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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창한 날들 Dec 18. 2024

우연히 배곧에 내렸다가

루비의 엉뚱 발랄 유쾌한 생존기 #3 오이도 카페 가는 길에




"안산이 아니고 배곧에 개원한다고?"

이 질문에 답하려면 오월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지난 오월 어느 날 루비는 오이도에서 카페를 한다는 스친(스레드 친구)을 찾아 나섰다.

바다, 카페, 게다가 새 친구.

루비가 좋아하는 조합이었다.

오이도는 루비에게 최고의 바다는 아니었지만, 차 없는 이에겐 최선의 바다였다.

가슴을 탁 트이게 해 줄 바다를 상상하며 오이도역에서 내린 루비는 버스에 올라탔다.

몇 정거장 가다가 반대 방향으로 버스를 탔다는 걸 깨달았다.


급히 내린 곳은 배곧이라는 낯선 동네였다.

지도 앱을 열어 버스를 검색하니 20분 넘게 기다려야 했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8차선 대로 건너편에 노란 자전거들이 보였다. 카카오바이크가 밀집된 지역이었다.

젊은이들이 많은 동네인가 보다 생각하며 루비는 카페까지 4킬로미터 정도 되는 거리를 자전거로 가느냐, 20여분 버스를 기다리느냐 고민이 되었다. 자전거로 결정했다.

해안가를 따라 자전거를 타는 풍경, 즐거운 추억이겠다 싶었다. 버스를 잘못 오히려 행운으로 느껴졌다.


자전거를 고르기 위해 대로를 건너는 루비의 눈에 학생들 무리가 보였다. 학원가였다. 30년 동안 사교육업계에서 일해 온 루비의 눈에는 어디를 가나 학원 간판이 눈에 띄었다.

남자 중학생들이 몸으로 장난치며 건물을 들고 나는 모습을 보니 몇 달 전 함께 공부한 학생들이 떠올랐다.

그쪽 업계에서 그만 일하겠다고 다짐했는데도 루비에게 학생들은 늘 그리운 존재였다.


루비는 애써 시선을 돌려 카카오바이크를 잡아 타고 달리기 시작했다.

머리에서 학생들의 모습이 떠나지 않았다.

루비는 곰곰 생각했다.

'나는 학원가에서 실패한 것인가. 자발적으로 그만둔 것인가.'

씁쓸한 마음으로 페달을 돌리다 보니 동네가 제법 예뻐 보였다. '생명공원'을 지나 달리자 '한울공원'이 나타났다. 초록이 짙었고 가지각색의 꽃들이 만발한 공원에서 생기가 느껴졌다. 머물러 사진을 몇 컨 찍고 더 달리자 바다가 펼쳐졌다.


그날의 기억이 오랫동안 루비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나도 아이들과 즐겁게 공부하고 얘기하며 지낼 수 있었는데..."

그랬다. 루비는 아이들을 참 좋아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모든 걸 좋아했다.


팔월 말, 쿠팡데이가 1일 천하로 끝난 날, 루비의 머리에 배곧이 떠오른 건 운명이었을까.

아이들이 물밀듯이 나오던 그 배곧.

안산 아이들이 줄어 문을 닫는 학원들이 늘고 있었다.


바다를 가고 싶어 집을 나섰지만, 전철 안에서, 버스 안에서, 걸으면서 루비는 배곧에서 학원을 차려볼까,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하고 있었다.  






 * 배곧 신도시

'배곧'이라는 이름은 '배움곳' 즉, '배우는 곳'을 뜻하는 순우리말인데 일제강점기 때 활동한 한글학자인 주시경 선생이 '조선어강습원'을 '한글배곧'이라 부른 데서 유래하였다. 사업구역 전체가 매립지로 이루어져 과거로부터 불려 오던 자연지명이 존재하지 않던 곳이기도 하고 시가 이곳을 '교육도시'로 표방하면서 이 명칭을 차용하여 신도시의 이름으로 명명하였다. - 출처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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