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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창한 날들 Dec 07. 2021

탈출하려면 어디로 가야 할까? (두 번째 이야기)

글쓰기 좋은 질문 642 중 479번


c : 전 아내

b : 전 직장 동료


다시 수요일. 

수요일은 게임을 하며 술을 마시기 때문에 집에 차를 두고 출근했다.

퇴근길에 c가 나를 b의 집 근처에 내려주겠다고 했다.

c는 b의 집 앞까지 가겠다고 했지만, 나는 근방에 내려달라 한 뒤 c가 차를 돌리기를 기다렸다.

c는 질투 어린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한숨을 뱉었다. 나는 모른 체하고 돌아서 걸었다.
c가 사이드미러로 내 뒷모습을 보고 있을 테지.

나는 뒤돌아서 한 번 손짓을 해 보이고는 다시 걸었다.  
b의 집에 들어가니 치맥기다리고 있었다.

b는 당분간 오지 못할 것 같다고 했다.

어쩌면 아예 고향집에 눌러앉을지 모른다고 했다.
“내가 월세를 내고 여기서 지내도 되나?”
 b가 아내 있는 형이 왜 그러느냐고 펄쩍 뛰었다.

자세하게 해 줄 말은 필요치 않았다.

졸혼으로 생각해 달라고 했다.




c와 나는 몇 년째 오전에 한두 시간씩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습관이 있었다. 

그 시간은 내게도 무척 소중했다.

많은 아이디어가 나왔고, 삶에 대한 자극이 되었다.

그마저 최근에는 싸는 날이 더 많았지만.

내가 커피리며 c에게 할 말이 있다고 했다.

c는 기대 반, 긴장 반 섞인 낯빛으로 나를 보았다.
"오피스텔이 나왔어. 1~2년 정도만 따로 살아봅시다."
이미 반년 전에 1차 이혼까지 간 데다 우리가 살던 전세도 두 달 뒤에 빼 주기로 한 때였다.

우리는 함께 살 집을 알아보면서도 의견 차이가 심해서 따로 지낼 집을 구하고 있었다. 결국 거주만이라도 따로 하자는 데 합의를 보았다.

c는 믿지 못하는 듯했다. 어딘지 알려달라고 했다.

알려주고 싶지 않았다. 철저히 혼자 지내고 싶었다.

c는 서운해하며 울기도 했지만, 내가 견고한 태도를 보이니까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자신이 학원에서 나가 공부방이나 교습소를 운영해 보겠다고 했다. 

학원 강사들은 거의 내 지휘 하에 있었으므로 그게 맞다고 c가 나를 설득했다.


b의 집에서 지낼 거라고 말하지 않았다.

나하고는 못 다는 사람이 후배하고는 살 수 있느냐며 더 서운해할 것이다.

c의 성격에 상처 받을 게 뻔다.

나는 c가 b처럼 나를 전혀 신경 쓰지 않아 줬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따로 방을 쓰면서 지금처럼 적당히 지낼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 c는 더 가까이 지내고 싶어 하고, 다감한 성격대로 내가 자상하게 신경 써 주기를 바란다.

c의 섬세함과 예민함을 배려하기엔 내 마음의 여유가 없다. 그래서 c가 잘해 주는 것도 귀찮다. 그러다가 뜬금없는 순간에 감정 폭발할까 봐 늘 조마조마다.

(그런데 c는 정작 나한테 시한폭탄이라고 한다.

뭐 각자의 처지에서 관점도 달라지는 것이니까.)

c와 무얼 잘해 보기 위한 에너지내겐 없다.

나의 멘털은 지금 마이너스 상태다.

학원을 살리기 위해 머리 쓰는 데만도 터질 것만 같다.




막상 혼자 살아보면 어떨지 장담할  없다.

부부의 인연을 끊고 영영 따로 지내는 게 좋다고 생각할지, 아내 없이는 안된다고 느끼게 될지.

하지만 당장은 탈출하고 싶다.

c의 시선이 나를 잡고 있는 이 집으로부터.
그나저나 이 고양이 녀석들은 어떻게 하지...

스물하나, 열셋 먹은 두 녀석을 데려다 키워줄 사람도 없는데.

c는 우울증을 겪은 이후로 노이로제에 가깝게 고양이들을 부담스러워했다.

나와 헤어지는 마당에 그 부담까지 얹는 건 가혹할 것 같다.

어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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