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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창한 날들 Sep 16. 2021

너, 어디까지 하나 보자

이혼일기4-브런치 작가 응모작 3번째




본업에 최선을 다하는 게 바람직한 삶이라 믿어왔다. 취미는 뒷전이었다.

다만, 본업에 충실하기 위한 재충전이 될 것 같으면 그 취미는 허용해도 된다고 여겼다.

그렇다 보니 ‘재미있는 취미'보다는 돈 버는 일로 이어지는 '실용적인 배움'을 우선하였다.  


어느 날 심신이 방전되고 원인을 알 수 없는 바닥 상태가 돼 버렸다.

이유 없이 무기력해졌다.

살아야 할 이유를 노트에 필사적으로 적지 않으면 하루하루 버틸 수 없는 지경이 돼 버렸다.

이미 너무 많이 와 버린 길이라 되돌아갈 수도 없으니 무조건 직진, 결혼 생활과 본업역꾸역 유지다.

그런 상태를 감지하지 못한 채, 짜증을 내고 주변 사람을 탓하며 일상에 감사하는 마음이라곤 눈곱만큼도 없었다.


 



오롯이 혼자가 되자 그제서야  삶의 방향키를 제대로 보기 시작했다.

누구 때문에 하고, 누구 때문에 못하는 일은 이제 있을 수 없으므로.

모든 일은 나의 필요로부터 나오는 것이므로.

처음으로 내 삶에 대한 책임감을 느꼈다.  

가사 노동에 써야 할 시간이 전보다 줄었으므로 자기 계발하는 일에 공들일 수 있었다.

덕분에 원없이 하고픈 일들을 벌이고 있다.


2021년 상반기에 새로 시작한 일을 열거하자면,

책읽고 리뷰 쓰기, 100일 동안 매일쓰기, 매주 수요일 인문학 스터디,
그림책 만들기 3개월 과정(화, 목 오전 온라인 수업), 낭독 연극 매주 목요일.
 매주 한 번 드럼 배우기.
매일 아침 감사기도, 스트레칭, 유튜브로 따라하는 에어로빅, 자전거 타기,
일주일에 세 번 이상 만보 걷기.
자기 전 명상, 스트레칭 등 자투리 시간을 활용한 좋은 습관 만들기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도 있고, 단 2주가 목표였던 도전도 있고, 중도 포기한 것도 있다.

애착이 생기지 않고 즐겁게 할 수 없으면 과감하게 접자, 누구의 눈치도 보지 말자.

 



가장 빠르게 포기한 것은 드럼이었다.

언젠가 드럼을 배우리라 마음 먹었고, 드디어 매주 한 번씩 레슨을 받기 시작했는데 배우러 가는 날이 설레거나 기다려지지 않았다. 이를테면 배우고 온 첫날 꿈을 꾼다든가 하며 나를 흔들어 놓을 줄 알았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새로운 것을 배우게 되면 몸과 마음에 확실한 균열 혹은 지진을 일으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드럼은 나를 뒤흔들지 못했다.

레슨 시간을 지키는 게 과제가 되면, 취미 생활은 취미가 아니라 일이 돼 버리고 만다.

그래서 최대한 빠르게 그만두었다. (드럼 샘이 젊고 이쁘고 착하고 잘 가르쳤는데...)




그에 반해 100일 쓰기 도전은 상상도 못한 성취감으로 이어졌다.

매일 저녁 퇴근 후에 글쓰는 시간이 루틴이 되면서 의미 없이 시간을 흘려보내지 않게 되었다.

일정한 분량의 공적인 글쓰기를 해내는 자신에 대한 성취감과 자존감이 느껴졌다.(실로 오랜만의)

게다가 하루의 끄트머리 시간에 글을 쓰기 위해 낮 시간의 본업에 더욱 충실하게 임하는 나를 발견했다.


초반에 내가 쓰고자 한 목표가 어린 시절 기록, 혼자 지내는 일상 기록, 책과 영화 리뷰 등이었는데,

그 중 과거와 현재에 관한 기록은 나를 채워온 빛깔들을 규명해 내고,

내가 진정 바라는 삶이 무엇인지 정리하도록 도와준다는 면에서 힐링도 되었다.

지인들은 내가 외로움 때문에 정신없을 만큼 위의 도전에 메는 게 아닌가, 물었다.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오히려 남편과 함께 24시간을 지낼 때에는 자동차 한 대로 동선을 따로 하기 힘들 때가 많았고,

그 사람이 성실한 만큼 나 역시 본업에 충실한 척하느라 눈치를 많이 봤다.

혼자 된 지금 원없이 하고픈 일들에 뛰어드는 것이다.

이십대의 나처럼.

그래. 너, 어디까지 하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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