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겹살

첫 번째 이야기

by 창창한 날들

사진 출처 pixabay




어린 시절 나는 고기라면 질색하고 도망 다녔다. 네 발 달린 짐승의 고기, 국물에 빠진 고기들은 식감과 냄새가 기분 나쁜 자극을 주었다. 남들은 모르겠다는 누린내가 내 코에만 선명하게 들이닥쳤다. 명절과 어른들의 생신, 우리 남매들 생일에 빠지지 않고 상에 오르는 고기들 때문에 난감해서 도망치고 싶었다.

대학에 들어가니 학과나 동아리 선배들이 모임 뒤에 뒤풀이를 하자면서 돈 없으면 소주에 노가리, 돈 있으면 맥주에 삼겹살을 사 주었다. 나는 선배들이 돈 없기만 바라야 했다. 특히 선배들이 최고로 삼은 안주인 삼겹살 특유의 냄새는 구역질이 나올 정도였다. 사회에 나와서도 반가운 선후배나 동창, 지인들과 만나기로 한 장소가 고깃집이면 약속을 취소하고 싶을 정도였지만, 반드시 참석해야 한다면 사이드 음식이 잘 나오길 바랐다.

고기를 싫어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할아버지로부터 비롯되었을 거라 짐작한다. 할아버지는 나와 형제들에게 고기를 먹이려고 무던히도 애썼다. 고기를 먹어야 건강하게 클 수 있다는 절대적인 믿음을 갖고 있는 분이었다. 지금이야 육식을 기피하거나 거부하는 사람도 많지만 그 시절엔 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은 부유함이 전제되는 일이었다. 또한 종갓집에 다니러 오는 먼 친척 또래들에겐 특혜로 보이는 부러움의 상징이었다.

할아버지가 주는 고기를 다른 남매들은 잘도 받아먹는데 셋째인 나는 입을 꼭 다물고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며 뒤로 빼기 일쑤였다. 종부인 엄마는 바쁜 상차림을 얼추 마치고 내 곁으로 와 내 입에 고기가 들어가는지 확인했다. 어느 때는 입을 앙 다문 채 새침을 부리는 내 엉덩이를 꼬집기도 했다.

"아야, 엄마는 왜 꼬집고 그래?"

"야가 언제 꼬집었다고 그래. 밥풀 묻어서 떼어 주느라 그런 거지."

엄마는 만능영양식인 고기를 받아먹지 못한 내 뱃고래를 두고두고 안쓰러워했다. 김치찌개에 들어간 돼지비계를 한 점이라도 먹이려고 했다. 그러면 다른 남매들은 눈에 불을 켜고 시샘하며 제비 주둥이처럼 입을 벌리고 엄마가 고기 한 점을 넣어주는 내 주변으로 다가들었다. 엄마는 고기를 잘게 찢어 나눠주면서 내 숟가락에 좀 더 큰걸 얹어주려고 했다. 엄마의 그런 행동이 나를 못 살게 굴기 위한 거라고만 생각한 나는 고깃내가 나는 날이면 산으로 들로 줄행랑을 쳤다.


친할아버지는 군산 명문가의 5대 독자였다. 한때 만석꾼이었다던 친가의 부(富)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이후로 쪼그라들었고 내 아버지 대에선 달랑 기와집 한 채 남은 게 전부였다. 그마저도 아버지가 가산을 단속하지 못하여 지금은 사랑채와 별채만 남고 모두 남의 땅이 되었고, 그 자리에 모텔과 편의점이 생겼다. 친정에 가면 모텔의 네온사인 불빛을 보며 종이호랑이 아버지가 혀를 차는 소리를 듣곤 한다.

할아버지 돌아가시기 얼마 전 삼십 대의 젊은 엄마는 별채를 개조하기로 했다. 점점 기울어지는 가세를 일으키기 위하여 종부로서의 음식 솜씨를 발휘하기로 결심한 것이었다. 일명 '종부네 한상'. 삼계탕과 구첩반상이 주 메뉴였다. 주말마다 집에 가면 엄마는 먹을 반찬들을 꼼꼼하게 챙겨 싸주었다. 고기반찬은 두 언니나 집에 찾아오는 언니의 친구들이 먹었고 나는 나물이나 멸치볶음 따위의 밑반찬들로 양식을 삼았다. 초등학교 시절과 중학교에 전주로 유학 간 고등학교, 대학교 시절까지 엄마의 삼계탕이나 고기반찬을 먹은 적이 없었다.

종부네 한상을 운영한 엄마는 우리 네 남매를 대학까지 보내고 막내 남동생을 해외 유학까지 보냈을 뿐 아니라 가솔 네댓 명을 먹여 살리고 동네 아낙들의 일자리까지 책임지며 얼마 전까지도 명맥을 이어왔다.


대학 졸업하던 해에 서울의 출판사에 취업하였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던 친구의 방에 보증금 일부를 부담해 함께 생활하게 되었다.

친구는 고기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아이였다. 돈이 풍족하지 않아 자주 먹을 수 없었던 친구는 직장에서 회식하는 날이 고기를 양껏 먹을 수 있는 날이라며 회식빠순이가 되었다. 밥 먹듯이 회식을 하고 들어오는 친구에게 화가 최고조로 올라간 어느 겨울날이었다. 온몸에 누린내와 담배 내, 각종 안주 냄새를 갑옷처럼 두르고 집안으로 기어 들어온 친구가 1.5룸의 부엌 겸 거실에 먹은 걸 다 게워내고 말았다. 정신을 못 차리는 친구를 씻겨서 누인 뒤 시큼한 냄새가 코를 찌르는 토사물을 닦아냈다. 그래도 방바닥에 냄새가 밴 것 같았다. 출근하려면 자야 했는데 냄새가 얼마나 역했는지 잠이 오지 않았다. 집을 빠져나와 정처 없이 걸었다.

그러다 성이 언니가 떠올랐다. 언니는 나를 유독 예뻐해 주는 직장 선배였고 언제든 재워주겠단 말을 여러 번 하며 자기 집에 초대한 바 있었다. 늦은 밤이라 용기가 나지 않았는데 살을 에는 추위가 극에 달했을 때 언니에게 전화했다.

"물론이지. 조심해서 와."

택시가 변두리의 한 동짜리 소형아파트 앞에 섰다. 태우고 돌아갈 손님도 없겠다고 투덜거리는 택시 기사에게 미안해서 거스름돈을 받지 않고 내렸다. 생명을 다한 듯한 가로등 불빛이 연신 깜빡거렸다.

방, 거실, 부엌으로 이루어진 작지만 작지 않은 공간은 오롯이 언니만의 향기가 느껴지는 소박한 곳이었다. 언니가 내어준 차를 마시자 뒷목부터 뜨듯해지고 잠이 스르르 왔다. 언니가 내어 준 안방의 잠자리는 푹신하고 아늑했다.

창 안으로 들어오는 햇살에 눈이 부셔 잠에서 깼다. 눈 덮인 들판과 먼 데 흰 산이 보였다. 내 고향 마을을 떠올리게 하는 풍광에 입을 벌린 채 감동하고 있을 때 언니가 밥을 먹으라고 했다.

곤드레밥에 된장찌개, 두 가지 나물반찬, 돼지감자조림, 더덕장아찌로 차려진 상차림이었다. 아침은 시리얼이나 우유나 빵으로 떼우던 나는 놀라 입이 벌어졌다. 언니가 해사하게 웃으며 말했다.

"고향에서 가져온 반찬들 잔뜩 꺼내서 뜨듯하게 먹으면 며칠 동안 약발이 통해. 입맛에 맞을지 모르겠지만 먹어 봐."

곤드레나물과 밥이 적절하게 섞인 한 숟갈을 입에 넣고 씹으니 고소했다. 적당하게 졸여진 돼지감자조림과 매콤한 더덕장아찌의 식감이 풍미를 더할 즈음 언니가 숭늉까지 주었다. 입맛을 개운하게 씻어주는 숭늉까지 마시고 나자 지난밤 뼛속까지 스며들었던 바람이 싹 빠져나간 것 같았다.

고향을 떠나온 날부터 엄마 아닌 사람이 차려주는 밥상은 무조건 사랑이고 구원이었는데 언니가 그런 밥상을 차려준 것이었다. 언니네 가서 밥을 먹는 날이 잦아졌다. 언니는 뭐든지 잘 먹는 내게 밥을 차려줄 맛이 난다고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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