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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창한 날들 Dec 02. 2023

칠 남매의 송년회

오메 오메 낙원을 알아부렀는디




1. 접선

아버지는 최근 육 개월 동안 폐와 장에 문제가 있는 건 물론 다리까지 불편해서 데이케어센터 외엔 장거리 여행을 엄두도 내지 못했는데, 요즘 기운을 좀 차리셨다.

"쉬는 동안 여행을 하고 싶은데 전남 무안 고모네 가실래요?"

아버지께 여쭈었더니 얼마나 좋으신지 형제 분들께 차례로 전화를 걸었다.

연락책인 막내 고모가 우리 일정을 조정하여 송년회 형태로 만나자고 하여 가장 춥다는 그저께, 서울에 가서 아버지를 모시고 무안에 내려왔다.

어제저녁 8시, 밤 11시에 두 고모가 도착하여 세 고모(76, 74, 71세)와 아버지, 나 다섯 명이 맥주를 마시며 새벽까지 대화가 이어졌다. 큰고모(89세)는 둘째 고모네 뒷집에 사는데 저녁 8시부터 잠이 온다고 이른 저녁을 잡숫고 귀가하였다.

접선이라는 말이 적합한 까닭은 세 고모들이 다음 날 모든 형제가 모이기 전 의기투합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늘 셋이서 할 말 허고, 내일은 절대로 큰소리 안 나게 허소잉. 코로나 3년을 못 만나다 만나는 것 아니오. 동네에서 *씨네 집안 싸운다고 말 나지 않게잉. 다들 협조하소."


2. 아버지의 역할은

둥근 상에 둘러앉은 세 고모의 수다를 들으며 아버지(83세)는 허허 웃으며 간혹 감초 역할로 멘트 하나씩 뿌리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예전 같으면 아버지도 불 같은 면이 있어서 "없는 사람 이야기 그만들 해."라고 한 마디쯤은 했을 텐데, 그냥 들어주시는 것 같다.

내 어릴 적 기억에 아버지는 당신 가족이 모일 때 따라가보면 유일한 서울살이를 하는, 성공하지 못한, 술을 과하게 좋아하는 형제 역할이었는데.

육 년 전 엄마 장례를 치르며 고모들 포함 모든 친가 쪽 식구들이 우리 부모님에 대해 대단히 호의적이라는 걸 알았다. 다섯 고모들에게 큰아버지(교육계 종사)는 성공하고 존경받는 어른이지만 다가가기 어려웠다면, 우리 아버지는 다정하고 친근하면서도 머리 좋고 정의로운데 운이 닿지 않은 사람이라고 평가되는 분위기였다.


3. 오메, 임병, 냅도브러

어제 고모들은 수십 년의 기억을 오가며 친척들에 대한 고마움, 서운함, 원망을 토로했다. 끝도 없이 이어졌다.

"오메 우리 창창이는 하나도 안 변했다잉. 세상 바쁜 창창이가 워쩐 일이대. 요렇코럼 얼굴을 봬 주고잉."

"저 일 그만 뒀어요."

"그르냐~. 쉴 때도 됐다, 아가."

그녀들이 아가라고 부르는 나는 끼어들 새 없이 혀로 조지는 그녀들의 대화에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었다. 다들 여장부들이고 에너지가 넘치는 분들이었다. 세 분 다 이혼하고 생존에서 살아남은 여자들이다. 정말 멋있다. 어디 나가서 강의를 해도 자신감 넘치게 할 분들이다. 게다가 화통을 삶아 먹은 목소리들이라니.

그러고 보니 우리 친가와 외가 모두 찐 외향형 종족들이 주를 이룬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우리 막내이모도 그렇고 고모들도 문화센터를 한껏 활용하며 이런저런 네트워크 활동을 하고 있었다. 새벽의 게이트볼 강의와 배움까지. 그 와중에 각자 창창이 엄마에 대한 추억 꺼내기.

"느그 엄마가 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잉. 깔깔깔 웃고 유머 넘치고 맛있다고 좋다고 칭찬해 주고 참말로 재미나고 좋은 사람인디."

"그라제."

우리 엄마는 다섯 고모들에게 한결같이 평판이 좋았다. 아마도 서울서 가난하고 바쁘게 살다 보니 전남의 가족 모임에 자주 등장하지 못하여 기대와 평가에서 열외였지 싶다. 덕분에 우리 남매는 아버지 형제 모임에서 늘 좋은 대우를 받아 왔다.



4. 넘치다

이런 수다를 어디서 듣나 하며 입을 헤 벌린 채 그녀들의 일, 사랑, 관계에 관한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그녀들 사이에서도 처음 듣는 비밀들이 툭툭 튀어나오기도 했다. 얘기들이 얼마나 재밌는지, 녹음하고 싶었는데 자연스러운 그 분위기를 그대로 두는 게 낫겠다 싶어서 참았다. 머릿속으로 기억, 기억하자. 언어적 표현, 비언어적 표현, 반언어적 표현 모두를 차곡차곡 나의 뇌와 가슴에 입력하자.

정지아 작가가 아버지 장례식 삼일 동안 장편소설에 쓸 이야기를 들었다는 것은 그녀의 부모가 사회주의자여서만이 아닐 듯하다.

고모들에게는 패배자 감성이 없다. 각자의 이유와 신념으로 살아온 그들에게는 기운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고모들이 내게 건네는 안주와 맥주가 내가 소화하기 어려울 정도로 넘쳤듯이.

"오메 우째 그래 쩍게 먹는디야. 우리덜 장은 쇠도 씹어 삼킨당게."

생전 처음 본 홍어껍데기 요리


5. 비밀

둘째 고모가 이혼하고 아무것도 없이 혼자 사는 큰언니만 믿고 이 동네에 왔는데 예상치 못하게 큰고모와 갈등을 겪었다 해서 안타까웠다. 큰고모는 이 마을에서 칠십 년 넘게 살아왔는데 둘째 고모가 최근 이십 년 동안 활력 넘치고 원만한 관계로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모양이었다. 큰고모의 욕심과 질투가 작용했을 것이라는 게 고모들의 중론이었다.

둘째 고모가 마을 모임에 나가서 저 남자 괜찮다 해서 보면 큰오빠 친구, 호의적인 누구에게 마음을 열까 싶으면 작은오빠 친구, 사람 참 멋있네 하고 보면 막내오빠 친구여서 아무하고도 못 사귀었다는 말을 할 때는 서글펐다. 마치 내 얘기가 될 것 같아서

"고모 그래도 눈 딱 감고 사귀시지요."

하고 말했더니 둘째 고모가 말했다.

"오메 소문 난디야. 시골 동네 무서워야. 그냥 냅도브러."

둘째 고모는 그런 눈치나 평판을 신경 쓰지 않고 살 만큼 강인한 인간인데 말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안산을 떠나야겠다, 시선에서 자유롭게 팜므파탈로 살려면, 하는 다짐을 하는 나.ㅎㅎ


6. 아침에도 이어지는 말, 말

오늘 아침상에서 둘째 고모가 전 남편이 다시 함께 살자고 하더라, 하니

"오메오메. 낙원 맛을 알아부렀는디 어째 간디야! 그 인간은 여전히 어리석네잉."

"글게 말이다잉. 연애나 하면서 살지 노친네 밥 해주며 살까잉."

 고모가 동시에 말하고 껄껄껄 웃었다. 옆에서 동조하며 웃는 나.

"오빠는 언니랑 워낙에 사이가 좋았응께 우덜 서리가 이해가 안 되겄소잉."

어색하게 웃는 아버지. 아버지는 엄마와 50년을 해로했 지금도 당신 마나님을 존경한다고 하는 분이다.

오늘 오후에 두 형제 내외까지 모이면 어떤 이야기가 오갈지, 오감과 육감을 총동원해 관찰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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