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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창한 날들 Feb 08. 2022

홀로서기, 방점을 찍다 3

작년 9월 29일에 교통사고 가해자가 됐다.

그리고 4개월이 넘은 내일, 벌금 내는 걸 마지막으로 사고가 정리될 것 같다.

이혼 후 내게 벌어진 가장 큰 사건이었으며, 오롯이 혼자서 해결한 일이기도 해서 여기에 적는다.

주위 여러분의 조언과 격려를 받았지만, 남편 없이 나 혼자서 처리했다는 면에서 진정한 홀로서기를 훈련한 시간이었다.

  



1. 아들

휴대폰 너머에서 아들이 내게 다친 데 없는지 확인한 후 뜻밖의 말을 꺼냈다.

"합의금 나오면 말해."

스물여덟인 아들의 목소리는 다분히 사무적으로 느껴졌다.

나는 "됐어. 돈 있어." 하고 말했다.

엄마는 위로와 공감을 원했던 거지, 너한테 돈 달라고 한 게 아니라고!

잠시 침묵의 시간이 흐른 뒤 아들이 물었다.

"아빠한테 전해 줘?"

맞은편에서 S 언니가 그러라고 눈짓을 했다.

"어, 그러든지."

남편이 간절히 필요했다. 핑계 삼아 그를 보고 싶었다.

아들이 이렇게 묻는 걸 보니 아들 생각에도 지금 엄마에게 제 아빠가 필요하다고 느꼈을 거야.

그런데 아들의 두 번째 뜻밖의 반응.

"하여튼 엄마는 내 인생에 도움이 안 돼."

아들의 목소리에 노기가 서려 있었다.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내가 왜 이런 소리를 듣고 있어야 하지? 내가 저한테 돈을 달랬어, 저를 귀찮게 했어?

"야, 너 무슨 말을 그렇게 하니? 미안하다! 내가 너 몹시 귀찮게 해서. (아빠한테) 말하지 마."

소리를 지르며 전화를 끊었다. 울음이 복받쳐 울다가 내 성질에 못 이겨 아들에게 카톡을 보냈다.

'너한테 무슨 일이 생기든 연락하지 않을 테니까. 너도 딴 데로 이사 가서 살아. 네 인생에 도움이 안 돼서 미안하다."

남편과 헤어지고 나서 아들이라도 내 가까이에 두고 싶어 같은 단지 오피스텔로 들어오라고 꼬였던 건데, 마음에도 없는 말을 내뱉고 말았다. 이렇게 불같이 화내는 나를 남편이 힘들어했는데, 내게 벌어진 사건을 감당하지 못하겠다고 느끼니까 또 습관처럼 이런 행동이 튀어나오고 만 것이다. 그놈의 성질머리.


2. 남편

한 시간쯤 지났을 때 남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주소록에서 그의 이름을 지웠기 때문에 번호만 떴는데 끝 네 자리가 아들 번호와 같아 잠시 머리가 멍했다.

그였다. 6개월 만이었다. 그가 차분한 목소리로 내게 괜찮은지, 누가 옆에 있는지 물었다.

S 언니가 와 있다고 하니까 다행이라고 했다.

그는 친정 식구에게 말했는지 물었다. 오빠에게 말했다고 하니 잘했다면서 혼자 마음고생하지 말고 친정 식구들에게 협조를 구하라고 했다. 그리고는 덧붙였다.

"걔가 오늘 다섯 가지쯤 일이 겹쳤어. 엄청 스트레스받았을 때 당신과 통화한 거였나 봐. 전화 끊고 바로 후회됐대. 저녁에 전화할 거야. 그러니까 마음 가라앉히고..."

나는 다시 울먹이며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했다.

"됐어. 나한테 연락하지 말라고 해. 당신도. 무슨 일이 있어도 두 사람 귀찮게 하지 않을 테니까."

S 언니가 전화를 내게서 가져가 남편과 대신 통화했다.

"경비실에서 찍은 CCTV 영상을 보고 진정이 안돼 그런 거예요. 그러니 이해하세요."

안방으로 들어가 한참을 울었다.  

피해자와 그의 가족들 일상이 무너질 게 무서웠고, 피해자가 장애를 지닌 채 살면 어떡하나 앞이 캄캄했다.

수습을 해도 그 전으로 돌이킬 수 없다는 게 캄캄했다.

극도의 두려움과 불안을 감당하지 못한 내가 성질부리는 꼴을 반년 만에 연락된 남편에게 또다시 보이고 말았다. 언제 성질낼지 몰라 나로부터 도망가고 싶어 한 사람에게 옛 기억을 환기시켰을 터였다.



3. 피해자

S 언니가 집으로 돌아간 뒤 온라인 명상을 했다.

지나간 일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자책하다 보면 합리적으로 처리할 기회를 잃게 된다는 걸 여러 경험으로 알고 있기에 명상하며 이미 일어난 일들을 현재의 나로부터 분리해야 했다.

명상하는 동안 피해자에 대한 걱정이 결국은 내 안위를 위해서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침에 일어나자 어제의 명상한 마음은 어디로 가고 다시 눈물이 흘렀다. 왜 게이트 아래에서 일시 멈춤을 하지 않았는지 후회스럽기만 했다.

그분이 밤새 아팠을 테고, 아침에 더 아플 텐데.

어제 받아둔 전화로 문자를 보내려고 전화번호를 띄웠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몇 번을 고쳐 써도 그분께는 화나고 기막힌 일일 거라 생각하니 용기가 안 났다. 하지만 나 몰라라 하는 것이 더 언짢게 할 듯하여 용기를 내 문자를 전송했다. 두근거리고 걱정돼서 수업 준비도 할 수 없었다.

명상 센터에 가서 도움을 청하자.

택시를 탈까 하다가 오래 굳은 운전 습관도 있고, 교통이 불편한 경로라 운전을 다시 해 보려고 주차장으로 갔다. 운전석 쪽 범퍼가 움푹 파인 게 보였다. 그분의 몸이 저 철판을 저렇게 파이게 할 정도로 충격이 컸으리라 생각하니 다시 가슴이 심하게 뛰었다.

이 자리를 펴지 말고 늘 각성하자.

운전석에 앉았다. 가슴이 미친 듯이 뛰었지만 사고 당일의 일은 이미 지나간 일이라는 걸 잊지 말자고 스스로 다독였다.

오늘은 사고가 났던 게이트만 피하자는 마음으로 운전을 했다.

몇 시간이 지나도 문자의 답은 오지 않았다.


다음 날에도 문자를 보냈다. 어디 더 아픈 데는 없는지, 통증이 더 심해지지는 않았는지, 자녀들에게도 미안하다는 내용으로. 답은 오지 않았다.


3일째 되는 날, 보험회사 담당자에게 전화를 했다. 신호만 갔다.

실은 나도 허리가 아프고 어깨가 아팠고, 겁이 났다.

정형외과에 가서 진료를 기다리다가 혹시나 해서 보험회사 담당자에게 다시 전화했다. 담당자는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회사에 고지하지도 않고 병원에 가면 어떡하느냐 야단했다. 그러면서 피해자 분이 마음이 힘드니 내게 문자를 보내지 말아 달라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게다가 아이가 수능을 앞두고 있다는 얘기도 들었단다. 수능... 하필 수능을 봐야 하는 자녀가 있다니.


다시 사고 접수를 해야 하는 절차도 복잡하고, 사고 당일 수업하지 못한 보강 때문에 진료 접수를 취소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피해자 분에게 더 이상 문자도 보내지 못하고, 문병을 가지도 못하다니. 그때부터 기다려야 했다.

보험회사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아무런 소식을 전하기 않았다.


6일이 지난날 아침에 피해자 분이 문자를 보내왔다.


그날 이후로 몸과 마음이 많이 힘드네요. 가정에선 엄마의 부재가 크고 직장은 퇴사 처리까지... 그나마 정말 크게 다치지 않은걸 감사하고 있습니다. 왠지 속상한 마음에 글 남깁니다.


'퇴사'라는 말에 가슴이 툭 내려앉았다. 몸도 다치고 직장도 잃고, 이 분 어떡하나.

교통사고로 함께 있어 주지 못한 엄마의 빈자리 때문에 자녀가 수능을 망치면 어떡하나.

수능 본 해를 엄마 다친 해로 기억해, 자녀의 평생 트라우마로 남으면 어떡하나.

답 문자를 남겼다. 무슨 말을 써도 그분의 통증과 고통과 자극할 테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거라도 하자 싶었다.


아, 퇴사 처리까지요... 제가 선생님 처지가 돼 생각해도 너무 억울하고 속상하시겠습니다. 다시 죄송합니다. 이렇게 문자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무엇보다 얼른 회복되실 수 있게 노력 부탁드립니다. 날마다 선생님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신앙도 없는 제가 기도하고 있습니다. 몇 년 전 제 아버지와 어머니가 차례로 교통사고를 당하셔서 힘들어하셨기에 그 고통이 어떠실지... 꼭 회복되실 거예요. 힘내 주세요.



4. 경찰, 보험 담당자

피해자에게서 더 이상의 문자는 없었다.

그 사이에 경찰서에 출석했다. 친한 동생이 연결해 준 경찰 제자가 담당 경찰과 통화를 해준 덕인지, 경찰관이 친절하게 안내해 주었다.  

그가 피해자 남편을 만났다고 했다.

'사고란 게 누구에게든 언제든 날 수 있지만, 하필 우리 가족에게 나니 힘드네요'라고 했다는 남편의 이야기를 전하며, 피해자 부부가 선량한 분들 같더라고 했다.

담당 경찰관은 조서를 보여주며 사고 경위와 나의 신상에 대해 틀림없는지 확인하라고 했다. 구체적으로 쓰인 정황을 읽고 나는 모든 걸 인정했다. 백 퍼센트 내 과실이라고.

담당 경찰관은 피해자가 현재 엉치뼈 골절이 진단됐는데, 늑골 골절 진단까지 받아서 8주 이상 나오면 벌금이 커지고 구속될 수도 있다는 말로 내 가슴을 툭 내려앉게 했다. 그러면서도 상황은 더 지켜보아야 하며, 피해자 분께 염려하고 있다는 문자 정도는 해 주라고 권했다.

조서의 마지막 장에는 나의 재산 상태가 적나라하게 쓰여 있었다.

그는 아파트 전세가를 물어보며 보증금 2천만 원으로 어떻게 신축 아파트에 들어갔느냐 물었다.

전에 가르치던 학생들이 여러 명 거주하는 아파트라서 공부방 하려고 친구한테 돈을 빌렸고, 경제적 능력이 쌓이지 않은 나를 대신해 남편이 대출을 받아준 덕에 입주했다고 말했더니, 그는 안쓰러운 시선으로 나를 보며 위로했다.



5. 그리고 시월

시월이 가고 있었다.

해마다 가을을 타서 우울감으로 힘들어하던 나였는데, 오로지 그분의 쾌유를 비는 하루하루를 보내느라 가을인지, 하늘이 청명한지, 나뭇잎이 어떻게 되어 가는지 계절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분의 자녀가 수능 준비에 집중할 수 있기를 비는 하루하루이기도 했다.


종합보험 회사는 어떤 연락도 먼저 주지 않았다.

한 달쯤 지난 어느 날, 보험 담당자와 겨우 연락이 됐다. 그 사이에 종합보험 담당자가 세 번이나 바뀌어서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했던 것 때문에 나는 큰소리로 항의했다. 담당자는 미안하다며, 피해자 분이 다행히 4주 진단을 끝으로 퇴원할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종합병원에서 한방병원으로 옮긴 것으로 보아 어느 정도 움직일 수 있는 것 같으니 다행이라고 했다.

담당자는 피해자 측이 병원비를 먼저 치러야 하며 그다음에 보험회사가 최종 정산하게 되어 있으니, 피해자에게 문자나 전화로 미안하다고 표현하고 기다리라고 했다.

운전자 보험 담당자는 벌금을 회사에서 내 줄 가능성이 있으니 우선 기다리라고 했다.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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