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학기에는 안산 우리 학원에서 주말 수업을 하여 용돈벌이를 했고, 이박삼일은 대학원 기숙사 2인실에서 생활했다. 전남 광주 출신의 막 대학에 입학한 룸메이트는 진한 사투리로 내게 자주 대화를 청했다. 기숙사 컴퓨터실에서 만난 간호학과 친구와도 절친이 됐다. 기숙사 식당의 영양사에게 인터뷰도 하고 지인으로 지냈고, 라오스에서 온 친구와는 캠퍼스 밴치에서 커피를 마시며 대화한 경험도 소중하게 남아 있다.
3~4학기에는 원룸에서 혼자만의 생활을 만끽했다. 자타칭 마당발인 내가 타 지역 원룸에서 혼자 지낸다고 하니 가족과 지인들이 걱정을 많이 했다. 하지만 나에 대한 재발견이라 할 정도로 그 시간은 내 인생에서 큰 획을 긋는 소중한 시절이었다. 도서관에서 만난 공부 동무, 순천문예회관(좋은 공연을 정말 많이 해서 한 달에 한두 번씩 관람했다)에서 연극을 관람하다 만난 고등학생 배우 지망생, 청강 수업에서 만난 연출 지망생...
나는 마음을 한껏 열어 다양한 영역의 사람들과 만나는 순간을 즐겼다. 가끔 술이나 차를 마시는 친구로 남은 이들도 있다. 혼자서 버스를 타고 교외로 나가서 만난 산, 강, 바다의 찬란한 빛깔도 가슴에 짙게 남은 추억이다.
여유로운 순천대의 분위기 덕분에 교수님들과의 수업도 하동, 구례, 광양 등으로 차를 타고 다니며 시를 짓고 소설을 이야기했다. 비 오는 날 교수님의 제안에 우산 쓰고 동천길을 걷다가 들어간 카페에서 시 수업을 한 기억도 따스하다.
좋은 것들 투성이어도 여행길에서 내 집으로 돌아오고 싶은 건 당연하듯이 4학기를 마치면 집으로 돌아올 계획이었다.
내가 원룸에서 자유를 느꼈던 것처럼, 남편도 우리 집에서 솔로의 생활을 만끽했던 것 같다. 우리는 낮 시간에 각자 할 일을 하다가 내가 도서관에서 돌아오는 자정 전후에 영상 통화를 하였다. 한 시간에서 두 시간 통화하는 동안 다시 솟은 연애 감정이 신기하고 소중했다.
집에 오는 금요일이면 남편이 광명역에서 기다렸다. 그는 애틋하게 포옹을 하고 내 허리를 감싸며 조수석에 나를 앉혔다. 집 가까이 가서는 함께 마실 술과 안주거리 쇼핑을 하거나 남편이 미리 준비해 놓기도 했다. 그리고는... 그 밤은 따스, 뜨거웠다. 매번은 아니었지만, 자주 그랬다.
2018년 3학기에 나보다 일 년 늦게 원생이 된 언니가 예상하지 못한 말을 했다.
"딸이 대학 3학년부터 그렇게 지랄 맞아지더라. 아마도 졸업이 코앞에 다가오니까 미래가 불안했던가 봐. 당신들도 각오해. 우리는 2년이니까 3학기부터 지랄 맞아질지도 모르니까."
그 말이 우리에겐 적용되지 않기를 얼마나 바랐던가.
여름방학에 학교에 남아 신춘문예에 응모할 소설을 쓰고 논문을 탐독했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으리란 환상에 젖어 있었다. 내게 남은 시간은 단 7개월이었다. 여름방학의 끝자락에 논문을 너무 늦게 준비하기 시작했다는 걸 깨달았을 때는 소설도 지지부진했다. 패배감을 느꼈다.
<사과 따는 풍경>의 예주는 내 모습과 비슷한 캐릭터였다. 남편을 믿으려 하지만 믿기 어려운 상황이 자꾸 생기는 데서 불안이 극에 달한 여자로 설정했다. 어떻게든 가정을 지키려고 참고 또 참는 인물인 예주는 정고은을 향해 라이벌 의식이 있으면서도 자신감이 결여된 여자다.
성훈은 남편과 지인들의 남편 모습 중 부정적인 성격을 섞은 캐릭터였다. 그가 행동하는 이유가 논리적으로 설득되는 부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나 좀 더 나쁜 사람으로 표현되었다. 남자들의 일정한 모습 예컨대 노래방 도우미 등과 노는 모습을 사회생활의 일부라며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태도 따위에 무의식적으로 저항이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때의 결말은 성훈이 정신 좀 차리고 스위트한 남성으로 바뀐 덕에 '세 식구가 행복하게 살았다.'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렇게 쓰고 싶지 않았다. 뾰족한 수가 생각나지 않아 며칠을 끙끙거렸는데 그 가족, 그 부부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해답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었을 테다.
그래서 최소한의 바람을 곰곰 생각해 보았다. 우선은 예주에게 자유를 주고 싶었다. 성훈과 묶여서는 예주의 심신이 도저히 건강하게 지낼 수 없을 테니까. 그리하여 마지막 장면을 예주가 이혼한 뒤 민재와 둘이 사는 장면으로 쓰게 되었다.
내가 처한 현실에서는 남편의 이혼 결정을 따랐으나, 소설에서는 예주가 주체적으로 결정하도록 만들었다.
2018년 여름, 나는 그와 헤어질까 봐 전전긍긍했기 때문에 예주네 가족이 알콩달콩 잘 살았다는 이야기로 맺었다. 두려움이 소설 한 편을 쓰게 만든 셈이었다. 그런데 교수님은 합평 시간에 "이것은 환상 소설 혹은 동화다."라고 말씀하셨다. 물론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가족이 유지되는 것만이, 남편의 품에서 안온하게 존재하는 것만이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한 것이 그때의 내 수준이었고 정서였다. 이제는 다른 길도 있음을 알며, 상상치 못한 세계를 맛보게 되었으니 성장이라고 해도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