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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창한 날들 Dec 07. 2021

탈출하려면 어디로 가야 할까?(첫 번째 이야기)

글쓰기 좋은 질문 642 중 479번


2021년 1월부터 격주로 두 시간 동안 온라인 글쓰기를 한다.
ZOOM으로 여섯 명이 모여서 한 시간은 글을 쓰고, 한 시간은 자기 글을 읽은 뒤 소감을 나눈다.
글의 구성에 대한 이야기, 좋은 표현뿐만 아니라 때로는 글 바깥의 이야기도 나눈다.
이번 글쓰기 질문은 '탈출하려면 어디로 가야 할까?'였다.
내가 탈출하고 싶었던 때를 떠올리고 구상하다가, 진정한 탈출 의지는 전 남편이 가졌던 것 아닌가 해서 그의 관점으로 아래 글을 쓰게 됐다.


탈출하려면 어디로 가야 할까?

  

c : 아내

b : 전 직장에서 만난 후배(남)

 

작년 초부터 나는 c와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은 기분으로 지내왔다.

우리는 집과 학원에서 24시간 부딪다.

2월에 가정법원에서 최종 이혼 날짜를 연기했기 때문(덕분?)에 그 사이에 이혼 얘기 없이 잘 살아보자고 했지만, 반년만에 견딜 수 없다는 지경이 되었다.


c와 내가 공동 운영하던 학원에 투자하기로 한 선배가 있었다. 내 대학 선배였는데 자금줄이 달린다면서 계약을 무시하고 빠져나간 뒤 c는 극도로 예민해졌다.

그 선배 믿고 확장 이전을 한 건데, 고스란히 우리 빚으로 쌓였다.

몇 달 뒤 코로나가 터졌고 연이은 휴원 사태로 학원 운영이 어려워졌다. c의 친구 두 명으로부터 수 천만 원의 도움을 받았다.

친구 중 한 명은 차용증서에 우리가 이혼할 경우 즉시 돈을 반환하라는 서약까지 하게 했다.

정말이지 여자들의 우정에 질리고 말았다.

내가 손을 벌릴 수 있는 사람은 없으니 할 말이 없었다.


안 그래도 꼼꼼하고 검소한 c는 운영 비용을 일일이 따지며 내가 학원을 말아먹기라도 할 것처럼 불안해했다.

c가 돈 씀씀이를 일일이 간섭하니 말끝마다 싸움이 됐다.

학원 선생들의 편의를 봐주는 것도 말렸고, 지인들 만나서 돈을 더 쓸까 봐 전전긍긍했다.

나를 흥청망청하는 사람처럼 대했다.

나는 평소에 가 조금 더 손해 보는 쪽을 선택해 온 사람이다. 그러면 주변 사람들이 나를 더 믿고 의지하며 충심으로 대하게 되리란 걸 c가 좀 이해해 주면 좋겠는데...




c와 우리 사이가 더 벌어진 것은 태블릿 pc와 게임 때문이었다.

태블릿은 우리의 기호를 완전히 갈라지게 만들었다. 서로의 관심사는 완전히 다른 길로 뻗었다.

유튜브를 보더라도 나는 웃긴 영상, 미래학, 스포츠에 관심이 많았고, c는 로맨스 드라마와 오디션 예능을 즐겨 봤다. c는 내 취향에 별 관심이 없었다. 내가 권하면 피했다.

게다가 게임을 하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작년부터 '문명'이라는 시뮬레이션 게임을 시작한 뒤 c의 눈초리는 더 사나워졌다.  

시간에서 여섯 시간이 걸리는 문명을 한번 손에 잡으면 엄마한테 혼나듯 그 따가운 시선을 감수해야 했다.

집에서 밤을 새우고 하는 게 점점 힘들어졌다.


c문명을 내게 소개한 b를 원망하기도 했다.

b와 나는 한때 한 학원에서 동료로 일했으나 그렇게 가깝지는 않은 사이였다.

내가 그 학원을 그만둔 뒤에 원장과 다른 선생을 포함하여 서넛이 가끔 만나 술 마시며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나누는 정도였다.

b와 둘이 속  깊게 이야기를 나눈 적은 없었는데, 어느 날 b가 게임에 관심이 많은 걸 알게 됐다.

b는 단순하고 말수가 적은 사람이다. 속 깊은 얘기는 잘하지 않았는데 그게 때로 편했다. 나도 그를 딱 그만큼으로만 대하면 되었다.


그의 집에서 가볍게 치맥을 하며 게임하는 날이 수요일로 자리 잡혔다. 

우리는 별 대화도 나누지 않고 바로 문명을 열어 놓고 맥주를 마시며 새벽까지 게임을 하다가 누구라도 먼저 쪽잠을 잤고, 잠이 깨면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의 집은 대학 때 동아리원의 자취방처럼 매우 편안하고 익숙해졌다.


어느 날 b가 고향에 내려가 살게 됐다며 집을 내놓았다고 했다. 그의 아버지의 병세가 깊어져 그가 고향의 집안일을 맡아야 한다는 것이다. 집 계약 기간이 아직 6개월 정도 남아 있었다.


b가 수요일에 올라와 게임을 같이 하며 술을 마시는 날이 몇 주 계속되었다. b는 이런저런 일처리를 하며 이삼일 지내다 고향집으로 내려갔다.

어느 날은 b 없이 나 혼자 그의 집에서 게임을 하고 오는 날도 있었다. 그러는 동안 집을 보러 오는 사람은 없었다. 그 집은 거의 내 개인 PC방이었다.

그는 함께 있어도 내 행동에 무심했다. 그게 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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