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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창한 날들 Jan 23. 2022

홀로서기, 방점을 찍다

할 줄 아는 게 없었던, 책임지려 하지 않았던 내가





신앙도 없는 내가 나를 위함이 아닌 누군가를 위해 그렇게 간절하게 기도한 건 처음이었던 것 같다.

구월 말부터 일월까지 아침저녁으로, 거의 모든 순간 '기도'했다.

그분의 무사와 건강, 그분 가족의 평안과 행복을.




구월 말의 일이다.

지난 며칠 동안 조수석 뒤의 차 문이 열리지 않기도 하고, 철컥철컥 소리가 나기도 했다. 카센터에 들러 의뢰하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차가 멀쩡했다.

우선 귀가했고, 며칠 동안 운전할 일이 없어 잊고 있었다.

그날 마침 차를 가지고 나갔을 때 소리 현상이 또 생겼다. 이번엔 양쪽에서 번갈아가며 철컥철컥...

시동을 걸고 나서 20~30km 속도로 달릴 때 주로 들렸다. 액셀을 밟아 시속 30km가 넘으면 안 들리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귀에 몹시 거슬리는 소리였다.


아들의 오피스텔에 들러 무얼 건네주고 나와 시동을 걸었는데, 또!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카톡 알림 소리가 연속해 울렸다. 학부모들이었다. 철컥 소리에 얹어 밴드, 문자 메시지, 전화벨까지, 소리들이 차 안을 꽉 채웠다. 신경이 곤두섰다.

친구와 고되게 걸었는지, 종아리 발목 뻐근하게 아팠다. 발목 돌려 아픈 데를 풀면서  소리 나는 뒤를 힐끔거리면서, 아까 액셀을 밟으니까 안 그러던데 중얼거리며, 1단지 쪽 게이트에서 차가 오나 오른쪽을 본 뒤 다시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액셀을 밟았다. 쿵 소리를 듣고 무심결에 브레이크를 밟았다. 전면 유리창에서 어떤 물체가 하늘로 솟아오르더니 보닛에 다시 쿵, 부딪치고 사라졌다. 내 눈을 의심했다. 아무것도 못 봤는데 도대체 어디서 나타난 걸까? 그때까지도 그 물체가 사람인 줄 몰랐다. 차에서 내려 앞으로 뛰어가니 앞바퀴의 1.5m 거리에 여자분이 쓰러져 있었다. 휴대폰을 가져올 생각도 못하고 다급하게 소리를 질렀다.

"구급차 불러 주세요! 신고해 주세요!"

게이트 옆 경비실에서 관계자들이 뛰어나오고 행인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쓰러진 분은 일어나지 못했다. 신음하는 그녀를 토닥이며 죄송하다고 죄송하다고, 눈물이 쏟아졌다. 좌회전하며 게이트 아래 횡단보도를 지나가던 그녀가 차의 사각지대에 있었던 것 같았다.

50대 후반 정도 돼 보이는 그분은 잠꼬대하듯 중얼거렸다.

"들어가서 수업해야 하는데... 3시에 수업해야 하는데. 아 어쩌다 그러셨어요."

그분은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을 하는, 나와 비슷한 처지였다.  상황에서 그분은 화를 내지 않고 신음만 했다.

"네, 죄송해요. 제가 잘못했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아, 어떡해요."

"잠깐 산하고 일하러 들어가는 길이었는데, 들어가는 길이었는데..."

"죄송합니다. 너무 죄송합니다."

나는 쉴 새 없이 눈물을 흘리며 자세를 바로 잡고 싶다는 그분을 어떻게 해 보려 했는데, 주변에서 구경하는 사람들이 건드리면 안 된다고 경고를 했다.

구급차가 왜 이렇게 안 오는지 발을 구르며 빗물에 젖은 도로에 나 때문에 다친 그분에게 담요를 꺼내 덮어주었다.

경찰먼저 도착해피해자의 몸 어디든 건드리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다. 더 크게 다칠 수 있다고 했다.

그분은 허리가 아프다고 어떻게 좀 해 달라고 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구급차가 왔다.

경찰이 그분께 보호자에게 연락할 수 있냐고 물었다. 그분은 여동생에게 전화했다.

경찰은 그분이 통화하는 걸 보니 뇌는 안 다친 것 같다고 내게 작게 말했다. 경찰도 응급대원도 중상은 아니니 안심하라고 오히려 나를 안심시키며 위로했다.

그분은 팔이 좀 까진 것 말고 전신이 멀쩡해 보였으나 허리를 움직이지 못하겠다고 했다. 나는 돌이킬 수 없는 이 상황이 너무 미안하고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구급차에 동승하려고 하니 구급대원은 코로나 때문에 동행도 면회도 안된다고 했다. 그분께 동의를 구해 연락처를 저장했다. 그분은 얼마나 기가 막힐까.

  



경찰이 경찰서에 방문해 조서를 쓰라는 연락이 갈 테니 집에 가 기다리라고 했다. 한 경찰이 지하주차장까지 내 차로 운전해 주고 돌아갔다.

후들거리는 다리로 울며 우리 동 앞 벽에 기대 있다가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수업이 30분쯤 남았다. 학부모들에게 연락해야 한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벽을 향한 채 서 있는데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사람들이 사고 이야기를 수군댔다. 갑자기 두려움이 밀려왔다. 학부모들 사이에 소문나면 어떡하지. 1년 동안 쌓은 신뢰가 무너질 텐데. 동시에 내게 욕이 나왔다. 야 이 미친년아 이런 와중에 네 평판을 걱정하니? 너는 망해도 싸. 누굴 그렇게 다치게 하고 너는 무사하길 바라니.  

평소에 25층까지 빠르게 올라가던 엘리베이이터가 너무 느리게 느껴졌다. 동승한 이들은 내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전광판에 47층, 49층이 찍혀 있었다.  

보험회사에서 보험금을 바로 주지 않을 텐데 병원비는 어떻게 되는 거지. 친구에게 갚으려고 모으고 있던 돈을 떠올렸다. 시월에 1차로 갚기로 한 날이 다가오는데... 그걸 써야 하겠구나.

추석 이후 신입생 문의가 전혀 없던 때여서 한층 더 불안했다. 신입생 유치를 좀 더 적극적으로 해 놓지 못하고 미루던 게으름이 후회됐다. 운전하며 멀티라고 자부하던 평소 습관을 왜 못 고칠까, 그런 내가 한심했다.

오전에 운동하고 어딜 들르고 사람을 만나며 분주하게 시간을 채우는 걸 선택하는 내가 싫었다. 사람 만나는 데 미친년, 사람 없으면 못 견디는 내가 원망스러웠다.

피해자 분 내일 일어나면 더 아플 텐데. 중상이면 어떡하지. 그분의 일상은 어떻게 되는 거지. 그분 가족은 어떡하지. 이 일을 어떻게 수습해야 하지. 이 상황을 잘 극복할 수 있을까.




운전해 온 20년 동안 인사사고를 낸 건 처음이었다. 기억하는 가장 큰 사고라면 이중 주차한 외제차의 범퍼를 긁게 한 일이었다. 그때 바들바들 떨며 남편에게 전화했다. 남편은 리스 차량이라 그쪽에서 다 해결할 거니까 걱정 마, 하고 말했다. 서행 중이던 앞 차가 주춤했을 때 박은 일이 있었을 때 그 운전자에게 피해보상에 관한 일을 전화해 준 이도 남편이었다. 내게 곤란한 상황이 생기면 언제든 나서 주던 사람이었다. 그 사람은 자기 일이건, 내 일이건 책임지지 않으려고 뒤로 뺀 적이 없었다.  

이럴 때 그이라도 함께 있었으면... 순리대로 해결할 방법을 함께 찾아줄 텐데... 정황을 듣고 잘못한 건 잘못한 것이고, 당신은 이것만 생각해, 하고 나를 안심시켜 줄 텐데... 피해자 분께도 어떻게 대할지 슬기로운 방법을 말해 줄 텐데...  

혼자 지낸 지 일 년, 그럭저럭 지낼 만한 지 얼마 됐다고, 혼자라서 불안하고 두려운 일이 생긴 것이다. 어린애가 된 것만 같았다.

집에 들어와 어디에 물어서 상황 대처를 해야 하나, 남편이 생각났지만 연락할 수 없었다. 울면서 1교시 학부모들에게 수업을 못한다고 연락했다. 경찰이 언제 부를지도 몰랐기 때문에 우선은 시간을 두고 기다리기로 했다. 울음이 쉴 새 없이 흘렀다.

더 울다가 진정을 하고 친정 오빠에게 전화했다.

"오빠, 오빠한테 이런 이야기 하고 싶지 않았는데, 미안해."

다시 눈물이 나왔다. 위급 상황이 생겼을 때 연락할 상대가 남편이 아닌 오빠가 되는 날이 오리라고는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오빠도 고달픈 사람인데, 내가 어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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