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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창한 날들 Feb 13. 2022

전 연인에게서 받은 금목걸이

버림에 대하여



끝방 팬트리는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로 차 있다. 공부방 수업을 하는 곳이라 자잘한 물건을 둘 데가 부족하여 그 공간이 필요한데도 비우지 못한 채 1년 반을 보냈다. 한 번도 사용하지 않는 것들 투성이로 말이다.

이사 오기 전 남편은 모두 버리라고 당부했다. 트럭으로 1톤쯤은 버렸다. 그러나 차마 버릴 수 없는 것들은 죄다 끌고 왔다. 통기타와 클래식 기타, 테니스 라켓 세트, 남편이 사용하던 소도구함, 레이저 프린터 들이다. 대부분 남편의 손때가 묻었던 것들이다.

지금으로선 요원해졌지만 이사 올 때만 해도 2년 뒤쯤 우리 둘이 다시 합칠 것이라 기대했다. 남편 말로는 망가져서 쓸 수 없다고 한 것들까지 포함해서, 고쳐서 쓰면 되지 했다.

하지만 1년이 넘도록 그것들을 사용할 일도 없었고, 고쳐놓지도 않았다. 문 앞턱에 청소기를 넣었다 뺐다 하는 자리만 간신히 확보했다.


지난주에 폐가전 수거 센터에 몇 가지 물건을 접수했다. 남편이 구입했고 주로 관리하던 로봇 청소기, 생전에 엄마가 바쁜 딸을 위해 구입해 준 저온 냄비, 이사 후 사용하지 못하게 된 신형 공유기, 이사 직전까지 분명히 사용했던 레이저 프린터까지. 무엇보다 자리 차지를 크게 하는 프린터가 가장 애물이었다. 

이제는 그것들이 내 공간의 주인 노릇을 하도록 두지 말자.

'비싸디 비싼 몇 평의 공간을 쓰지도 않는 물건으로 채워둘 겁니까?' 

며칠 전 오랜만에 본 미니멀리스트 유튜버의 말에 각성이  덕분이다.




멜로드라마를 보면 헤어진 연인에게서 받은 반지를 강물에 던져 버리는 장면이 종종 나온다. 반백 살이 되도록 연인과 이별해 본 적이 없던 나는 금붙이를 버릴 정도의 저 마음이 무얼까 와닿지 않았다. 드라마답게 극적으로 만들기 위한 요소일 거야, 저 아까운 걸 왜 버려, 팔아서 써야지, 하는 생각만 했다. 내가 저 입장이 되면 버리고 싶어 지려나. 나의 연애 상상력은 10대나 20대에 첫사랑과 헤어져 아파하는 그만큼 뿐이었나 보다.


헤어져 1년 6개월이 다 돼 가는 지금, X로부터 받았거나 함께 산 금붙이를 버리지 않은 건 물론 처분해 없애지도 않았다. 우선 물욕 때문이고, 그와의 좋았던 시간을 없었던 것처럼 만들고 싶지 않아서다.

그건 5년 전 고인이 된 엄마의 옷을 가져와 입는 것과 비슷하다. 엄마가 너무 그립다거나 엄마의 옷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는 아니다. 엄마의 유품이 세상에 남아 있는 게, 엄마의 옷이 내 살에 닿아 있는 게 좋아서다.

나는 엄마에게 곰살맞 딸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갑작스러운 발병 후 두 달 만에 유언도 남기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엄마를 생각하면 안타까운 마음에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그런 엄마의 흔적을 아주 없애고 싶지 않다. 안정감이랄까. 언젠가는 그 안정감도 그다지 중요치 않아져서 버리겠다는 마음을 먹는 날이 오겠지.




무얼 잘 버리지 못하는 나는 특히 가깝게 지내던 사람과 헤어지는 걸 못 견뎌했다. X가 그런 나를 많이 안타까워했다. 그리움에 눈물 흘리는 내 모습을 보기 힘들다며. 그런 사람이었으니 자기가 떠난 뒤 내가 어떤 마음으로 살 거라는 짐작쯤은 어렵지 않게 할 터이다.


그럼에도 때는 오리라. 아무리 노력해도 지금은 안 되지만 버릴 수 있는 때가, 버려지는 때가 오리라.

이쪽에서 저쪽으로 넘어가려면 시간이, 다짐이, 감정의 쌓임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차곡차곡 쌓인 모래시계의 모래가 와르르 무너지려면 우선 쌓여야 하듯이.


버리기로 작정하기 어려운 것이 집안 도처에 여전히 남아 있다. 안방 팬트리 입구에 세워져 있는 카펫이 그렇고, 거실 팬트리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올려둔 그와 나눈 편지 묶음과 앨범들이 그렇다. 그것들이 내 마음에서 떠나는 날이 결혼 생활 30년을 제대로 정리하는 날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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