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생활을 하는 동안 불편한 건 돈으로 해결하려 했다. 청소, 식사준비, 부모님 돌봄도 가능하면 돈이면 다 된다고 여겼다. 가사도우미는 물론 일정관리 비서를 둘 생각도 했고 화분관리사도 고용하려 했다. 내가 불필요한 노동을 해야 하는 이유는 오로지 돈이 없어서라고 생각했다. 돈만 있으면 불편하고 귀찮은 일을 내 몸으로 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런 일들은 나를 피곤하게 하고 아프게 만드니까, 그런 일을 하지 않으려고 열심히 돈을 벌었다.
이혼했다고 달라진 건 없었다. 오히려 더 열심히 돈을 벌어야 했다. 혼자 힘으로도 경제력을 유지하는 능력자로 잘 산다는 인정을 받고 싶었다. 내가 혼자 힘으로 이년 만에 수 천만 원의 빚을 갚은 걸 아는 동생이 내게 존경스럽다고 말해서 웃기도 했지만,(거액 연봉자가 보자면 소액이지만 소시민에게는 1년에 천 만원 모으는 것도 쉽지 않으니까) 그런 시선이 싫지 않았고 위안 삼기까지 했으며 나 잘 살고 있구나 안도했다. 공부방을 하기 위해 최대한의 전세 대출을 받고 들어온 지금 사는 집은 최첨단 시스템으로 지어진 신축 아파트였다. 이곳에 입주한 것도 나를, 나의 능력을 입증하는 상징이 되었다.
빚만 잔뜩 있어서 위자료를 주고 받을 것도 없는 채로 남편과 헤어졌기 때문에 혼자 살아내고 있는 내가 대견했다.
그러면서도 그게 다는 아닌데, 내가 무얼 놓치고 있는 걸까, 자꾸 고개를 갸웃거리는 순간이 많아졌다.
다만 세상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는 않아서 글을 통해서만 내 문제의식을 조금씩 꺼내놓았을 뿐이었다. 이를테면 이런 문제의식. '자본주의 대한민국에서 생태계를 덜 파괴하고 나의 몸과 맘이 건강한 삶을 살려면 어떡해야 하나.'
구월 초에 '페미니즘 북카페 펨'에서 사 온 책 <덜 소비하고 더 존재하라>를 읽고 있다. 이 책의 부제는 '에코페미니스트의 행복 혁명'이다. 생태주의와 여성주의의 결합에서 길을 찾는다는 취지로 여러 여성학자들과 실험가들이 나누어 집필한 책이다.
마음에 당기는 소제목인 '소비에서 자급으로 좌표 이동'이라는 글부터 읽기 시작했다. 공감되고 동의되는 부분을 밑줄 치다 보니 너무 많아서 오늘 글은 사진으로 도배하기로 한다.
지금의 내게 '소비'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문제다.
필요한 것을 소비할 수 있는 경제력을 지녀야만 내 삶에 큰 문제가 없구나 안도하고 행복을 느끼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고 자란 사람으로서 소비에 대한 태도는 나의 삶의 질과 행복을 유지하는 관건이 되어왔다.
하지만 나는 소비 중심적 삶에서 벗어나 삶의 중심을 새로이 잡고자 한다.
앞으로 덜 노동하고 덜 소비하면서도 삶의 질과 행복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 무얼까.
작가 김현미는 자기 돌봄, 요리, 청소, 채소와 꽃 가꾸기 등의 자활노동으로 건강해지는 삶을 도모해야 할 것이며, 자급하는 삶의 소중함을 깨닫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말한다.
공부방 수업을 연휴 전까지 끝내고, 10월 4일에 이 아파트를 떠난다.
내게 맞지 않은 보석 달린 남의 옷을 입고 살았던 지난 3년을 청산하고 이젠 내게 맞춤인(그것도 실험해 봐야 알겠지만) 공간에서 내 몸을 움직이며, 그러니까 자율노동과 자활노동으로 건강하게 살아보려 한다.
시월부터 아무 계획도 서 있지 않은 내게 주변에서 자꾸 묻는다.
"무슨 일 하며 살 거야?"
"시월에 어디로 여행 갈 거야?"
두 가지 모두에 답할 어떤 것도 준비돼 있지 않다. 내 마음이 나를 이끌겠지, 하고 모호한 대답을 하는 내게 아무도 나무라지 않는다.
2021년 5월부터 <거룩한 글쓰기>라는 이름의 밴드에 매일 글을 써 왔다. 지인들 모임이라 내가 쓰는 글의 앞뒤 맥락이 뚝뚝 끊어져도 그들은 나를 이해하고 공감의 댓글을 폭풍으로 달아준다.
똑같은 글을 브런치에 올리려니 읽는 분들이 영 이해가지 않는 상황이 되는 경우가 많겠다, 문득 움츠러든다.
그런데 브런치에 맞게 고쳐쓰다 보면 너무 시간이 걸려서 서랍에 넣어두게 되고 그러다 보면 미발행, 자괴감의 악순환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