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십여 년 만에 처음으로 육체노동을, 그것도 폭염 속에서 10kg의 쌀을 100포대나 던졌는데 가벼운 근육통 외에 너무나 멀쩡했다.
올해 들어 근력운동을 꾸준히 하고, 가능하면 채식을 했던 게 주효했나 보다고 생각하니 그런 자신이 기특했다.
루비는 아침으로 상추와 당근, 파프리카를 수북하게 한 접시 준비해 먹으면서 쿠팡 측의 문자를 기다렸다. 전날 면접관이 오전 중으로 1년 계약직 합격 여부 문자를 받을 거라고 했기 때문이다. 루비는 면접관과 괜찮은 대화가 오갔다고 느꼈으므로 내심 합격 통보를 기대했다.
내일이라도 당장 출근하라고 하면 작업화부터 사야 하나 어쩌나,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핸드폰을 자꾸 열어보는 동안 폭염이라는 예보대로 집안이 달구어졌다. 냉동고에서 얼음팩을 가져다 배 위에 얹고 잠시 호흡을 가다듬느라 눈을 감았다. 여름내내 에어컨 없이 견디는 끝자락이었다.
마침내 문자 알람 소리가 났다. '불합격'이라는 세 글자가 도드라져 보였다. 지난 몇 달 동안 구직에서 번번이 패한 루비는 막장이라는 심정으로 쿠팡에 문을 두드렸다. 그런데 쿠팡마저 루비를 불합격시킨 것이다.
루비는 오늘이라는 시간이 갑자기 붕 뜬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이제 무얼 하며 보낼까 한숨을 쉬었다.집안 온도가 34도였다.
한편으로는 쿠팡에서 거부당한 게 잘됐다 싶기도 했다. "골병들어. 오십대는 특히. 누구는 이삼일 쿠팡 야간조에서 일한 뒤 한쪽 청력을 상실했대."
주변에서 모두 루비를 말렸던 것이다.
그래도 화가 났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고용한다는 쿠팡, 구직의 마지막 기회라고 여긴 쿠팡 계약직에서 불합격을 당하니 막다른 곳에서 출구를 찾지 못한 기분이 들었다.
자신이 다른 알바들에 비해 눈에 띄게 일을 못한 건 아니라고 여겼기 때문에 부당하다는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항의한다고 갑자기 채용이 될 건 아니니 도리가 없었다.
어쩌면 좋을까. 어디 가서 돈을 벌어야 할까. 지자체의 긴급지원비도 9월까지였다.
백수 10개월, 이젠 무얼 해서든 돈을 벌어야 한다.
루비는 자신에게 남은 재산이 70퍼센트를 대출받은 소형 아파트라는 걸 떠올렸다. 루비는 자신이 그렇게 설명되는 사람일 뿐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턱 막혔다. 그나저나 어디 가서 돈을 버느냐.
루비에게 순간 아이디어가 스쳤다.
'아무도 고용해 주지 않으면 스스로를 고용하면 되지.'
'어떻게?'
'교습소라도 차려야 할까? 하기 싫다고 도망친 그 일을 다시 해야 할까?' '모르겠다.' 루비는 답답했다. '답답할 땐 바다가 최고 아닌가.'
루비는 오이도 바다를 보러 가기로 작정하고 옷을 입었다.
오이도는 대중교통으로 가기 쉬운 바다였다.
턱턱 숨이 막히게 무더운 날씨에 버스 정류소에 서서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던 루비는, 몇 달 전 차를 판 자기의 신세가 초라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