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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창한 날들 Nov 27. 2023

페미니즘 에세이집 출간

실천하는 페미니즘 프로젝트 <어쩌면 당신의 이야기, 12개의 시선>




남들에게 일어날 일이라 여겼던 우울증이 내게도 왔다. 마흔한 살이었다.  육신은 살았으되 의식은 좀비처럼 지내는 내게 정신과 선생이 물었다.

“가장 힘들고 괴로운 일이 뭐예요?”

“사회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인간으로 사는 게 괴로워요. 제가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사람 같아요. 지금보다 가진 게 없던 이십 대에는 자유, 평 등한 세상을 만드는 길을 걷고 있는 제가 자랑스러웠어요. 모든 순간 살아야  할 이유가 분명히 있었어요. 근데 지금은 왜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대학 시절 달동네 공부방과 지역연합문예단에서 활동했다. 남편도 그 시 절에 만나서 함께 이 사회를 평등한 세상, 노동이 해방되는 세상으로 만들기  위해 작은 몫을 실천하고 있다는 긍지가 있었고, 기대감으로 심장이 팔딱팔 딱 뛰었다. 사회과학 공부도 하고 집회시위에도 참여하느라 육신이 고됐지 만 더불어 사는 세상을 위해서라면 나를 아낌없이 내놓을 수 있었다.


스물한 살에 결혼한 뒤 출산과 육아에 맞벌이까지 겸하느라 사회 운동과  멀어졌다. 자식을 건강한 사회인으로 기르기 위한 시간이라고 합리화했다. 아들이 기숙사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난 뒤 빈둥지 증후군과 우울증이 동시에  나를 덮쳐 날마다 사라져 버리고 싶다는 생각만 했다. 위태로움을 느낀 남편이 글을 써 보라 권했다. 학창 시절 꿈이 작가였다는 것을 알고 있던 남편은 자신 없다는 나를 응원해 주었다. 대학교 평생교육원 에세이 교실에서 글을 배우면서 쓰는 과정에서 감사의 마음이 커지고 치유가 되는 경험을 하였다.


일 년 뒤 안산에 있는 소설동호회에 가입하여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본업으로  학원을 운영하던 나는 아이들과 수업하는 시간을 제외하고 온통 소설을 구상하는 데 온 신경을 집중했다. 그 시간은 밀도 있는 행복감으로 채워졌다. 내  소설의 주인공들은 주로 내가 이해하지 못한 주변 사람으로 설정했다. 내향형 성격을 지녔으나 품이 넓은 은자 할머니,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는 장애인 청년에게 마음을 열어가는 고집불통 준석 할아버지, 정반대의 처지에 놓인  친구를 이해하는 연희, 게임 중독에 빠진 고3 아들과 그 아들이 사이코패스가 될 거라는 망상에 사로잡힌 엄마 등이었다. 인물들은 각자의 성격대로 서로를 미워하거나 오해하지만 서서히 이해하게 된다.  


소설 쓰기를 통해 나만이 그릴 수 있는 세계를 창조하는 데서 희열을 느 꼈고, 현실에서라면 나의 편견으로 만나지 않고 싶은 인물에게 마음을 열게 되었다. 기성 작가가 쓴 소설에 비하면 부족한 게 많지만 내가 만든 소설 마을의 주민들은 내가 힘들 때 언제든 내 곁으로 와 등을 토닥여준다.

살아가라고.

살아내라고.


삼 년 전에 남편과 헤어지게 된 나는 버려졌다는 피해 의식에 휩싸였다. 천성대로 웃으며 지냈고 주위에 나를 살뜰히 챙겨주는 친한 사람들도 많았지만, 이따금 내가 사라져도 되지 않을까 하는 위험한 유혹에 빠지곤 했다. 혼자인 삶을 이어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만 들었다.  


그즈음 100일 동안 매일 쓰기의 효능을 알게 돼 <거룩한 글쓰기>라는 밴드를 만들었다. 내일의 글에 쓸 글감을 찾고 일상을 관찰하는 것이 생활화되었다. 하루하루 살아 있는 게 감사했고 나라는 사람이 가치 있게 느껴졌다.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가 여전히 있지만, 늦은 밤 밴드 마을의 어느  한 집에 불이 켜진 걸 보면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혼자라서 외로운 게 아니 라 홀로 서지 못해서 외로운 것’이라는 문구처럼 씩씩하게 홀로 서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다.  


글을 쓰다 보면 주위 사람들에 대한 미움이 한풀 꺾인 것뿐 아니라, 댓글로 공감을 표현해 준 글벗들 덕분에 내 생각과 행동이 이해받고 있다고 느꼈다. 작은 성장을 체험하는 삶의 현장이었다. 나이 어린 글벗들은 막연하게  암울할 거라고 불안해하던 오, 육십 대를 연장자 글벗들 덕분에 희망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거룩한 글쓰기'는 현재 시즌 8이 진행 중이며 전원이 여성이다. 새로 들어 온 글벗들이 처음에는 근황만 올리다가 삼십 일쯤 지나면 과거의 역경이나 고난을 폭탄처럼 투척하는 용기를 냈다. 암밍아웃(암이라고 고백함), 소중한 사람의 죽음, 성장통 등을 올렸고, 그 글들은 딸로, 며느리로, 엄마로, 아내 로 말하지 못하고 참으며 돌봄 노동에 최선을 다했던 여성들의 수난사였다. 우리는 나 한 사람의 실수나 잘못이 아니라, 사회적 구조 속에서 여성이기 때문에 좀처럼 헤어 나올 수 없는 굴레에서 몸과 마음의 병을 얻었다는 걸 깨달았다.


이십 대 이후 사회 참여는 멀고 먼 일이라 미뤄왔는데 ‘함께 크는 여성 울림’의 소모임 ‘별을 품은 사람들(별품사)’ 활동에 동참하는 용기도 얻었다. 세월호참사와 생명 안전 관련 도서를 읽고 토론하며 유가족과 연대 활동을 하는 별을 품은 사람들 활동에 관하여 글쓰기 밴드에 공유하는 것도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실천이다.


삶을 변화시키려면 나뿐만 아니라 나를 둘러싼 환경을 바꾸어야만 가능한 문제가 많다. (중략) 자신이 원하는 것을 분명하게 꺼내어 말하는 일에서부터 문제는 풀리기 시작한다. (중략) 목소리 내기는 모든 변화의 출발이다. <여성의 글쓰기> 이고은, 217


매일 글쓰기 삼 년은 내가 누구인지 바로 보고, 여성으로서의 나의 사회적 위치가 무엇인지, 나는 어떤 일을 하며 누구에게 도움이 되며 살아갈 것인지 찾아가는 여정이었다. 그것은 나의 목소리를 찾아가는 여정이기도 했다. 그 여정에서 누군가의 삶에 절실함으로 가 닿을 나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나와 다른 이를 살릴 수 있는 길로 이어진다는 것도 깨달았다. 뿐만 아니라 내 상처에서 시선을 돌려 이웃의 아픔에 귀를 기울일 수 있었고, 여성이 행복한  세상에 대해 구체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다른 이들과 함께 부르는 노래 의 어울림은 아름답다. 소외된 이웃과 함께하겠다는 연대의 노래는 더 아름 답고 울림이 클 것이다. 이제 우리의 노래는 시작되었다.



페니미즘 토론을 하는 벗들과 '실천하는 페미니즘 프로젝트' 지원을 받아 지난 6월부터 10월까지 오 개월 동안 글을 쓰고 합평을 해 왔어요.
열두 명의 글벗들이 1년 동안 토론한 페미니즘 도서들 중 두 권씩 골라 자신의 삶과 연결하는 글을 썼고, 제 글은 모두 세 편이 실렸어요.
봄부터 탈직을 결심하고 가을에 이사를 준비하며 이 글을 쓰고 격주로 합평하느라 뼈를 조금 갈아 넣었네요. 11월 3일에 드디어 책이 나왔어요!
비매품이지만 올해 유의미한 성취를 한 것 같아 저 자신을 토닥여 주었답니다.
지난 화요일에는 성황리에 북토크도 했어요.
요즘 저는 또 다른 도전을 하고 있어요. 그런 바람에 브런치에 글을 갈무리해서 올릴 여유가 없는 사정이었는데요. 마침 구독자이자 마음 따스한 친구들이 브런치 글이 발행되지 않고 있으니 어디 아프냐고 연락을 주었네요. 그들에게 이 책의 본문을 PDF 파일로 공유하고 보니 겸사겸사 여기에도 소식을 대신합니다.
어떤 작가님들도 발행 글 알림이 더디게 오던데...호윽시??
내일부터 추워진답니다. 몸도 마음에도 감기 들지 않게, 조심하시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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