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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창한 날들 Mar 08. 2022

홀로서기, 방점을 찍다 - 마지막

교통사고 가해자의 일기




작년 9월 29일에 우리 아파트 2번 게이트 아래에서 사람을 다치게 했다.

100일 글쓰기에서는 2월에 이 연재를 마감했는데, 브런치에는 왜 그런지 올리기를 미루고 있었다.

오늘 마무리하고 봄을 맞이하자는 마음으로 월요일 아침부터 글을 쓴다.




사고 후 한 달 반 동안 미친 듯이 걸었다.

집안에 있으면 온갖 나쁜 생각이 괴롭혔다.

그분이 허리를 못 쓰면 어떡하나, 다른 곳에 후유증이 생기면 어떡하나, 수능 보는 자녀가 입시를 망치면 어떡하나, 내가 생각지도 못한 다른 일이 생기면 어떡하나...

뒷산으로, 공원으로 하루에 만 보, 이만 보씩 걸었다.

걸으면서 '좀머 씨 이야기'의 좀머를 떠올렸다.

집을 안락한 공간으로 느낄 수 없었던 그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그러면서도 뒷산을 오르내리며 피해자와 비슷한 체구의 여자들이 스쳐 지나가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분의 일상을 망가뜨린 장본인이라는 게 일깨워져서 얼굴을 들지 못했다. 빠르게 그 자리를 벗어나려다 다리를 헛디디기도 했다.


11월 중순, 보험담당자로부터 피해자가 퇴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틀이 지난 때였다.

늦가을의 청명한 오전, 강변을 따라 걷다가 햇빛에 반짝이는 물살을 보자 더 괴로워졌다.

이 햇빛, 이 강물, 이 바람을 느끼지 못할 그분이 생각났다.  

용기 내어 그분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분은 허리가 아프지만 다행히 움직일 만해서 조금 이른 퇴원을 했단다.

인생의 큰 일을 앞둔 자녀가 받았을 충격과 아픔이 너무 미안해서 묻기도 겁났지만, 수능 본 자녀의 합격 여부를 여쭈었다.

"엄마가 큰 일을 겪어 힘들었을 텐데, 다행히 여러 군데 합격했어요. 보험담당자한테 우리 아이까지 걱정해 주더라는 말을 들었어요. 걱정해 준 덕분이에요. 고마워요."

'걱정해 준 덕분에'라는 말을 들으니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내가 말을 잇지 못하자 전화기 너머에서 그분이 작게 한숨을 쉬는 소리가 들렸다.

"주위 사람들에게 사고 과정을 얘기하니 가해자가 신경을 많이 써 준 경우라고 하더라고요. 남편도 불행 중 다행이라고 했어요."  

그분은 내가 보낸 문자와 걱정하는 말을 전해 듣고 억울하고 화난 감정 많이 풀렸다고 했다.  

병원비를 아직 받지 못했고 그 사이 담당자가 세 번이나 바뀌어 한 말 또 하고 한 말 또 하느라 힘들었노라 했다.

"이제 그만 신경 쓰고 일에 집중하세요. 교통사고는 언제 어디서나 일어나고, 그게 하필 저일까 해서 받아들이기 어려웠지만, 어차피 일어난 일이니 이만하길 다행이라고 감사하고 있어요."

사고 당일에도 그분의 언행에서 알고 지내면 좋은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는데, 전화로 들리는 그분의 따뜻한 목소리를 들으니 자꾸 눈물이 나왔다.

계산적이고 이해타산적으로만 살아온 내가, 그 분과 가족의 안위만 생각하자고 날마다 기도했다.

내가 감당해야 할 경제적 피해가 걱정되기도 했고, 불안과 자책감으로 잠 못 드는 날도 많았지만 피해 당한 쪽의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거절하는 그 분을 설득해 내 나름의 위로금을 송금했다.

내 마음 조금 편하자는 얄팍한 의도지만, 회사에만 맡기고 나는 숨은 채 마음 졸이는 것보다 나을 것 같았다.


교통사고는 133일째 되는 날인 올해 2월 8일, 벌금 2백만 원을 내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벌금은 회사가 내주었다.

사람을 다치게 한 벌금으로는 큰 액수가 아니지만, 보험 관계자 말로는 피해자에게 주는 치료비, 생활비 등과 벌금을 포함해 보험회사가 쓰는 비용이 총 2천만 원 정도 들었다고 한다.




몇 달 걸린 사고 처리 과정에서 나는 비로소 혼자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무슨 일에서든 절친이던 남편이 도와주던 걸 당연하게 여겼던 결혼 생활이 끝났으니 내가 모든 일을 처리해야 하는 것은 필연인데, 그게 쉬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였다.
사고 당일에도 남편에게 전화해 내가 불안하고 무얼 어찌할지 모르겠다는 핑계로 도움을 받으려고 했다.

그 바람에 아들과 말다툼을 하게 되기도 했고.

내가 어린애처럼 굴었다는 걸 깨달았다. 아, 나 혼자 해결해야 하는구나 하고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해내야 한다는 걸 받아들이게 된 경험이었다.

학원 운영, 시댁 일, 심지어 내 친구관계조차 어려운 일이 생기면 남편에게 의지했다.

늘 그의 조언을 구했고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는 분풀이로 화를 내고,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그에게 서운해했다.

이번 사고 처리 과정에서도 함께 살았다면 그를 탓할 순간이 많았을 것 같다.

이젠 그런 상황이 아니니 얼마나 다행인지.

이제야 내가 마땅히 감당하고 책임지는 연습을 한 선물 같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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