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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창한 날들 Sep 16. 2021

이혼일기2-브런치 작가 응모작 1번째




2010년부터 1년 반 정도 우울증 약을 먹었다.

몇 년째 머리, 어깨, 무릎, 팔, 내장이 다 아팠는데 어느 병원에 가도 뾰족한 진단이 나오지 않 때였다. 매끼 소화제를 먹는 나를 본 지인이 정신과에 가 보라고 추천하기에 처음엔 '저이가 말도 안 되는 소릴 하고 있네.'하고 저항했다. 그래도 굿은 할 수 없고, 다른 방법이 없어 정신과에 갔더니 중증이니 입원하라고, 상상도 못 한 진단을 받았다. 그때 나는 우울증이란 것이 사회성에 문제 있는 사람이 겪게 된다는 편견을 갖고 있었던 터라, 충격이 컸다.

하여튼 항우울제를 먹었더니 소화제보다 더 잘 들었다. 배 아픈 날이 줄었다.    




우울증이라는 진단명을 받으니 감각이 더욱 벼려졌다. 피를 보고 나서 울게 되는 심리랄까.

남편을 포함해 타인의 입냄새가 못 견디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지금처럼 마스크라도 쓰고 지냈으면 괜찮았을 텐데...

둘이 몸을 섞으려던 어느 날 아침, 남편의 입냄새가 훅 다가오는데 참을 수가 없었다.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찡그리고는 미안해져서 내 입냄새라고, 이 닦고 오겠다고, 화장실로 달려갔다.

다시 방으로 들어왔을 때는 서먹해진 채 서로 웃고 말았다. 남편은 진심인 표정으로 말했다.

“당신한테선 입냄새 안 나.”

그 말을 믿진 않았다. 그러면서도 내가 수시로 입안 관리를 신경 썼으니까 그 말이 맞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상대에게서 입냄새를 느낄수록 내 입에 철갑을 두른 듯 지내게 됐다. 입맞춤으로 충치균도 오간다는 말을 핑계로 대며, 그렇게 남편과 나누는 키스에서 멀어졌다.

코로나로 인해 종일 마스크를 착용하다 보니 마스크 안의 입냄새가 말할 수 없을 만큼 심했다. 구강청결제로 틈날 때마다 헹구었지만 내 입안에서 나는 냄새에 내가 질식할 것 같았다. 나는 고래가 물 밖으로 나와 호흡하듯 자주 마스크를 벗고 숨을 내뿜었다.




그와 헤어지고 넉 달이 지난, 올해 첫날 광교산에 올랐다.

입냄새가 익숙하다고 느끼는 순간, 남편에게서 느껴졌던 냄새였다는 걸 깨달았다. 그와 키스는 물론 만나지 못한 채 몇 개월이 돼 가고 있는데... 순수하게(?) 내 안에서 나는 입냄새였다. 함께 지낼 때는 서로 입맞춤이라도 해서 그렇다 치고 나 혼자 지내는데 그 냄새는 대체 어디서 왔단 말인가.




식구들과 함께 살 때 화장실에서 냄새가 나면 무조건 남편과 아들, 두 사람을 의심했더랬다. 서서 일보는 남자들 때문임에 틀림없다.

아들이 군대에 가고 나자 남편이 주범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고, 혼잣말로 구시렁대며 청소했다.

어느 날 화장실 좀 분담해서 청소하자니까 남편이 자기도 볼 때마다 청소를 했단다.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물로 대충 흘려보냈겠지. 아니라면 왜 이렇게 냄새가 나겠어.'  




이혼하고 난 어느 날 화장실 청소를 할 때였다.

안 그래도 악취가 난다 해서 이상했는데, 변기 안쪽 뚜껑에 남자가 선 채 용변을 보느라 튀었음 직한 노란 자국이 묻어 있었다. 순전히 남자의 그것이라 믿었던 오물 자국이었다.

망연히 보고 서 있었다.

그에게 미안했다.

모든 탓을 그에게 돌렸던 것이...

이번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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