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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창한 날들 Aug 13. 2024

나를 사랑할 사람은 바로 나

서평 <숙덕숙덕 사모의 그림자 탈출기>(김화숙,2024.6,생각비행)




5월부터 석 달 동안 심리상담을 았다. 초반에는 기분도 좋아지고 가벼워지는 것 같더니 뒤로 갈수록 내가 너무나 한심하고 하찮게 느껴졌고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두려워졌다.


상담을 통해 남과 비교하는 습성이 문제였다는 걸 알아차렸다. 마흔 즈음에 우울증이 온 것도 그 습성이 나를 잠식할 때였다.

지난 가을부터 본업을 쉬기로 했을 때, 글 쓰는 시간을 메인에 두었다. 헌데 백수로 지내는 날이 늘수록 글로 성취해야 한다는 강박이 커지더니, 가장 좋아하던 쓰는 일이 나를 가장 괴롭히는 일이 되어버렸다.

    

상담 과정에서 삶의 진정한 주인으로 산 적이 없었다는 것도 깨달았다. 스물까진 부모에게, 결혼한 뒤에는 남편에게 내 삶의 고삐를 넘겨준 채 내 목을 조이든지 말든지 그들의 처분에 맡겨두었다가 견디기 힘들면 그들을 원망했다는 것을.

남편과 동업한 뒤부턴 책임지는 게 두려워 그의 등 뒤에 숨었다. 그때는 가 스스로 선택한 굴레를 답답해하면서도 안온하게 머무를 얌체 같은 생각만 했다.


상담은 나도 알아차리기 어렵게 포장하고 있던 나의 본모습을 탈탈 털리게 했다. 너무 고통스러운 과정이었다. 남편이 먼저 이혼하자며 내 손을 놓았기에 망정이지, 그러지 않았다면 지금 이 순간까지도 나는 그에게 비스듬히 기댄 채 구경꾼이자 평가자로만 살고 있었 거라는 걸 받아들여야 했.




김화숙 작가 그런 점에서 나와 완연히 달랐다.

<숙덕숙덕 사모의 그림자 탈출기> 표지에 '한 여자가 침묵과 복종의 그림자를 벗어나 자기 목소리를 찾아가는 이야기'라고 소개된 문구처럼 김화숙은 자신이 목소리를 잃은 채 살아왔다는 걸 깨닫고 목소리를 찾기 위한 모든 것에 목숨을 걸었다.


김화숙은 이십 대 때 대학에서 성경공부 활동가로서 열과 성을 다하여 전도하였다. 대학을 나와서는 언어 공부도 되어 있지 않은 채 폴란드로 세계 선교를 떠났다. 이, 삼십 대의 그녀가 종교적 신념을 가지고 선한 세상이 오길 바라며 실천했던 모든 과정은 너무나 순수하고 뜨거웠다.


하지만 선한 세상이 되는 데 한 몸 바치겠다는 김화숙의 순수한 의지는 수많은 벽에 가로막혔다. 큰며느리로서 가부장제에서 납죽 엎드려야 했고, 목사의 아내로서 교단에 복종해야 했던 김화숙은 인내, 헌신만이 자신이 가야 할 길인 줄 알았다. 그 시대의 여성들이 대부분 순종적으로 살았으나 큰며느리와 목사의 사모로서 사는 삶이란 생각만으로도 숨 막힐 정도로 보통의 여성보다 더 몸을 낮춰야 했다.


김화숙은 그 모든 일을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고 믿었. 간암이 몸을 앗아갈 때까지 주변을 돌보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가슴속에 문제의식은 가득 품은 채 어느 하나도 허투루 하고 싶지 않았던 김화숙은 자신에게 '선물처럼 온 간암 덕'에 굴종의 삶을 거부하기로 하였다. 자신을 갈아 넣으며 가정과 교단에 헌신하던 일을 멈추기로 하였다.

종교에 임하는 자세도 바꾸었다. '사랑과 권위의 이름으로' 누군가에게 복종과 희생을 강요한다면 단연코 거부하기로 하였다.


이제 더는 그 누구도 사람에게 종의 멍에를 씌우는 일을 보고 싶지 않다. 하나님의 이름으로도, 교회의 이름으로도, 사랑과 권위의 이름으로도, 국가의 이름으로도. - '프롤로그'에서


지나온 삶을 리셋하기로 마음먹은 김화숙은 이혼을 불사할 각오를 하였다. 드디어는 남편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 함께 페미니즘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페미니즘은 김화숙 자신은 물론 가족과 주변의 삶을 근본적으로 전복하였다. 남편과 자녀들, 신도들과 평등한 위치에서 '인간 김화숙'으로 살아갈 길이 열렸다.

더불어, 김화숙은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을, 여성의 글을 쓰는 것이야말로 김화숙이 자기의 목소리를 찾기 위한 가장 확실한 지름길이었다.


아주 사소하거나 바보 같고 엉뚱한 내용이라도 무엇이든 쓰는 것. 나와 창조성 사이에 있는 글쓰기다. 쓰는 이유는 '다른 한쪽 면에 이르기 위해서'다. 글을 쓰면 나는 이해할 수 있었다. 내 안에 있는 두려움과 부정적 사고를 넘어 다른 통찰에 가 닿을 수 있었다. 일단 쓰면 나를 공격하는 비판적 목소리를 이길 수 있었다. 나를 들여다보는 글쓰기가 어린 예술가를 자유롭게 뛰놀게 했다. 209



이 책은 나의 이십 대부터 오십 대까지 돌아보는 계기를 주었다. 학생 운동에 뛰어들었던 이십 대, 시부모와 살며 아이를 양육하던 삼십 대, 삼중 사중의 역할로 나를 옭아매던 시댁과 갈등하던 사십 대, 동업자인 남편과 24시간 서로를 의식하며 눈치 보느라 아프던 끝에 이혼이라는 결정을  받아들인 오십 대.


신앙과 페미니즘으로 동행하는 김화숙 부부를 샘날 정도로 부러워하였다. 나를 떠난 남편을 원망도 하고 그리워도 하며 싱글로 산 지난 4년 동안 '내 인생 돌리도~~'하고 싶을 정도로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별의 아픔을 글쓰기와 다양한 모임으로 극복하고 있다고 믿었는데, 매일 글을 써 온 1000일 동안 내가 매달린 건 내가 그렇게 잘못 살지 않았다는 걸 모두가 알아주기 바라는, 도망가는 마음뿐이었다. 상담 과정에서 그걸 인정해야 했다.


브런치를 시작한 이유도 '이혼 전중후'가 글감이었으니 그가 나를 떠난 까닭을 찾아가다 보면 본질의 나를 만날 수 있으리라 기대했던 건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잘못'을 찾느라 헛다리만 짚고 있었다는 것도 상담 막바지에 알아차렸다.


내가 기다리고 그리워한 것은 '바로 그 사람'이 아니라 '의존할 수 있는 누군가'였다는 걸 받아들여야 했는데, 그 과정은 너무나 아파서 혹독한 감기몸살로 왔다.

그제야 남편이 내 곁을 떠난 게 아니라 그와 함께 잘 살아낼 자신이 없었던 내가 그를 밀어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동안 내 삶에서 '없음'에만 집중한 결과 내 인생, 내 재능, 나 자체를 하찮게 여겨 왔다. 진작에 '저런 것은 갖지 못했지만 이런 달란트는 있다'는 자세로 살았다면, 싱글로 지낸 4년 동안 나는 자유인으로서 조금은 더 행복한 일상을 보냈을지도 모르겠다.

나를 진정으로 사랑할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라는 것을 조금 일찍 받아들였다면...




<숙덕숙덕 사모의 그림자 탈출기>는 세대, 성별, 활동 영역, 종교를 떠나서 누구든지 토론이 가능한 책이다.

전작 <내 몸은 내가 접수한다>와 마찬가지로 이 책에서도 김화숙은 성경을 비롯하여 다채로운 책과 영화를 인용하며 자신의 생각을 들려준다. 김화숙의 머리 안에 책과 영화 등 얼마나 많은 문화콘텐츠들이 자양분으로 매복되어 있는지 작가의 뇌가 궁금할 정도이다.


격려하는 명언 중 '하퍼 리'의 "글쓰기 재능을 연마하기 전에 뻔뻔함을 기르라고 말하고 싶다"라는 말을 가장 좋아한다. (중략) 그 말은 곧 뻔뻔해 보일 정도로 자기를 믿으라는 말이겠다. 통념을 거스르는 용기, 남의눈을 의식하지 않는 대범한 걸음, 누가 뭐라 하든 말든 내 글과 자신에 대한 굳건한 믿음을 갖는 것. 263


김화숙 작가가 지난겨울 4개월 여를 집에 콕 박혀 쓴 책 <숙덕숙덕 사모의 그림자 탈출기>를 모든 이에게 추천하고 싶다. 문화 미식가인 김화숙의 책에는 자연치유, 글쓰기 방법, 기독교, 여성문제, 세월호참사 등 공부 영역을 확장할 수 있는 다방면의 콘텐츠들로 가득 차 있다.

나는 '진정한 주인으로 살기'에 꽂혔지만, 독자 여러분은 자기가 가장 골몰하는 문제에서 어떤 힌트와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김화숙과 나는 합평 모임으로 육 년 동안 함께 다독이며 성장해 왔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화숙, 결코 마르지 않는 사유의 샘을 가진 화숙이 지치지 않고 글의 바다로 나아가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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