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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창한 날들 Oct 19. 2023

나의 글은 노래가 될 수 있을까

거룩한 글쓰기 시즌 8의 45일 차 즈음에




나는 회피하는 사람이 싫었다.

비겁하다고 생각해서였다.

나는 비겁한 사람이 싫었다.

그래서 회피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회피하지 않을 수 있는 것들만 회피하지 않았고,

비겁을 논할 필요가 없는 것들만 비겁하지 않았다.

그럴 수 있었다.

그럴 수 있는 것들만 그렇게 했으니까.

그래놓고 용기 운운하며 살았다.

여차하면 사라지고 싶다느니 하는 소리를 추임새 넣듯이 했으면서

직면하는 척, 용기 있는 척, 약속을 잘 지키는 척하고 살아왔다.

척하고...




결말을 내놓지 못한 소설 '사과 따는 풍경'을 쓴 것은 2018년 여름이었다.

대학원 수료를 한 학기 남겨둔 그 여름에 나는 좌절했으나 그것을 인정하기 쉽지 않았다.

논문 준비도, 응모할 소설도 준비하지 못한 채 안산으로 돌아와야 하는 게 눈에 훤히 보였다.

그런데 남편이 순천에 더 머무르며 박사 과정까지 밟는 게 어떻겠냐느니, 안산에 돌아와서도 작업실 하나를 얻어서 지금처럼 주말 부부로 살면 어떻겠냐느니 한 바람에 몹시 서운하고 화가 났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 그의 품에 안기고 싶은데, 고배를 맛볼 게 뻔한 대학원 수업의 결말을 애써 회피하고 아늑한 집과 그의 품에서 위로받고 싶었다.

"됐어. 이제 다시 학원일에 힘내서 하면 되지. 꼭 졸업하지 않아도 돼. 등단하지 않아도 돼, 작가가 되지 않아도 돼. 네 자리는 늘 비워두고 있으니 돌아오기만 해."

그 말을 듣고 싶었는데 그는 자꾸 내게 거리를 두려고 했다.

그래서 오기 삼아, 그래 우리 일 년만 각자 살아보자 하고 다른 지역의 친구들 곁에 원룸을 알아보러 다니기도 했다. 내 마음은 졸혼 혹은 이혼의 복선이 될 만한 폭풍 속에서 몹시 부대끼고 있었다.

그때 쓴 소설이 '사과 따는 풍경'이었다.

원고지 90매나 되는 그 소설의 결말은 가난해도 가족이 유지되는 해피엔딩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생각해 보니, 나의 바람을 쓴 소설이었던 거다.

"그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이렇게 끝나는 옛이야기의 결말처럼 말이다.

그런데 실상은 정반대가 되고 말았다.


이사 핑계를 대며 예전 소설 연재로 일주일 매일 쓰기를 대신하겠다고 해 놓고는 막상 결말을 내놓으려니 희망사항을 길게 늘여쓴 그 글을 도저히 내놓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우리 거룩한 글쓰기 밴드에서는 소설 창작을 전공했다는 내가 처음으로 선보인 이 소설에 반응이 꽤 좋았다. 글벗들이 결말을 너무 기다리니까 어디로 숨고 싶어졌다. 급전개로 유치하게 끝나는 결말을 어떻게 내놓으란 말인가 말이다.  

그런 채로 다른 신변잡기를 대신 인증했다. 마음이 편할 리가 없었다.

내일 수정해서 올려야지, 그런 마음으로 다음 날이 되면 이사한 집에 문제가 연줄연줄 이어졌다.

하루 하루 시간이 가면서 포부 따위는 자취를 감추었고, 밴드 글벗들에게 약속을 지키지 못해 괴롭고, 그런 일들로 마음이 아프니까 몸까지 아팠다.

100일 동안 매일 쓰기 챌린지를 시작한다는 이정연 작가를 따라 나도 브런치에 매일 글을 올리겠다고 한 약속(나의 일방향 약속이지만)을 어긴 내가 싫었으나, 애꿎은 컴퓨터만 째려보았다.

그래선가. 한쪽 눈이 실핏줄이 터져서 레드아이가 되었을 정도로 나는 지금 비정상이다.



   

그래도 오늘 아침부터 수정할 마음이 조금 생겨서 고치기 시작했으니 내일 아침은 올려 보리라.

완결을 짓지 못한 소설을 소설이라 할 수는 없으니.

이 글도 며칠 전에 써 놓았는데, 결말 없이 이 글부터 올린다면 그것이 회피요 비겁이라는 생각에 발행도 못하고 부끄럽기만 했다. 브런치가 내 건강을 해치는 요물인가, 탓을 하고 싶을 정도로 요즘의 나는 브런치강박이 심하다. 공부 안 하는 애들이 시험 공부도 안 하면서 스트레스만 잔뜩 받는 것이랑 뭐가 다른가 말이다. 그래서 오늘은 발행을 꾹. 잠 좀 제대로 자기 위해서라는 핑계를 대는 나를 용서해 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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