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이사하기
이혼일기5-1초를 못 참고 저지른
그가 집을 나간 건 작년 9월.
단출하게 싼 짐을 가지고 현관을 나서던 그가 1주에 한 번씩 술 마시는 날을 정하자고 호기롭게 제안했다.
두 주는 기분 좋게 함께 집으로 퇴근했다. 그런데 두 번 다 싸웠고, 술 몇 잔을 마신 상태로 그는 자기 원룸으로 돌아갔다.
직장에서도 나를 공식적인 관계로만 대했고, 점점 싸늘해졌다. 며칠 전까지도 나누던 스킨십을 거부하고 목석처럼 굳어진 그에게 서운한 마음에 화를 냈다.
한 달 동안 나 혼자서 30년 묵은 짐을 버렸다. 몸만 빠져나간 그는 아무것도 볼 것 없다며 다 버리라고 했다. 직장에서 만나도 같은 말만 되풀이했다.
내가 이사할 곳은 25층, 사다리차를 못 쓰고 엘리베이터로 운반을 해야 해서 짐을 줄이는 게 상책이었다. 게다가 혼자 살 거라면 그렇게 짐이 필요치 않았다. 한데 졸혼이라 믿은 나는 1, 2년 뒤 다시 합쳐 살 때를 생각하니 쉬 버릴 수가 없었다.
그는 전부터 안 쓰는 살림 좀 버리자고 누누이 말했다.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못 버린 건 나였다. 헤어지기 1년 전부터 미니멀 라이프에 빠졌고, 덕분에 1톤 트럭 한 대 규모는 버렸는데도, 30년 해묵은 물건들은 구석구석에서 형체를 드러냈다.
버려도 버려도 버릴 게 너무 많았다. 쓰레기로 버리고 재활용으로 따로 정리하고, 무상수거업체에 가전제품으로 접수한 뒤 문밖에 내놓고, 고물상에 갖다 주고, 중고 온라인 서점에 팔 책들 골라서 묶고, 중고매장으로 직접 갖다 줄 건 따로 묶고... 내 성질대로 스스로 볶았다.
정작 이사 당일 아침에 일어나니 종아리가 퉁퉁 붓고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프기 시작했다.
친한 동생이 며칠을 도와줬는데, 그날은 다른 일정이 있다고 해서 이젠 됐다, 나 혼자 할 수 있다고 큰소리친 참이었다.
그런데 새 집과 헌 집, 양쪽에서 연달아 연락이 왔다. 청소업체 문을 열어 주러 새 아파트 관리소로 달려갔다.
웬만한 물건들에 내놓고 갈 것, 실을 것 등 비치 장소까지 써서 테이프로 다 붙여두었는데도, 확인 작업이 필요한 물건들이 계속해 생겼다. 헌 집, 새 집을 차로 두세 번 오가다 이삿짐센터 분들이 점심 들러 간 사이 밥이고 뭐고 매트리스 위에 쓰러졌다.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떻게 한 번을 안 오냐? 어떻게 한 번을 안 도와줘?"
"다 버리라고 했잖아. 돈 주고 버리는 업체 부르라니까."
"당신, 정말 너무한 거 아냐! 돈이 거저 나와? 나 혼자 살았냐? 엉? 당신 진짜 나쁜 사람이야. 이 나쁜 놈아."
나는 악을 지르며 울부짖었다. 전화 건너편에서 여보세요, 여보세요, 하며 달래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나는 복받쳐서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그가 당장 와 주길. 나를 좀 안아주기를.
이윽고 전화 건너편에서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더니 하는 말.
"참, 사람. 진정하고... 나 아침 일찍부터 은행에 와서 지금까지 대출받았어. 그리고 오늘 팀별 회의에도 다 들어가 봐야 해. 저녁에 갈게."
띠로리...
내가 경제적 능력이 없어 대출이 안 되는 바람에 그가 자기 명의로 대출을 받아주기로 했다. 그 중요한 업무를, 안 그래도 코로나 대출, 지원금 때문에 은행 문이 닳도록 왔다 갔다 하며 염증을 내는 걸 봐놓고...
한 달 내내 씩씩하게 혼자 힘으로 해내다가 1분을 못 참고...
그에게 욕 한 번 안 하고 살아왔는데, 전화번호부의 즐겨찾기를 터치하는 1초를 못 참고...
자기중심의 끝판왕, 염치없는 년 인증을 제대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