기한 경험이었어요."

"저는 눈 감고 누군가를 리드하는 게 가능한지 하는 의문을 안고 시작했어요. 은정 씨가 처음부터 인상도 좋고 믿음이 가는 분이어서 그랬는지, 금세 안도하고 은정 씨에게 나를 맡기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마음 턱 놓고 걸었어요. 눈 감아도 리드할 수 있구나. 팔로우를 믿으면 다 되는구나 하는 걸 깨달았어요. 은정 씨가 힘을 주어 전달하는 손의 힘에서 처음엔 약간의 저항감을 느꼈지만 이내 고마운 마음이 되었어요. 이 분 믿고 가면 되겠구나 하고요."


리드&팔로우를 하고 돌아오면서 내가 운영해 온 소모임들을 떠올리며 되돌아보았다. 실은 춤을 추는 동안 무의식으로 이미 깨달아졌다. 아, 이거구나. 리드와 팔로우가 이런 거구나. 특히 나의 부정적 모습들이 보였다.

내가 리더였을 때 적극 호응하지 않는 이들에게 서운해하고 답답해했으면서 문제제기하는 이들에게는 저항했던 나, 때로는 내 마음대로 하고 싶어 힘썼으면서 책임은 지고 싶어 하지 않는 나. 내가 팔로우였을 때는 리더를 믿고 따라가기보다 능력을 의심하고 그를 탓했던 나.

리드와 팔로우, 적절하게 힘이 배분되고 조화를 이루는 팀이 되려면 어떡해야 할까.

춤의 학교는 말 대신 몸으로 저절로 깨달아지게 만드는 자극을 주는 놀라운 학교다.

아직 한 번의 수업이 더 남았다. 어떤 수업으로 마무리하며 감동과 여운을 남길지 몹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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