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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창한 날들 Sep 24. 2021

시선

돌싱이 되니 달리 보이는 것들

1. 사진을 보다가


운전하다 우연히 듣게 되는 노래에 마음이 요동을 친다.


사랑을 하다가 한쪽을 잃었어 사랑을 하다가 나 혼자 남았어
한참을 울었어 난 눈물로 널 잊고 싶어서 그래 잊고 싶어서 편지를 찢었어

이제 나 너 없이도 잘 해낼 거라고 난 습관처럼 눈물 흘리지 않는다고
이렇게 다짐하지만 잠시 나도 모르게 어느새 널 기다려
<사진을 보다가> 다비치 노래

 

https://youtu.be/Ri7 Y9 NZPZ8 g


그러고 보니 이별 노래에 감응한 적이 없었다.

아무 느낌 없이 글밥만 따라 읽는 독서를 해 왔달까.

노래를 따라 흥얼거리긴 했지만 그들의 이별과 아픔에 이입한 경험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헌데 이별이 내 문제가 되고 보니, 생에서 처음으로 혹독한 이별을 겪고 보니 모든 이별 노래의 주인공들이 나와 똑같은 심리 상태였다는 걸 깨달았다.

남들은 2, 30대에 경험했을 연애감정과 이별의 아픔을 이제 와서 겪고 있다니.

부모님 슬하에서 스무 해, 한 남자의 품 안에서 서른 해, 반백년을 의존증 환자로 살아왔다.

스물한 살부터 독립해 7년째 혼자 힘으로 살고 있는 아들만도 못한 셈이다.

내게는 독립 의향도, 의지도 없었다.

헤어졌지만, 그가 웃으며 돌아올 줄 알았고 반년 넘게 그를 기다렸다. 그러니 당분간 떨어져 지내는 부부처럼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그에게 연락을 취했다. 싸늘하게 반응하는 그에게 상처 받고, 한 달쯤 지나면 다시 연락할 궁리를 했다.

아들로부터 따끔한 충고를 듣고 나서야, "그게 폭력이야" 하는 아픈 말을 듣고 나서야  '이제 그만' 하기로 했다.       




2. 시선


"언니, 형부 아직도 그립다며? 근데 딴 남자가 보여?"

그렇다. 그렇더라.


커플로 살 때는 다른 남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이돌이나 배우라면 모를까. (BTS를 향한 팬심 4년째)

요즘은 혼자 등산 가거나 산책할 때 나도 모르게 홀로 걷는 남자에게 시선이 향한다.

그의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스캔하고, 어디는 괜찮네 어디는 별로네 하며 평가를 하고 있다.

그러다 아래가 뻐근할 때도 있다. 그리곤 제 발 저린 도둑이 되어 귓불이 빨개질 때도 있다.

먼 데서 다가오는 사람이 남자가 아니라는 게 확인되면 미련 없이 시선을 돌린다.


전에도 그랬느냐고? 아니다.

전에는 내 또래 여자의 몸을 훑었다. 경쟁하는 마음으로.

나보다 배가 나왔고, 나보다 키가 크고, 나보다 동안이고, 그런 식으로.


남자를 보는 시선이 순수하지 않음을 깨닫고 땅 밑을 보고 다녀야겠다고 다짐했다.

한 인격체를 훑어보는 자신이 부끄러워진 것이다.


그런데 그렇지만은 않다고, 내면에서 저항했다.

솔로가 되니 본능적으로 누군가를 찾는 거라고. 단지 그거라고.

그래서 이젠,

그냥 본다.

미혼 시절을 오래 지냈다면 연애 경험도 몇 번 만들고,

나한테 맞는 사람도 찾고,

그랬을 텐데.


시선은 이렇게 난감하게 생판 모르는 이성을 향하지만

헤어진 그와 만나 차도 마시고 밥도 먹고 수다도 떨고 스킨십도 하고 싶다.

안 된다면

내 남자였던, 내 몸을 사랑했던 그와

벗으로라도 만나고 싶다.

어쩌다 문득 생각나면 밥이라도 한번 먹자고.

그러고 싶다.

당신은 내가 안 그리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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