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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창한 날들 Dec 20. 2024

바다가 보이는 교실

루비의 엉뚱 발랄 유쾌한 생존기 #4 계약





루비는 집에서 출발하기 마지막 끈 같은 걸 잡아보자 생각했다.

안산에 살다 배곧으로 이사한 지인을 떠올렸다. 루비는 염치를 불구하고 전화를 걸었다. 몇 년 만의 통화인데도 그 지인은 반갑게 받았다. 루비가 아는 동생의 동생이자 예전 학부모인 지인은 센스 있고 이재 능력이 좋았다.

"배곧에 아이들 많은가요? 독서 학원을 개원하려고 하는데 어떨 것 같으세요?" 

"애많아요. 안산에서 개원하는 것보단 훨씬 나을 것 같아요."


루비는 '그곳 주민의 말'이라는 일종의 근거가 필요했다. 그것이라도 있어야 자신감을 갖고 결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루비의 마음을 알아챈 지인은 부동산까지 소개해 주었다.


루비는 부동산에 전화해 사무실이 있는지 물었다. 두세 군데가 있다고 하는 부동산 대표와 약속을 잡은 루비는 은행 앱을 열어 청약통장의 약관 대출과 마이너스 통장의 남은 액수를 보증금으로 쓰기로 하고 집을 나섰다.

태양이 이글거렸다. 어제에 이어 폭염주의보가 계속되고 있었다.


루비는 전철 안에서 다짐에 다짐을 했다.  

'아무도 나를 고용하지 않아서 내가 나를 고용하는 거야. 이건 무모한 게 아니라 타당한 거야. 내 살 길 내가 찾는 거라고.'


아무나 학원을 차릴까 하는 생각을 쉬 하진 않으리라. 게다가 모아놓은 자금도 없이 고용되지 않으니 사업을 하겠다는 생각을 하는 이가 많지는 않을 것이다.

루비가 그런 발상을 할 수 있는 것은 30년 동안 해 온 업종이기 때문이리라. 수십 년 그 일만 한 사람이니 아무 준비나 계획이 없이 지껄일 수 있는 말이리라. '다시 농사나 지어볼까'처럼. 


오이도역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루비는 자신이 언제부터 하나의 세계를 쉽게 차리고 쉽게 접는 화끈한 사람이었나 돌아보았다. 이혼하고부터였다. 걸리고 막힐 것 없는 혼자 몸이니 뭐든 결정하는 게 어렵거나 복잡하지 않은 것이다. 모든 싱글이라 해서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루비는 그런 자기가 좋기도 하고 싫기도 했다.


오월에 우연히 내린 덕에 알게 된 배곧 중심상가에서 내린 루비는 영어 학원, 수학 학원 간판이 붙은 빌딩을 올려다 보았다. 저기 어딘가에 내 작은 몸이 아이들과 함께할 곳이 있을까.

아이들과 수업할 곳.


보증금 천만 원에 월세 육십만 원, 혹은 칠십만 원.

중심상가인 데 비해 그리 비싸지 않은 게 놀라웠다.

루비는 꿈을 꾸었다. 첫 달에 학생 다섯, 둘째 달에 열, 셋째 달에 스물.

예전에 하던 프랜차이즈를 업고 가면 학생 수는 금세 늘 것이라는 꿈을.


계약하고 싶은 사무실을 정했지만, 여기서부터 서두르면 안 되었다.

평수에 따라 교습소를 내거나 학원을 내거나 해야 해서 교육청에 전화로 문의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루비는 카페를 찾아 들어갔다. 더위도 식힐 겸 아이스자몽 주스를 주문한 뒤 배곧 지도를 펼쳤다.

프랜차이즈는 기존 지점과 거리를 두어야 했다. 기존 지점과의 거리를 가늠하니 가능할 것 같았다.


계약하겠노라 말하기 위해 지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사장과 전화 연결이 지연되었다. 수업을 하는 중일 터였다.

루비는 몸이 달았다. 그 사무실을 꼭 계약하고 싶었다.

배곧 최고의 중심상가이자 종합 쇼핑몰이면서 영화관이 있는 건물인 그곳에 많은 사람이 들고나는 모습을 보니 홍보 효과가 충분할 듯했다.

   


배곧에선 구름이 피어오르는 것도 만화적이다.
배곧의 저녁놀!
계약한 사무실에서 보이는 풍경


복도에서 보이는 바다
사무실을 계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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